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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울 Dec 21. 2023

나의 실패연대기

나의 실패는 (아마도) 계속된다

'실패'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진 건 오늘, 정말로 원하던 학교에 2년 연속으로 낙방한 일 때문이다. '실패는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같은 자기 최면을 걸려는 건 아니다. 단지 이 실패라는 존재에 질릴 대로 질렸고, 또 한 번 풀어내야 시원할 것 같아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꽤 자신 있었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을 보고 왔지만, 꽤 마음에 드는 글을 썼다고 스스로 느꼈고, 그래서 내심 기대했다. 작년엔 충분히 나다운 글을 쓰지 못했다. 그저 상황에 맞는 말을 찾기에 급급했고, 그것은 아마도 내 것이 아닌 말들이었다. 그래서 올해 시험을 보고 나오면서 작년보다 훨씬 홀가분했다. 붙어도 그만, 떨어져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마음 깊은 곳의 기대는 의식적으로 지울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떨렸고, '불합격'이라는 세 글자를 보았을 땐 작년만큼 허망했다.


실패에 연연하지 않으며 살고 싶지만, 그건 마음처럼 쉽지 않다. 실패와 성공은 객관적인 지표다. 아무리 도전 자체에 의의를 둔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도전보다는 성공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때로는 당당히 들어 보여줄 '합격'이란 글자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시험을 치르고 나오며, 결과에 상관없이 만족스러운 글을 썼으니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도전의 가치가 나밖에 모르는 것이 되었을 때, 내 노력을 증명해 보일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나는 조금 초라해진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남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또래보다, 같은 꿈을 가진 이들보다 내가 얼마나 뒤처졌는지, 나의 실력은 얼마나 형편없는지, 앞으로 내가 갈 길은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 실패는 비교를 불러오고, 비교는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여러 번의 실패를 겪다 보니, 내가 실패하는 인간이라고 느끼게 됐다. 쓸모없는 인간은 아니지만, 실패하는 인간. 내 짧은 경험을 돌아보면 무언가 한 번에 성공한 적은 거의 없었다. 내 목표가 큰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에 내 목표에, 원하던 바를 이룬 적이 드물다. 그럴 때마다 실패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했지만, 막상 결과를 받아 들면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에게, 세상에게. 그리고 실패와 떨어질 수 없다면 실패를 끌어안고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슬픔은 사랑의 반증이다. 무언가를 잃어보지 않으면 그 소중함을 느끼기 힘들다. 오늘 체육관에서 (불합격의) 분노를 삭이며 샌드백을 치다가, 주먹을 잘못 뻗어 팔을 조금 다쳤다. 운동하다 처음으로 몸을 다치고 나니, 그동안 상쾌하게 뻗던 주먹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달았다. 적확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부재를 직접 겪어내고 나서야 존재를 더 절실히 느낀다는 말이다. 실패도 그런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잠시 마음이 놓이곤 한다.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서는 약 50년 전 쿠바에서 이름을 날렸으나 세월이 지나며 잊힌 과거의 뮤지션들을 다시 모아 최고의 재즈 밴드를 만든다. 영광을 누렸던 뮤지션들은 모두 할아버지가 되어 구두를 닦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등 완전 다른 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 할아버지들을 모아 앨범을 만들고, 마침내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오래전에 본 영화지만 보컬 이브라힘 페레르 할아버지의 말이 생생하다. 그는, 모두는 언젠가 꽃을 피우고, 나에겐 그것이 지금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내가 꽃을 언제 피우게 될지 모르는 일은 참 고되다. 겨울이던 여름이던 치열하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젠간 분명히 꽃을 피울 수 있다는 확신의 마음은 단단하다.




이 글을 써놓고 꽤 시간이 흘렀다. 물렁물렁하던 마음이 조금은 단단해진 것 같다. 이제 다시 시작할 마음이 생겼다. 무엇이던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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