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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쥐덕션 May 03. 2023

여행, 갈 수 있을까?

'됐어, 관둬. 나도 안가’

언니가 잔뜩 화가 나서 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는 서울

근교로 1박 2일 여행을 계획 중이다. 더 더워지기 전에

엄마를 모시고 좋은 추억 하나 만들 생각이다.

올해 칠순이 되었는데도 거한 잔치 한번, 축하 한번

편하게 못받은 엄마가 짠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인 엄마가 판을 깼다.

“너네는 지금 정신이 있니? 아빠가 병원에 누워 있는데

무슨 여행이야? 참 철들이 없다. 너네나 가!“

이때 침착하게 엄마를 설득 했으면 됐을 일이다.

내가 눈치 없이 언니에게 말을 전한 것이 화근이다.

‘답답하네 진짜. 그럼 보호자는 여행도 못 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야? 됐어, 관둬. 나도 안가.

자꾸 가자고 하는 것도 이제 짜증나‘

엄마가 화내는 이유도 이해가 되고, 답답해 하는 언니의

심정은 나도 같다. 눈치가 없는 덕분에 둘 사이를 오가며

분주하게 열을 삭혀주느라

나만 어색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사실 여행의 목적은 딱 하나였다. 어떤 전쟁을 준비하기 전

에너지를 충전하는 느낌이랄까. 아빠가 재활병원에

입원한지 1년이 넘었다. 보통 뇌출혈 환자는 발병 후

6개월 동안 80%, 1년까지 95%로 호전된다.

1년이 넘고 2년이 되면 나머지 5%를 기대하다가

그대로 ‘확정‘ 상태로 본다고 한다.

그럼 병원에서의 재활도 더 이상 의미는 없다.

우리 가족은 그 남은 5%에 기적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매주 면회 때 마다 아빠를 격려한다.

“할 수 있어, 열심히 운동하고, 연습 하는 거야. 알았지?”


1년이 넘고, 2년이 다가온다는 것은 그 기적의 효용기간이

끝나간다는 뜻이며 집으로 모셔올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의 낡은 빌라를 떠나 휠체어가 움직일 수 있는

넓은 복도와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을 구해야 한다.

아직 거동이 불편하고, 기저귀를 착용하는 아빠를 위해

집 곳곳에 의료기구도 설치해야 한다. 마비 증세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근처에서도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복지 기관과 업체도 미리 찾아봐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온종일 집에서 아빠를 케어 해야 한다.

엄마는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빠를 곁에서 직접 돌본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드라마틱 한 호전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 기대감에 차 있는 엄마를 지켜보는 나와 언니는 두렵다.

기대감을 더 뛰어넘을 실망, 보호자로서

일상의 상실감이 찾아올 거라는 걸

엄마는 정말 모르는 걸까.   

  

“엄마, 진짜 전쟁은 아빠가 집으로 오면서부터야.

지금부터 너무 힘 빼지 말자”

“알고 있어, 엄마도 다 알아”

화를 내는 엄마 앞에서 차마 말 할 수 없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

여행 가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고,

가까운 시장에 가는 것 조차 쉽지 않을지도.

그런데도 엄마는 정말 괜찮겠어?‘

막연한 1년 뒤의 현실이지만 한 가지는 명확하다.

엄마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훨씬 더 자신의 몸과 삶을 갈아

아빠를 돌볼 거라는 걸.      


그때를 위해 여행 한번 다녀오는 것이

여전히 아빠에게 죄스러운 모양이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한다.

그런 엄마를 생각하는 우리 마음도 편하지 않다.     


여행, 정말 갈 수 있을까?  



벚꽃이 이르게 피던 지난 4월. 집에서 20분 거리의 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이날 엄마는 모처럼 어린아이마냥 즐거워 했다. 마음이 편한 거리는 여기까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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