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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s A Feb 05. 2024

45살 제2의 인생 Part 2.

꿈과 좌절

20여 년 전과는 다르게 이번엔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교사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교생으로 있었던 곳에서도 좋은 멘토들을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매번 레퍼런스 레터를 써주고 계신다) 미국에서는 취직을 할 때 이력서와 졸업장 그리고 약 3-5명의 사람들의 레퍼런스라는 것이 필요하다. 후보자 혹은 응시자에 대한 대략적인 평가를 위한 평가서이다. 보통 같이 일했던 동료, 상급자 혹은 지인이 이에 해당된다. 나의 담당 교수님은 내가 교생을 마치고 레퍼런스레터뿐만 아니라 본인이 갖고 계시던 선생님 용품과 팔찌까지 주셨고 교생실습 멘토분들도 지금까지 레퍼런스와 좋은 선생님이 되라고 항상 용기를 북돋아 주시던 분들이다~ 정말 감사한 분들이다. 

여기서 나는 교사구직을 하면서 한국과 미국의 다른 점을 느꼈다. (여기에 쓰는 내용은 내가 그저 보고 경험한 느낀 점이고 미국이란 나라는 각 주마다 지역마다 다른 점들이 있다) 미국은 고시라는 개념보다는 자격증의 개념이다. 변호사든 선생님이든. 주에서 행하는 자격시험을 패스하고 본인이 일자리를 찾으면 된다. 그러니 Pass or Fail 인 셈이다. 내 생각에 한국은 시험에 최적화된 사람들에게 좀 더 맞는 사회 같다. 내가 한국에서 살 때 도 별로 임용고시 인원이 정해져 있었다. 물론 내 동기 중에서도 임용고시에 붙은 친구들도 꽤 있다. 하지만 4년 장학생과 과 톱을 놓치지 않았음에도 임용고시에는 떨어지는 친구들도 여럿 보았다. 미국은 인원이 정해져 있지 않다. 이것이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긴 하다.

 고작 몇 명의 정원을 뽑는 한국과 시험만 패스하면 그래도 자신이 구직을 하는 미국. 확연한 차이는 있다. 어떤 곳이 좋은 지는 나도 가끔 헷갈린다. 하지만 나는 미국의 시스템에 약간 손을 들고 싶다. 

미국은 학교가 교육부 혹은 교육청 관리한다기보다 교육구의 개념이다 물론 주마다 교육부가 있고 여기서 보통 선생님 자격과 교육적 업무 외에 교육과 관련된 일들을 처리한다. 크게 보면 미국이라는 큰 나라에 그 안에 있는 주 별로, 그리고 그 주 안에 도시나 카운티 안에 교육구가 있다. 일반적으로 집값이 비싼 동네는 학군이 좋다고 한다. 왜냐하면 집값이 비싼 곳이 싼 곳보다는 텍스(세금)가 교육구에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텍스로 학교를 운영 또는 관리하니까. 자격증이 있으면 각 학교 District(교육구)에 구인을 보고 서류를 제출하고 인터뷰를 하러 오라고 하면 인터뷰를 하고 셀렉션이 되면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다만 내가 있었던 펜실베이니아는 내가 사는 지역 근처에만 약 6-8개의 교육 관련 대학교들이 있어서 선생님들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누군가는 어디 학교에 자리가 하나 나면 약 200개-1000개의 서류가 들어온다고도 들었다. 5년째 대체선생님을 하는 분들도 있으니 사정은 한국과 사뭇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나라가 크다 보니 다른 주로 이동하거나 사립으로 가능경우도 꽤 있다. 그 정도로 펜실베이니아에선 정교사 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 예비선생님들은 졸업하고 자리가 좀 난다는 노스캐롤라이나, 메릴랜드, 애리조나, 뉴멕시코, 아메리카 원주민지역으로 혹은 사립으로 경험을 쌓으러 가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특수교사는 많이 모자란다고 한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에도 우리 학교에서는 복수전공으로 특수교육을 실행하고 있었다.  나는 특수교육이 나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의 소량으로는 좀 버거울 듯싶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생각이 바뀌면 대학원을 특수교육으로 가도 되니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기들도 보면 주로 특수교육으로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Substitute teacher(대체선생님)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심히 하다 보면 나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한 4개의 학군에서 대체선생님을 시작했다. 하지만 Long Term Substitute Teacher( 장기 대체 선생님 혹은 기간제교사) 자리가 나도 나에게는 돌아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그 학교에 나보다 오래 계신 분들이나 퇴직하신 선생님들은 위주로 뽑고 있었다. 

나는 경험부족 혹은 그들은 나를 이방인으로 대하는 느낌도 종종 받았다. 어쩔 땐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어쩔 땐 화가 나기도 했다. 그저 기회 좀 줬으면 하고 바라었었다. 대체선생님은 나랑은 너무 맞지 않았다. 아이들도 잘 모르고 그 선생님의 수업 방식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치원부터 3학년까지는 대체선생님은 할 만했다. 선생님이 어떻게 수업준비를 하시나 배울 수도 있었다. 대체 선생님 첫날 8학년 Algebra 수업을 했는데 다행히 내가 중학교 때 수학은 그래도 잘해서 잘 넘기긴 했는데 등에서 식은땀이 낫었다. 어떤 날은 5학년 과학수업을 할 땐 정말 눈앞이 깜깜하기도 했다. 나는 과학은 정말 못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하루종일 한 반에서 수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주 이 교실 저 교실 옮겨 다니는 것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대체선생님은 말 그대로 대체선생님이라 한 반에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리저리 필요한 곳에 옮기기도 많이 한다. 

그래도  1년 대체선생님을 하고 남편 직장 때문에 가족 모두 한국행을 3년 하게 되었다. 

너무나 가고 싶었던 한국행!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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