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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엘 Feb 01. 2024

견뎌내 보겠다는 용기

뜻밖의 이메일


안녕하세요팀장님

D-기술혁신의 김땡땡입니다.

 

많은 업무로 바쁘시겠지만 팀장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이렇게 메일로 연락드립니다.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1년 전쯤, 역삼에서 사내 벤처 프로그램 2 심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교육을 통해 팀장님을 처음  적이 있습니다최종 평가를 앞두고 우연히 로비에 계셔서 사업 계획에 대한 코칭 부탁드렸습니다.

 

퇴직자와 취준생의 멘토링 시스템 구축 아이디어를 보여드렸는데요, 왜 하려고 하는지,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고객과 투자자에게 쉽게 다가가고 설득하려면 어떤 요소들이 필요하고 이런 요소들이 어떻게 제시되어야 하는지 등 하나하나 질문하고 의견 주시는 것을 들어보니, 제 사업계획서는  기대와는 달리 부족함 투성이었습니다.

 

 아이디어에 대해 솔직하게 의견을 주시는 모습을 보고팀장님이라면 제가 갖고 있는 고민에 대하여 객관적인 평가를  주시고제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조언을  주실  있을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사업계획뿐 아니라 개인적인 커리어 방향에 대한 고민을 말씀드렸고제게 해주신 조언들  '계속 노력하고 시도하다 보면 기회는 찾아온다'라는 말씀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기억이 납니다.

 

올해 초에 D 부서로 이동하면서 제가 갖고 있는 고민과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하여 상무님께 말씀드렸고이에 따라 D부서의 Staff 배치받아 엔지니어 일이 아닌 관리 업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기회' 찾아왔습니다상무님께서 저에게 이동에 대한 말씀을 먼저 꺼내주셨고, '알아봐 주지는 못하지만 받아주겠다는 곳이 있다면 보내줄 테니 직접 한번 알아보라'라고 하셨습니다.

  

서론이  길었지만 제가 팀장님하고 대화를 나눈 시간은 20 남짓이었지만시간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조언을 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팀장님 같은 분 밑에서 일하면서 팀장님이 가지신 역량과 노하우를 습득하고 싶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또한 저에게 앞으로 살아가는데에 있어 중요한  인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업무에 상관없이 단지 팀장 밑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 아닙니다.

 

사내벤처를 통해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ESG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고이와 관련된 일을 배우고해보고 싶었습니다때마침 말씀하셨던 기회가 찾아왔고이렇게 연락을 드립니다

  

글을  쓰진 못하지만기다림 끝에  기회를 아무렇게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턱대고 옮기고 싶다 연락을 드리는 것보다는 제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어떤 사람인지에 대하여 부족하나마 글로 조금 설명드리고 싶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땡땡 올림 

 

P.S. 조금이나마 저에 대한 정보를  드리고 싶어부끄럽지만 학생  했던 활동들 간략하게 붙입니다.



20분의 인연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는 보통 연말에, 때로는 연중, 부서 이동이 있다. 이 메일을 받았을 때는 조직 세팅이 끝나고 열심히 달리고 있던 7월이 있다. 


내가 맡고 던 지속경영 부서에는 업무에 관심 있는 구성원들이 이동이 가능한지, 어떻게 하면 이동할 수 있는지 연중 문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대부분은 연말 조직개편 때 이동하기 위해 사전에 정보를 얻고 포석을 쳐 놓으려는 것이지, 이렇게 당장 이동하고 싶다고 들이대는 것은 아니었다. 


김땡땡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사내벤처 발굴 프로젝트를 겸직하면서 만났던 사원급 젊은 청년이었다. 연차가 낮은데 사내벤처 발굴 프로그램에 들어오는 경우는 많지 않아서 눈에 띄었다. 큰 키에 넓은 어깨를 가진 체격 좋은 친구가 사업계획서 발표 직전까지 혼자 끙끙대면서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있어 보여서 일부러 먼저 말을 걸었었다. 

 

좋은 회사에 들어오긴 했지만, 조직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사내벤처 발굴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지원하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조직에서 나가고자 하는 마음만큼 탄탄한 사업을 구상하지는 못했고, 더욱이 회사의 기술을 연계해서 회사와 시너지가 날 방법이 너무 미약했다. 


회사의 지원을 받지 못할 것은 뻔했고, 어디에 들고나가도 투자를 받기는 어려워 보였다. 사업 아이템보다 사업가로서의 자세와 준비 정도가 더 문제였다. 지금 있는 조직이 잘 안 맞는다고 안 되는 사업을 시도하겠다며 어차피 되지 않을 사업을 준비한다고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도록 할 수는 없었다. 


하여 독설에 가까운 직설을 해 주었다. 


그동안 여러 해동안 스타트업 육성과 투자 업무를 하면서 많은 기업가들과 예비 기업가들을 만났다. 냉정한 피드백일수록 일찍 해 주는 것이 개선을 하든 피벗을 하든 접든, 현실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봐 두리뭉실하게 피드백을 하게 되면, 상대방은 사업적인 측면에서든 리더로서든 더 효과적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다른 상황에서도 그럴 수 있지만, 특히 사업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시에 주는 냉정한 피드백이 정말 중요하다. 


김땡땡에게는 잘 맞지 않는 조직이더라도 당장 얼마간은 버틸 수 있는 끈을 만들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계획서에 대한 피드백보다는 인생 고민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스스로의 욕심과 싸우든, 조직과의 부조화와 싸우든, 선배들의 불합리와 싸우든, 성장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싸움을 하도록 하는 게 필요했다. 적어도 괜찮은 대안이 나올 때까지는 그 안에서 잘 버텨야 한다. 


사내벤처 발굴 프로그램에서는 중도 탈락했고, 당시 부서에서 잘 버텨보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들었다.


조직 이동을 위한 러브 레터


그때는 그렇게 마무리되었었는데, 1년이나 지나, 그것도 연중에 생각지도 못했던 메일을 받은 것이다. 직언을 해 주는 상사 밑에서 일해보고 싶다, 제대로 성장해보고 싶으니 받아달라는 러브레터. ㅎㅎ


이런 메일이나 전화를 종종 받는다. 하지만 이번 메일을 받았을 때에는 이렇게 보아주고 말해주어 감사하다는 생각보다, 이동을 하기 위해 너무 아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러브레터급의 메일이나 카드는 보통 조직 변화가 있거나 개인적인 이유로 서로 헤어지게 될 때에나 받기 때문이다. 

 

부서 이동을 하는 경우, 보내주는 쪽에서도 받는 쪽에서도 HR부서와 이야기가 되어 TO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고, 받는 쪽에서도 충분히 부서에 도움이 되는 인재라는 것이 어필되어 임원까지 승인이 나야 한다. 이때 이전 업무 연계성이 있으면 좋을 수도 있지만, 워낙 부서가 다양한 대기업이다 보니 그것보다는 업무 역량, 평판, 개인과 조직의 이동 니즈 등이 더 중요한 고려사항이 된다. 


김땡땡도 원래 공학을 전공했지만 엔지니어로서의 업무가 잘 맞지 않아서 스텝 부서로 이동하려고 계속 시도하고 있었고, 현재 부서 쪽에 알아보니 일머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 부서도 계속 업무 영역을 넓히고 있어서 연중에라도 이런 인력이 충원된다면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단지 김땡땡의 의지와 업무 적합성을 다시 테스트해 보기 위해, 엔지니어로서의 경력과 향후 관심 있는 커리어 영역을 고려할 때 더 적합할 수도 있는 다른 부서가 낫지 않을지 다시 물어보았다. 원하면 그쪽 부서에 추천해 줄 수도 있다고 하면서.


그러나 김땡땡은 완강하게, 나와 일을 해보고 싶은 열망이 더 강하고 엔지니어로서 현업에서 일했던 경험이 어떻게 지속경영 업무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강조하였다. 프로세스적인 일들이 많다고 하니, 그런 일들 해 봤었고 더 하고 싶다고 했다. 


정히 그렇다면 우리 쪽에서는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다만 내 부서의 임원은 내가 보고하고 승인받으면 되지만, 부서 HR과 전사 HR 등을 설득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 김땡땡에게 이후에 해야 할 절차들과 요령을 알려주었고, 몇 주에 걸쳐 HR과의 협의가 잘 되어 우리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 

 

다시 한번, 도전... 그리고 엄청난 노력


일이 다 마무리되자 감사한 마음과 웃음이 났다. 


다행히 김땡땡은 우리 부서에 와서 잘 적응해 주었다. 담배를 매개로 20년 안팎 나이 차이가 나는 부장급 선배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팀 막내로 궂은일도 나서서 하기도 하였다. 새로운 업무를 배운다고 노력하고, 이전 부서에서의 경험을 녹여내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도 하였다. 


있던 조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지푸라기 붙잡듯이 나에게 메일을 보냈었겠지만, 이렇게 환경을 바꾸기 위한 시도를 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우리 마음을 다잡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상처받고 치유받고, 시도하고 거절당하고, 실패하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하고. 그리고 결과가 당장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성실하게 오늘을 살아내려고 한다. 


어느 부서라고 편하기만 하고, 어떤 상사라고 좋기만 하겠는가. 그러나 상황이 힘들면 왜 힘든지 얘기할 수 있고, 일이 어려우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나눌 수 있고, 좌충우돌하는 가운데에 나도 성장하고 조직도 성과를 내고, 하는 것이 회사생활 아니겠는가.


당시 나도 나름 이러저러한 조직 내 어려움들을 이겨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구성원이 부서에 오면 분위기가 조금 더 활기차게 바뀌기도 하고, 업무 분장이 조정되고 가르쳐야 할 대상이 생기면서 선배들 또한 긴장감과 자존심이 고조된다. 실제로 우리 부서는 조금 더 재미있어지고, 조금 더 업무 성과에도 욕심을 내게 되었다. 


김땡땡이 보내온 메일 하나로 시작된 일련의 일들로 우리는 모두 어려운 현실을 잘 견뎌내 보려고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했다. 각자 생의 무거움을 짊어지고 나아가면서도 내 어깨 무거운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서로를 돌아봐주며 사는 것. 조금 더 견뎌내 보겠다고 용기 내는 것, 거기에서 우리는 소소하나마 행복감을 느끼고 또 하루를 이어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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