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오해하는 방식

당신은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나요?

by 예온 YeOn

지나가던 행인이 길을 물어온다. 도움이 간절한 표정이다. 내겐 안방처럼 익숙한 동네지만 그에게는 먼 나라의 풍경만큼 낯설기만 하겠지. 약간 짠해진 나는 멈춰 서서 그가 가야 할 길을 상세하게 일러준다. 내 설명에 오류가 없는 한 그는 원하는 목적지에 닿게 될 것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낯빛이 밝아지는 행인을 보며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길이란 참 정직해서 좋구나.


길은 '여기'와 '저기'를 연결한다. 그러니 길에게 다른 의중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길 잃은 사람에게 미로 같은 길은 자신을 골탕 먹이는 존재처럼 느껴질 것이다.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소소한 불운도 길의 맹랑한 소행이라고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런 오해를 받고도 길은 결코 억울해하는 법이 없다. 진땀을 흘리며 해명하지도 않는다. 소위 ‘쿨’하게 넘겨버린다. 반대로 어떤 찬사도 길을 감흥 시키지 못한다.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다고 한들 길은 전혀 기뻐하는 기색 없이 여전히 사람들 발아래 누워 여기와 저기를 연결하는 소임을 다할 뿐이다. 길은 정직하고 순수한 목적 아래에 존재하지만, 그 길 위에 놓인 상황과 기분에 따라 사람마다 각각 다른 의미 부여를 한다. 그것들을 나는 ‘길을 오해하는 방식’이라고 이름 붙였다.


나의 오해는 ‘길’이 나의 문제들을 흡수해 준다는 것이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나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무척 화가 나 있었고 끓어오르는 분을 삭이고자 무작정 길을 나선 참이었다. 마치 길 위에 화풀이로 발길질을 하듯이 걸음새가 거칠었다. 길은 신음조차 내지 않고 나의 무의미한 폭력을 받아들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짙게 드리운 구름 사이로 초승달이 보였다. 나는 빛이 끝나는 지점에서 이어지는, 달의 어두운 실루엣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아무도 달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겠지.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완벽하게 이해될 수 없는 것처럼. '불완전해도 괜찮아. 나도, 너도, 그 누구도.' 달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문득 저 달에서 내려다보는 지금 이 길은 어떤 풍경일까 궁금해졌다. 나는 제법 먼 곳까지 걸어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달에서 보면 마치 제자리걸음처럼 보이겠지. 그래서 아마 잊을 수 있었으리라. 내가 화가 난 이유에 대해서. 그것은 달과 지구와 내가 포함된 거대한 우주 속에선 먼지처럼 작고 하찮은 일이었기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걸음이 가뿐했다. 출처가 불분명했던 분노는 길이 모두 흡수해 버린 것 같았다. 달빛이 길 위에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타박타박. 달빛이 아픈 길을 토닥이고 있었다.


‘리타의 산책’ (안리타 저, 홀로씨의 테이블, 2025)에서 저자는 매우 숭고한 방식으로 길을 오해한다.
그는 산책을 통해 수렁에 빠진 영혼을 구하고, 자연과 교감하는 동시에 자연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심연의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탄성처럼 호흡을 터트리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산책은 가야 할 곳이 있어서 걷는 것이 아니라, 걷기 위해 길 위에 오르는 것,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무작위로 주어지는 감각에 집중하고, 사유해 보는 것, 잠시 에고로서의 자기를 떠났다가 변화된 존재가 되어 나로 돌아오는 것이다. 저자에게 길은 엄숙하고 경건한 성찰의 공간이었다.


우리의 삶은 늘 길 위에 있다. 그래서 길에 대한 오해도 끝이 없다. 아침에 고된 일터로 향하는 길이 저녁이 되면 아늑한 집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길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설렘의 길은 돌아올 때 그리움이 짙은 길이 된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길은 세월이 흘러 익숙한 추억이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길은 자신의 소임을 다할 뿐이다. 여기와 저기를 연결하면서 사람들이 제대로 목적지에 이르도록 돕는다. 그건 변하지 않는 길의 본질이다. 하지만 길에 대한 오해 덕분에 우리는 보다 풍요로운 감성으로 길을 읽고 즐길 수 있다. 물리적인 길 위에서 상징적인 또는 은유적인 길이 탄생한다. 나는 후자의 길이 삶을 아름다운 방향으로 이끌어준다고 믿는다.


우리 인생도 ‘길’과 다름없다. 우리의 존재 역시 ‘여기’에서 ‘저기’로, 유(有)에서 무(無)를 향해 움직인다. 그 누구도 그 이치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갖고 삶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니 어떻게 오해하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일은 각자에게 다른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이 되도록 아름답고 반짝이는 ‘무엇’이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길을 잃었다면 호수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