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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쥐덕션 Jul 14. 2024

축하에는 이유가 없다

너한테 보여줄 거 있어. J가 인도음식점에서 메뉴를 모두 고른 뒤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한참을 핸드폰에서 사진첩을 뒤적이더니 내게 불쑥 초음파 사진을 내밀었다.

벌써 7주라고 했다.

“친구들 중에 너한테 제일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너 아빠 일도 그렇고, 회사 때문에 너무 우울해 하는 것 같아서 전화로는 말 못했어. 직접 만나서 말해 주려고“


생각해보니 요 근래 J와 통화만 하면 나의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대한 하소연만 주구장창 해대느라 정작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틈이 없었던 것 같다. 뭐 내가 제일 처음이든 아니든 간에 상관 없었다. J에게 예쁜 아가가 찾아왔다는 것, 뱃속에 지금 기쁨이 가득하다는 것. 그 사실 만으로도 벅차 나는 주책 맞게 펑펑 울어 버렸다.

“왜 울어” 하던 J도 티슈로 눈가를 열심히 닦았던 걸 보니 눈물이 난 게 분명했다.

     

누군가의 행복을 듣고 진심으로 기뻐 해 본 건 너무 오랜만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그 여운이 지속되는 걸 느끼면서 이런 감정이 뭘까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동안 나는 주변인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본 적 없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진심으로 축하하기 보다는 나와 그들의 처지를 비교하며 스스로 패배자가 되곤 했다. 시기심, 질투. 단순한 감정을 넘어 그들의 인생 모든 것들을 나와 결부시키면서.

    

이런 못난 내게 J는 유일하게 비교대상 밖의 친구였다. 그녀와 나는 같은 유치원에서 만나 그라데이션처럼 천천히 친해졌고, 고3때는 거의 매일 붙어다녔다. 다른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J가 몇 년 후 우리 학교로 편입을 했으므로 결국 우리는 모든 학창시절을 함께 한 셈이다.

  

돌이켜 보니 J는 처음 친해졌을 때부터 오늘까지 그 긴시간동안 한번도 변하지 않고 나를 ‘귀한’ 사람으로 대했다. 식당에 가면 항상 쇼파 자리에 나를 앉히고, 찻길에서는 언제나 나를 안쪽으로 걷게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드러냈을 때도, 고통을 토로했을 때도, 혹은 누군가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매도했을 때도. 그녀는 변하지 않고 한결같이 내 옆에 있었다. 좋은 일을 내가 마음껏 자랑해도 잘난 척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사람. 본인 일 같이 기뻐해주던 사람. 나한테 언제나 ‘귀한 너’라 ‘함부로 대할 수 없다’고 말해주는 사람. J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사람은 내게도 소중하다. 우리는 아직도 식당에서 서로에게 좋은 자리를 양보하려고 투닥거리고, 서로가 찻길 밖에 서겠다고 투닥거린다. 오랜시간 진심을 다해 서로의 성장을 빌어주던 사이. 우울한 날들 속, 그래서 그녀의 임신 소식은 더 큰 임팩트로 다가온다.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J에게 찾아온 행복을 있는 그대로 축하해 주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서로의 기쁨을 순수하게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존재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일까. 불안함과 압박감으로 축축했던 올 여름의 감정들이 J의 아기로 인해 조금은 환기 된 기분이다. 내년 초에 태어날 그 예쁜 기쁨과 만나게 될 그날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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