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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도 꽃축제도 계속된다

닮은 듯 다른 내 인생처럼

by 나철여

육체는 오감으로 이어져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중 하나만 잃어도 장애가 된다.

나에겐 아니 모든 여자에겐 육감이란 게 하나 더 있다. 남자들은 오감뿐, 꼭 말을 해야 알아듣는다. 남편도 그렇다. 내가 무슨 말을 원하는지 잘 모르고 뭣 때문에 섭섭해하는지 잘 모른다. (전 중)

그런데, 그럼에도, 문득, 모든 게 정상임에 감사한 시간이다.

뜬금없이 적 감각이 살아났다.


추석연휴를 그냥 보내기 아쉬웠다.

의령 꽃축제를 다녀왔다. 스모스 천지다. 황화코스모스, 팜파스그라스, 핑크뮬리, 아스타국화, 댑싸리, 이름도 재밌는 촛불맨드라미까지 온통 꽃이다.



차를 돌려 한우산 전망대 드라이브코스 44km를 더 즐겼다. 남편은 항암 이후부터 손발 저림 부작용으로 운전대를 잡아 본 적 없으니 운전은 오롯이 내 몫, 다행히 나의 운전 실력은 그 옛날부터 총알택시 수준이다. (아님 말고.)


다시 차를 부산으로 돌렸다. 아들네는 추석연휴를 더 즐기기 위해 손주들이랑 캠핑을 떠났고, 우린 해운대 신시가지에 거주하는 아들 집으로 갔다. 아들집은 우리에게 세컨하우스 겸 호텔이다.1년만에 갔지만 현관문 비번이며 오피스텔 호수는 안 까먹고 있었다.

얼떨결에 1박 2일 투어가 된 셈이다. (부산에 사는 아들은 대구와 부산을 오가는 주말부부라 아들집이 따로 있다.)

집 앞 야경은 국제 수준 해외여행 부럽잖다. 걸어서 10분 내에 해운대 바다와 동백섬이 있다. 외국관광객들도 제법 많다.

아침이 되니 바다 맞닿은 하늘색도 다르다.

냉전이 끝났다.

다시 손잡고 아침바다를 걸었다. 직은 잡은 손이 따뜻하다.

'우리 다시는 싸우지 말자'며 곧 허물어질 모래성을 쌓으며 또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이런... 유치한 것도 노년의 사랑이야!





다시 로키투어 스토리,

드디어 눈앞메 펼쳐진 빙하는 창밖 어디든 이어졌다.

차창 밖을 내다보노라면 오만가지 감각이 찾아든다.

수많은 유빙(빙하)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벽처럼 깎아져 있는 모습을 보며 나의 생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일찍부터 녹아내린 내 심장 같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온통 푸른 빙하호수다.

바다를 보는 것 같은 큰 호수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어김없이 크고 작은 폭포를 만난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끝없이 이어져있다.


옷쟁이 시절, 여름 비수기도 넋 놓고 성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았다. 주육아 할미와 남편의 보호자 지금도, 일 년에 한 번 해외여행은 나의 해빙기다.



여기서 행복할 것
이라는 말을 써두었더니
누군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여행'이라고.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 김민철의 《모든 요일의 여행》 中에서


"모든 ‘나’를 단숨에 만나는 건 오직 여행뿐이다!"

_ 든 요일의 여행 저자처럼, 나 역시 여행에서 배우고 깨닫는 행복도 제법 자연스럽다.

주 중 할미육아 중인 나, 매주 주말의 여행을 즐기고 있다.

앞으로 엮어질 <나철여의 주말여행기>는 오롯이 내가 되고 나만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이다.

에코백 하나면 족하다. 책이랑 쵸코렛, 그리고 시애틀의 여행서 기념로 모셔 온 스벅 텀블러 항상 들어있어야 한다.

어디 상관없다. 한 손엔 책, 한 손엔 커피를 든 나의 노년은 그저 행복하다. 로키투어에서 찾은 인생뷰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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