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다큐프라임 자본주의 리뷰
물가가 참 끊임없이 오른다. 군대에 갔다 오니 확 체감이 된다. 요즘엔 밥 값이 무슨 기본 10000원이다.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다 보면 메뉴 하나에 15000원은 가볍게 넘어간다. 심지어 둘이 한 끼 먹는데 50000원 넘게 나오기도 한다. (여자친구가 제로콜라랑 사이드 꼭 시킴)
과연 물가는 왜 이렇게 오를까?부터 시작해서, 자본주의의 끝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까지 ebs에서 깔끔하게 짚어주었다. 이를 간단하게 요약, 리뷰하려 한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은행의 비밀
당신은 은행원에게 속고 있다.
당신은 마케팅에 속고 있다.
자본주의, 문제는 없을까?
자본주의의 이젠 어디로 가야 할까?
그럼 은행의 비밀부터 바로 파헤쳐 보자.
물가는 왜 오를까? 학생 때 가격은 수요와 공급 곡선에 의해서 정해진다고 배운 적이 있다.
그래프에 따르면 공급이 부족해지거나,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은 오른다.
1970년 한국 물가지수에 따르면 짜장면 가격 100원이며
2023년 현재, 짜장면 가격은 7000원이다.
무려 70배나 올랐다.
그럼 지난 50년간 70배에 가깝도록 짜장면 공급이 부족해지거나, 수요가 많아진 걸까?
당연히 아니다. 짜장면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그럼 물가는 왜 오를까?
바로 시중에 돈의 양(화폐)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흔해지면 값이 싸지고, 귀해지면 값이 오른다. 돈이 많아졌기 때문에 돈의 가치가 하락했고, 그 여파로 물가가 오르게 된다.
쉽게 말해, 옛날 만 원과 지금 만 원의 가치가 다르다는 뜻이다.
즉, 물가가 오른다는 말은 사실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말이다. 그럼 괜히 돈의 가치만 떨어지게 시중에 돈의 양은 왜 계속 많아지는 걸까?
그건 은행 때문이다. 자본주의 구조상 은행은 돈을 찍어낼 수밖에 없다.
은행은 왜 돈을 찍어낼까? 그 이유는 은행의 비밀에 있다.
은행은 사실 장부에 적힌 모든 돈을 실제로 가지고 있지 않다. 장부의 10%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럼 나머지 90%의 돈은 어디 있냐?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줬다. 즉, 내가 100만 원을 맡긴다 치면 10만 원만 저장해두고 나머지 90만 원은 이미 다른 사람한테 빌려준 상태다. 그래서 내가 100만 원을 모두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다.
이렇게 해도 해도 되나? 된다. 왜냐면 모든 사람이 동시에 돈을 몽땅 찾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사람이 동시에 통장에 적힌 모든 돈을 인출한다면 은행은 파산하고 만다. (뱅크런)
아니, 그럼 내 돈을 그렇게 마음대로 빌려줘도 되나? 법적으로 문제가 없나? 문제가 없다. 국가에서 허락해 줬다. 이는 시장에 풀린 90%의 돈으로 인해 시장 경제가 더욱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돈이 묶여서 노는 것보단 돌아다니는 게 좋으니까.
은행은 이렇게 돈을 빌려준 뒤, 그 이자로 먹고산다. 여기서 은행이 돈을 찍어내야 하는 이유가 발생한다. 바로 이자를 받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이 세상에 돈이 100만 원밖에 없다 치고, 이를 A에게 몽땅 빌려줬다고 치자. 그리고 그 100만 원에 대한 이자는 만 원만 받는다고 치자. A는 과연 돈을 갚을 수 있을까? A는 절대 돈을 갚을 수 없다. A가 일을 열심히 안 해서가 아니고, 세상에는 돈이 100만 원밖에 없으니 101만 원을 갚을 수 없다. 그래서 은행은 이 만 원을 찍어낸 후, 시장에 다시 풀어야 한다.
즉, 만 원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빌려줘야 한다는 뜻이다. 근데 만 원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면 그 빌려준 만 원에 대한 이자 역시 새로 생기고, 이 이자 역시 다시 찍어내야 한다. 은행은 이런 식으로 계속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기 시작하고 돈을 찍어낸다. 그런 식으로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돈을 빌려준다. 이게 바로 시장에 계속 돈이 증가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물가는 계속 오른다. 돈 역시 누군가는 계속 갚아야 한다. 정부의 규제에 의해서든, 시장 상황에 의해서든 언젠가 돈 찍어내기(이자 찍어내기)가 끝나는 순간이 오면, 누군가는 반드시 파산한다. 그리고 그 폭탄 돌리기 게임에서 피해를 보는 건 항상 마지막에 돈을 빌린, 계급이 낮은 사람들이다.
은행의 비밀에 대해서 알고 나면, 은행은 우리의 돈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우리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은행도 기업일 뿐이다. 돈을 벌려고 하는 기업.
그렇기 때문에 은행에서 추천하는 금융상품이나 카드 같은 것들은 모두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은행 자신을 위해 추천된다. 은행 뱃속으로 들어갈 뿐인 거다. 재테크 열풍이 불었을 때 제일 배가 부른 사람? 누굴까? 재테크로 돈 번 당신일까? 아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수익을 챙기는 은행이다. 심지어 은행은 당신이 재테크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수수료를 떼며 돈을 번다.
특히 은행에서 이율이 높은 상품, 혹은 수익성이 높은 상품을 추천한다는 건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고수익이면서 안전한 건 없다. 수만 가지나 되는 금융상품은 은행원조차도 뭐가 제일 좋은지 모른다. 그냥 프로모션이 나왔기 때문에 실적을 올리기 위해 당신에게 추천할 뿐이다. 은행원은 당신의 가족도, 베스트 프렌드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금융 지능을 길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어떤 상품이든 본인 스타일에 맞게 잘 알아보고 구매해야 한다.
당신은 얼마나 합리적인 소비자라고 생각하는가? 나름 절제하며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쇼핑 중독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세상에 합리적인 소비란 없다는 거다. 여러분이 아무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소비를 한다고 생각해도 착각일 뿐, 사실은 이미 무의식 속 마케팅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브랜드 컨설턴트 마틴 린드스트롬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아기가 한 살 반이 되면 최소 백 개의 브랜드를 기억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2개월 때부터 이미 브랜드에 영향을 받아 자기 정체성을 브랜드를 통해 묘사하게 됩니다. 슬픈 일입니다."
아기도 이 정도인데 학생들은 어떨까? 요즘은 초등학생부터 명품이 유행이다.
당연히 이를 보고 합리적인 소비라고 하긴 어렵다. 동시에 이런 소비 형태가 단지 학생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건 우리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마케팅은 이미 무의식 속까지 들어왔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 심지어 눈치채지 못하게 스며들어있다. 그렇게 무의식에 스며들어 사소한 것 하나하나 우리를 조종한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선 내가 한 달에 얼마 정도를 써야 하는지 기준이라도 잡아야 하지 않을까? 다행히 금융감독원에서 잡아준 기준이 있다. 자신이 번 돈의 60% 정도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 소비 기준이라 한다. 나머지 40%는 모두 저축을 한다는 기준이다. 70% 이상이면 과소비, 50% 이하면 알뜰 소비로 보고 있다.
소비는 합리적이기보다 감정적이다.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슬플수록 더 소비를 하게 된다. 또 자존감이 낮을수록 더 소비를 하게 된다. 이는 소비로 보상받으려고 하는 심리 혹은 내가 구매하는 이 물건이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진 않을까 하는 기대 심리가 크다. 하지만 알다시피 물질적인 소비는 일시적인 기쁨만 가져다줄 뿐이다. 그러니 소비에서 행복을 찾기보단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소련이 무너지며 공산주의가 패배하고, 자본주의가 승리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이대로만 가면 될까? 그렇다고 대답하긴 꺼려진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해 보이고, 돈 때문에 육아는커녕 결혼마저 힘들어 보인다. 부모님 세대는 도대체 어떻게 30대에 집에 차에 결혼에 아이까지 낳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부익부 빈익빈이 더 심해지고 신분 상승이 불가능해 보이는 지금, 자본주의엔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의견부터 들어보자. 그는 <국부론>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에 대해 설명하고 유명세를 얻었다.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여기 나왔다. 그는 국부론을 통해 자유시장 경제를 외친다. 경제는 건들지 않아도 알아서 잘 돌아간다고 믿었다.
“<국부론>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나 뉴턴의 <원리>만큼이나 정말 중요한 책입니다. 근대 경제의 기본을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노동 분업과 국민 총생산, 무역과 개방의 중요성, 무역 장벽의 문제점들은 지난 수십 년간 경제학의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 에이먼 버틀러
애덤 스미스는 전작 <도덕 감정론>에서 한 가지 질문을 한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인데 어떻게 이기심을 누르고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답은 바로,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존재는 도덕적 행동을 해야 하며, 우리는 이를 판단해 줄 양심(도덕적 관찰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애덤 스미스는 아무리 터치를 안 하고 자유시장 경제라 하더라도, 부를 무한정 소유해도 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부 역시 마찬가지로 허락되는 사회적 규범 내에서, 양심에 맞게 소유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아버지인 그는 부자들보다는 서민들을 걱정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서민들을 구제할 것이라 믿던 사람이었다.
이번엔 공산주의의 아버지인 칼 마르크스의 차례다.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다만 서민을 구제하기 위한 정답이 자본주의가 아닌 공산주의라 믿었다. 그의 저서 <자본론>에는 '왜 노동자들은 일을 해도 계속 가난하고,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될까?'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놀랍게도 현재까지도 들어맞는 말이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현대판 노예인 셈이다. 부자들을 위해 일을 하느라 노동자는 더 가난해지고, 부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자연스레 더 부자가 되는 시스템. 자본론은 이 문제가 되는 시스템을 처음으로 정확하게 꿰뚫어보았다. 비록 자본주의가 실패하고, 공산주의가 성공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빗나갔지만 그가 제시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우리는 해결해야 할 테다.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 이 둘이 주장한 이론은 비록 반대지만 이상은 같았다. 둘 다 사람을 사랑하고, 어떻게 하면 모두가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될까 고민한 대단한 사상가들이다. 앞으로 자본주의가 대답해야 할 질문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모두가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
250년이 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분명 경제는 성장했고, 기술은 발전했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한가?
딱히 행복한 것 같진 않다. 자본주의는 막대한 부와 기술들을 만들어냈지만, 가장 큰 문제점인 격차 또한 만들었다. 덕분에 요즘 가장 핫한 키워드는 '평등'과 '공정'이다.
자본주의를 버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를 지금 여기까지 끌고 와준 건 자본주의다. 다만 이젠 구식이 되어 하나 둘 문제가 생긴 자본주의를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이 격차를 해결할 방안으로 복지를 이야기한다. 단, 우리가 해야 할 복지는 퍼주기식 복지가 아니다. 자립 가능한 복지, 일자리를 만드는 복지다. 물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고, 잡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복지가 창의성과 연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oecd 국가 들 중 복지 지수가 높은 국가들은 대체로 창의성 지수 역시 높게 나왔다. 배도 불러야 창의성이 나온다. 당장 오늘 먹고살기 바쁜데 내일을 생각할 순 없으니까. 실제로 부모가 부자인 경우, 자식이 더 리스크 있는 일을 시도한다고 한다. 뒷배가 있어야 도전도 한다.
복지가 단순히 사회적 약자를 돕는 차원을 넘어서 창의성을 기르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복지는 우리가 마음껏 다양한 시도를 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우리는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어야 한다. 간디는 말했다. "실패할 자유가 없는 가치란 가치가 없다."
우리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은 실수와 실패를 용납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눈치 줄 필요도, 눈치 볼 필요도 없다. 마음껏 시도하고, 실패도 해봐야 한다.
또 우리의 가장 강력한 권리인 투표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간디는 철학 없는 정치를 나라를 망하게 하는 악덕으로 꼽았다. 우리는 철학을 가진 정치인에게 열심히 투표하면 된다.
다시금 자본주의는 누구를 위한 자본주의인지 물어야 할 때다.
지금까지는 은행, 정부, 자본가와 같은 1%를 위한 자본주의였다.
이젠 99%의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돌아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