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진 말이 동동 떠다닐 때

by 햇밤

남편과 나는 9개월 만에 결혼했다. 사계절을 겪어보지않고 결혼했지만 어느덧 20년가까이 별탈없이 잘 살고 있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 기억이 흐릿해진 탓일 수도, 과거미화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각자 자기 친구들과 놀기 시작한 뒤부터 주말이면 남편은 소파와, 나는 침대와 한몸이 되었다. 안방침대에 누워 방문이 열려있으면 소파에 누워 숏츠를 보는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키득거리며 유튜브 영상을 보다 링크를 하나 보냈고 그걸 계기로 그도 유튜브에 입문했다. 이제는 재미있다며 영상을 나에게 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저 정도로 소파에 누워 지낼줄은 몰랐다. 야너두?


세아이를 키우는 육아동지로 우리는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고 때로는 감정적으로 기대기도 하면서 여전히 파트너십을 맺고있다. 함께 살아온 시간이 상당하다보니 우리도 서로에게 익숙한 존재가 되었다. 연애초반 그렇게 가슴뛰던 사랑은 강산이 두번 바뀌는동안 은근한 정으로 변했다. 솔직히 이 나이에 가슴뛰면 부정맥이 아닐까 의심해봐야된다.


부부가 서로에게 가족이 되면 어느 순간부터 말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때가 오더라. 귀찮은 날에는 한쪽 귀를 닫아버렸다. 귀담아듣지 않은 그의 말은 동동 떠다니다 허공속으로 사라졌다.


거기에 못마땅함에서 비롯된 습관적인 잔소리, 익숙함이라는 단어의 부작용인 소홀함이 더해지면서 우리사이에 틈이 생겼다. 그가 평소에 내게 하는 말들이 그리 곱게 들리진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한 번 더 생각하면 맞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듣는 순간 온전히 수긍하기가 쉽진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본적으로 생각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몇 달 전에 내면의 자유를 위해 놓아주기를 연습하는 책을 샀다. 밀리의 서재로 읽다 끝내 완독하지 못하고 서비스가 끝나버려 종이책으로 살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밑줄을 그은 문장들이 그가 평소에 내게 하던 말이란 것을 알고는 제법 놀랐다.


그가 나에게 말을 시작하면 나는 들어줄 여유가 없었고, 내가 다가가면 그가 별관심이 없어보여 이내 하려던 말을 닫아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떠다니던 말풍선조차 몇개 없는 사이가 되었고 그렇기에 우리는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점점 힘을 실었다. 이제서야 생각해보면 어쩌면 우리사이에 은근하게 남아있는 정이란 건 알아차림의 속도일지도 모르겠다. 더 늦기전에 서로에게 닿지 못하고 떠다니던 말이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게 조금더 귀를 쫑긋거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