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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TJ Apr 07. 2024

Brex의 천재들: 불비불명(不飛不鳴)

아이디어가 좋다고 해서 또는 기술력이 있다고 해서 유니콘 기업이 될 수는 없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일단 잘 팔아야 한다. '마케팅' 능력을 입증해야만 큰 투자가 따라붙는다는 말이다.


Brex의 초기 마케팅은 '불비불명 (不飛不鳴)'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한다. 기회가 올 때까지 조용히 때를 기다려야 하고 일단 시작하면 큰일을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의 유래는 약 2600년 전 중국 춘추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나라 장왕이 삼 년 동안 음주가무에 빠져 살자, 오거라는 신하가 장왕을 빗대며 삼 년 동안 울지도, 날지도 않는 새가 있는데, 그 새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장왕은 "한번 날면 하늘을 찌를 것이고 (一飛沖天) 한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오 (一鳴驚人)"이고 답했다. 이후 장왕은 간신들을 물리치고 나라의 기강을 잡았다고 한다.



Brex는 1년 6개월간 울지도, 날지도 않았다. 개발 시작 후 첫 10명의 테스트 고객들은 모두 그들의 친구들이었다. 물론 모두 스타트업 창업자들이거나 투자자들이다. 이후 LinkedIn을 뒤져 서비스에 관심이 있는 해외의 창업자들을 타진했다. 그리고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First Public 은행과 협업을 시작했다. 이렇게 모아진 100명의 초기 고객들을 대상으로 베타 테스트를 계속 진행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서비스가 나오기 전까지, 어떤 정보도 흘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스타트업이 경쟁사에게 아이디어를 빼앗기지 않고 제품 개발에 집중하고자 이른바 '스텔스 모드'를 택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스텔스 모드의 가장 취약점은 출시 이후에 시장에서 입지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시장에 자신의 서비스를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Brex는 달랐다. 일단 날고 울기 시작하자 하늘을 찌르고 세상을 놀라게 했다.


Brex의 천재들은 폭발적이고 집중적인 임팩트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마치 2003년 이라크를 굴복시킨 미국의 전략인 신속 제압 (rapid dominance) 전략을 떠올리게 한다. 창업자 엔히크는 이렇게 말했다. "크게 가거나 아니면 아예 집밖으로 나오지 말자 (Go big or don't go out-of-home at all)"


Brex는 세 가지 놀라운 마케팅 캠페인을 펼친다. 그 첫 번째는 옥외광고다. 메시지는 간단했다. "스타트업을 위한 최초의 법인 카드" 누구나 보기만 하면 직관적으로 이해됐다. 장소는 스타트업이 많이 위치해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잡았다. 옥외광고 대행사 Clear Channel과 계약을 맺고 3개월간 근처의 가능한 모든 옥외 광고판을 사들였다. 총 삼십만 달러 (한화 3억 8천만 원)를 지출했다. Brex의 공식 론칭에 맞춰 샌프란시스코의 거의 모든 옥외 광고판이 Brex의 광고로 뒤덮였다.


Brex의 옥외 광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당시 Chief Revenue Officer를 맡고 있던 Sam Blond는 그의 Twitter에 "하룻밤 사이에 100% 브랜드 인지도를 달성했다."라고 밝혔다. 업계 거물들의 응원도 이어졌다.




창업자 엔히크는 "생각보다 2배 이상 효과다. 옥외광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기 시작했다."라고 했다. 상식을 뛰어넘는 옥외광고는 이후 두고두고 Brex의 성공적인 마케팅으로 회자된다.

 

두 번째는 샴페인과 손편지였다. Brex의 경영진은 VC 투자 동향을 소개해주는 Pitchbook의 보고서에서 지난 6개월간 샌프란시스코 Bay 지역에서 시리즈 B 이상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을 간추렸다. 약 300개 정도의 회사가 리스트에 올랐다. 그리고 뵈브 클리코 (Vevue Clicquot) 샴페인을 개당 50달러를 주고 사서 Brex 대표의 손편지와 함께 선물로 보냈다. 편지에는 "최근에 투자받으신 것을 축하합니다. 스타트업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고 저희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라고 썼다.


뵈브 클리코 샴페인 이미지


선물이 배달된 후, Brex의 서비스를 시험해 보겠냐는 이메일에 75%의 스타트업이 응했고, 그중 75%가 최종 고객이 되었다. 300개 후보 회사 중 무려 169개 회사였다. 샴페인 1만 5천 달러, 손 편지 2천 달러, 배달비 2천 달러 등 총 1만 9천 달러 (한화 약 2500만 원)을 쓴 것 치고는 엄청한 결실인 셈이다.


세 번째 캠페인은 행사 후원이었다.  특히 SaaS 창업자,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업계 최대 행사인 SaaStr 연중행사를 후원하면서 업계 관계자로부터 크게 눈도장을 찍었다. 물론 후원금을 내는 것만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Brex는 5만 달러부터 50만 달러 사이의 후원금 옵션 중 5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리고 참가자 호텔의 키를 Brex 법인 카드 모양으로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행사 장 밖에서는 고용한 몇몇의 행사 요원이 Brexfast라고 이름 붙인 3달러짜리 브리또를 무료로 나눠줬다.  행사 장 내에서는 유명한 마술사 Joe Skilton이 Brex 법인 카드를 이용한 마술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행사장에서 반경 1마일 이내의 버스 정류장 광고판도 단기로 임대해서 광고를 걸었다.



Brex 법인 카드 모양의 호텔 키 (왼쪽 상단), Brexfast 브리또 (왼쪽 하단), Joe Skilton의 마술 쇼 (오른쪽)


버스 정류장의 Brex 광고


짧은 시간에 강렬하게 진행된 세 가지 캠페인으로 공식 론칭 5개월 만에 고객이 100개 회사에서 순식간에 1,000개 회사로 늘어났다. 이로서 Brex는 그들의 마케팅 능력을 만천하에 입증했고 곧이어 유니콘 기업이 될 수 있었다.


이후 Brex는 스타트업 시장을 넘어서 일반 중소업체로 영역을 확장했다. 초기 사업 모델인 법인 카드 발급을 넘어서 종합 지출 관리 서비스 회사로 거듭났다. 회사의 슬로건도 "스타트업부터 대기업에 이르는 AI 기반 지출 플랫폼"으로 바뀌었다.


창업 7년 차가 된 Brex의 현재 가치는 약 123억 달러(약 14조 6800억 원)에 달한다. 전체 유니콘 기업의 단 4%, 전 세계 50개 기업이 채 안 된다는 데카콘 (기업가치 10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기업) 것이다.


공동 창업자 페드로는 2022년 3월 쿠팡의 '사외이사'가 되었고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쿠팡 이사진 (쿠팡 웹사이트)


공동 창업자 엔히크는 같은 상파울루 출신인 소프트웨어 개발자 Laura Fiuza와 2023년 10월 결혼했다.

페드로 프란세스키 (맨 왼쪽), 라우라 피우자 (중앙), 엔히크 두부그라스 (맨 오른쪽)

엔히크와 페드로는 현재도 Brex의 공동 CEO이다. 그리고 둘 다 현재까지 30살이 채 되지 않았다.


DR. T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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