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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 Apr 27. 2023

낯설지만 행복했던 그날

우리의 첫 대구 데이트

2012년 8월 1일. 그날은 유독 모든 것이 낯선 날이었습니다. 그때의 제게 처음인 것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혼자서 수도권을 벗어나 떠나는 것도, 지도에서만 보던 '대구'라는 도시를 가는 것도, KTX라는 열차를 타는 것도, 아내의 이끌림을 따라 데이트를 하는 것도. 모두가 제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이었고, 그래서 더욱 설렘이 가득한 날이었습니다.


데이트를 위해 예매한 동대구행 KTX 승차권. 영화와 달리 이때는 미리 승차권을 예매했습니다.


그날 아침 8시. 저는 가까스로 시간을 맞춰 동대구행 KTX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몸의 피곤함을 느낄 겨를이란 없었습니다. 방학을 하고 한 달 넘게 만나지 못했던 아내를 다시 만난다는 기쁨과 설렘이 앞섰으니까요. 동시에 다소의 조급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얼른 대구에 도착하고자 가장 빨리 가는 열차인 KTX를 탔지만, 되려 저는 '얼마나 지나야 이 기차가 대구에 도착을 하려나?' 하는 생각을 했었으니까요.


그렇게 KTX에 몸을 맡긴 지 어언 두 시간이 지나고, 저는 드디어 동대구역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리고 역에 미리 마중을 나와 있던 아내를 만났죠. 때는 한여름에 날씨도 햇볕이 쨍쨍한 날인 데다, 너무 더운 나머지 '대프리카'라는 별명을 가진 대구에서의 만남이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났던 만큼 너무 반가웠고, 그냥 지금 이곳에 몇 시간을 함께 있더라도 즐거울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무릇 데이트란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장소에서 즐겨야 느낌이 더 살아나는 법이죠. 아내는 미리 데이트 장소로 어울릴만한 곳을 찾아 제게 알려줬고, 저도 아내의 의견을 따라 그날의 데이트 장소를 향하여 다시 버스를 탔습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는 모 테마파크.


버스로 다시 두 시간 남짓을 달려 도착한 곳은 달성군에 있는 한 테마파크였습니다. 그곳은 무더위를 이겨내고 온 저희에게 크나큰 선물과 같은 느낌을 주던 곳이었습니다. 테마파크 입구에서부터 수많은 나무가 높게 자라 있었는데, 따가운 햇살을 막을 길 없던 저희에게 나무들은 든든한 가림막이 되어주었죠. 먼 길을 달려와야 했지만, 그만한 보람이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습니다.


테마파크 안에 있는 나무들. 아무리 햇볕이 따가워도 방문객을 시원하게 감싸주는 고마운 존재들이었습니다.


저희는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했었습니다.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가로지르며 산책도 하고, 테마파크 내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또 지정 시간에 맞춰 테마파크 안에 있는 공연장에 들어가서 물개와 원숭이가 등장하는 동물쇼를 구경하기도 했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이 순간 같은 공간 안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을 뿐이었죠.


장모님의 손을 빌려 아내가 준비해 준 도시락. 음식도 장식도 모두 일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순간을 고를 것 같습니다. 아내가 지금의 장모님께 부탁하여 준비해 온 도시락을 함께 먹던 순간이죠. 김밥과 유부초밥, 과일 등을 담은 도시락 통에 저렇게 예쁜 장식을 달아서 갖고 온 것인데, 덕분에 보는 맛과 먹는 맛 모두 만족스러웠었습니다. 특히 이 장식을 저만 예뻐했던 건 아닌 게, 제가 이 도시락을 보자마자 너무 예뻐서 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더니 사진을 본 사람들마다 예쁘다고 칭찬하는 댓글이 여럿 달렸었습니다.


동시에 이 순간이 이 날 제게 가장 긴장된 순간이기도 했었습니다. 지금의 장모님과 처음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순간이었기 때문이었죠. 도시락을 먹던 도중 아내가 장모님과 카톡을 주고받았었는데, 갑자기 아내가 자기 폰을 제게 주더니 장모님과 인사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맞이한 저는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울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그걸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태연하게 폰을 제게 넘길 뿐이었죠. 결국 저는 장모님과 짧게나마 카톡으로 첫인사를 건네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도시락 잘 먹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앞으로도 우리 딸이랑 사이좋게 잘 지내고~




그렇게 저희가 즐거운 순간을 나누는 사이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서쪽으로 기울고, 해가 있던 자리를 달이 넘겨받았습니다. 첫 데이트 때에는 제가 아내를 보냈지만, 이 날은 아내가 저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죠. 더 함께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다음에 또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저희는 그렇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정말 낯설지만 행복했던 날. 그날이 저와 아내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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