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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국 Oct 12. 2024

길에서 선으로 이어진 생의 이야기, 나침판이 되다

7차 유라시아  대륙횡단 준비에 부쳐

https://youtu.be/rzQEU2RgP0Q?si=xaYuVVu6-wCxeOqK

탐험가 김현국 초상화- 한희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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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에 꿈을 그리는 안내자! 탐험가 김현국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통해 “숲 속에 두 갈래 길” 가운데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라고 고백한다. 그처럼 여기 누구나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수많은 생이 그려놓은 선 가운데 무리 지어 걷기보다 유독 긴 시간 혼자 걷는 시간을 선택했던 사람, 필연적으로 죽음에 가까운 두려움과 사무치는 고독을 온몸으로 견디며 나아간 사람이다.

탐험가 김현국. 있으나 보이지 않는 끝, 걸었으나 걷지 않은 늪과 같았던 길 위에서 끝내 버리지 않고 살려간 그의 꿈은 무엇일까. 그는 왜 수많은 길 중에서 이 길을 택했을까.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생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가 간 길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의 삶의 여정을 보며 인간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게 된다.

1987년 청년 김현국은 전남대 법학과에 입학한다. 눈썹이 짙고 눈매가 날카롭고 얼굴은 야위었지만 눈빛이 범상치 않은 청년은 민주화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에 대학을 다녔다. 6.10 민주항쟁이 있었고 야당의 지도자들은 단일화에 실패했다. 전공인 법률공부보다는 문학과 음악, 철학을 좋아한 현국은 술에 취하면 염원했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좌절과 그것을 넘어서는 더 높은 꿈을 이야기했다. 현국에게 꿈과 도전은 본능적인 생존의 꿈틀거림이었다. 결정되면 주저하지 않는 성격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기필코 가야 하는 운명 속에 있었다.

1988년 재학시절 군 입대를 하고 1989년 해외여행자유화가 찾아왔다. 현국은 자기도 알 수 없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이 운명처럼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1991년 12월 26일 소비에트 연방 해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목도하게 된다. 베일에 싸인 러시아가 문이 열렸다는 것이 그에게 엄청난 기회로 다가왔다.

현국은 1995년 러시아 하바롭스크로 떠난다. 반기는 사람 하나 없는 먼 이국 하바롭스크에서 고려인 외조부를 가진 대학생, 재미교포 선교사, 유대인 학생, 방송국 진행자 등 그곳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 오랜 사회주의 체제의 흔적들이 남은 러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체험하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이 경험으로 그는 러시아를 더 알고 싶었다. 그 땅을 가로질러 밟아보고 싶었다. 얼마나 큰 땅인가. 어떤 땅인가. 사람들은 그의 결심을 정신 나간 짓으로 간주했고 함께 가자 할수록 그를 회피했다.

그 무렵 현국에게 강렬한 영향을 준 작가를 만나게 되는데 러시아의 위대한 극작가 안톤 체호프이다. 1890년 당시 30세 때 이미 러시아의 유명작가였던 안톤 체호프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동토와 죽음의 유형지 사할린 섬으로 가게 된다. 그는 사할린에서 시대의 아픔을 철저하게 느끼고 기록한다. 현국은 체호프를 통해 용기를 얻었고 시베리아가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현국은 자신을 믿으며 선명한 직관과 결단, 과감한 행동력과 치밀한 준비성이 있었다. 그런 그의 열망과 의지를 가까이서 본 전공 교수님은 그의 시베리아 횡단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모터바이크와 운송, 여행경비, 왕복항공권 등 학생의 신분으로는 마련할 수 없는 경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기획안을 작성하여 기업에 연결할 수 있게끔 조언해 주셨다.

1996년 현국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러시아 하바롭스크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 대의 모터바이크는 현지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연방 해체 후 1996년 당시 러시아는 살인적인 물가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 가정해체 그리고 약물중독으로 온갖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현실을 잘 아는 공무원들은 무장군인을 대동하고 떠나라고 하지만, 현국에겐 그들에게 월급과 숙식을 제공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 사람들의 이동 경로를 통제하기 위하여 이동을 열차로만 특정해 놓았었기 때문에 도로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군사용 차량만 겨우 다니는 도로가 허다했고 현지인들도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길을 알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동양의 한 청년이 시베리아를 그것도 바이크로 횡단한다는 것은 생명을 건 무모함 자체였다.

늪으로 이루어진 풀밭 발밑으로는 불개미떼, 머리 위로는 모기떼와 날파리 쇠파리 떼들의 공격이 상상을 초월하고 아무르 호랑이가 출몰하는 숲을 지나야 한다. 모터바이크가 진흙땅에 빠져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의 연속인 시베리아. 그 시절 숙소를 구하지 못해 야영이라도 하게 되면 위험 수위는 더욱 높아진다. 살기 어려워진 시골 마을에서 이따금 살인사건도 일어났기 때문에 마을과 멀리 떨어진 깊은 산속에 텐트를 쳐야 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극한적인 공포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급기야 현국은 1996년 세계 최초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여 시베리아를 거쳐 모스크바까지 10,000km를 모터바이크로 단독 횡단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죽음의 심연과 같았던 끝없는 길, 외로움과 고통을 함께 나눌 동료 하나 없이 사투 끝에 이루어낸 최초의 탐험 길이었다. 한 번 크게 트인 시야, 그 넓은 세상을 가슴에 품은 경험은 멈출 수 없는 마음의 상태가 되었다.

1997년 현국은 다시 모스크바로 떠나게 된다. 그 나라를 알고 싶다면 거기에서 일단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선교사들과 쌀 유통으로 생활을 영위하며 이 나라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세계를 연결하는 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모스크바에서 세계로 연결되는 도로망을 눈여겨보는데, 발트해와 유럽, 우크라이나와 흑해,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북유럽, 우랄산맥과 시베리아, 카스피해와 중앙아시아 등으로 연결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M5, 우랄 연방도로는 우랄산맥을 넘어 실크로드로 가는 중앙아시아로 연결된 도로였다. 이 도로에 진입하게 되면 실크로드를 만나게 되는데, 현국은 이때 실크로드 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만나게 되는 지구의 환경, 빈곤, 질병 등의 과제를 이슈화하는 실크로드 대장정을 계획한다. 기대 이상으로 여러 국가와 기업의 후원과 협조를 이끌어내고 2001년 8월 사전답사까지 마쳤지만 안타깝게 9.11 사태가 터지고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며 사전답사까지 마친 모든 일이 허사가 되어버렸다.

2010년에는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러시아 연방 도로가 완공되었다. 현국은 시베리아 횡단 도로가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수에즈 운하를 통한 뱃길이나 하늘길에 비해 어떠한 경쟁력이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이 길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다면 섬처럼 사방이 막힌 한국에서 세계로 뻗어가는 육로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실패로 인한 상실감을 넘어 새로운 유라시아 대륙횡단의 꿈을 실행할 수 있는 길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2014년 다시 부산에서 시작하여 블라디보스토크, 모스크바, 암스테르담까지의 왕복 25,000km 단독 탐험을 계획하게 된다. 7년 된 중고 모터바이크를 구한 후 탐험의 경비를 완전히 마련할 수 없어 편도 비용만 손에 쥐고 떠난 길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겨울 시베리아를 만나 모스크바에서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이것이 세 번째 단독 횡단 길이었다.

대륙횡단의 도전은 그 이후에도 이어졌다. 2017년 강원 동해시에서 러시아로 향하는 모터바이크 여행자를 7명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런 달라진 모습을 보며 유라시아 대륙횡단의 대중화를 확신하며 현국은 차량여행자들을 위해 도로를 안내하는 구체적인 자료를 만들게 된다.

2019년에 다시 5차 단독 유라시아 대륙횡단의 대장정에 나서게 된다. 그동안 축적된 것들을 바탕으로 국가적인 시각으로 앞으로 다가오는 국제적인 문화와 인적 물적 교류를 더 심도 있게 연구하는 차원이었다. 당시 정부는 신 북방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나인브리지라는 구체적인 사업을 내놓은 시기였다. 그만큼 멀리만 느껴졌던 러시아가 가까워진 시대였다.

귀국한 현국은 지금까지 향했던 단독 대륙횡단의 길을 에세이로 썼고, 이를 바탕으로 뉴욕에 있는 세계 최대의 탐험가 단체인 ‘더 익스플로러스 클럽’의 정회원으로 승인되었다. 이 단체는 남극점에 최초로 도달한 아문센, 달 착륙의 닐 암스트롱, 에베레스트의 힐러리, 현재는 민간 우주인 시대를 연 제프 베이조스, 일론머스크,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 등 쟁쟁한 회원들이 있다.

2022년에는 5차 대륙횡단을 기록한 책 『아시안 하이웨이 6호선』을 출판하였고, 비엔날레 전시관 제3관에서 대규모 전시와 유라시아 문화교류프로젝트를 열었다. 큰 전시관엔 현국이 걸어왔던 대륙의 여정이 그대로 담긴 3,000장의 기록물이 펼쳐져 있어서 그의 땀과 열정을 관람객 누구나 경험할 수 있었다.

2023년 5월 16일에는 현대자동차 캐스퍼로 여섯 번째 유라시아 대륙횡단을 시작했다. 겨울 환경의 시베리아를 경험하며 횡단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누구나 일상에서 사용하는 소형차로도 시베리아를 횡단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계획된 프로젝트였다. 그는 무사히 겨울 초입의 시베리아를 건너 그해 11월, 6차 횡단을 마치고 귀국했다.

현국은 자신이 도전하고 걸어왔던 대륙횡단의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꿈을 향해 지금도 뛰고 있다. 현재는 누구나 일상에서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한반도부터 확장된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유라시아 대륙횡단을 위한 매뉴얼’을 정리하고 있다. 또한 유라시아 대륙횡단과 관련한 이야기들로 메타버스를 활용한 게임과 증강현실 아바타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세계의 정세는 수많은 변수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오랫동안 적대적이었던 관계도 실리를 찾아 움직인다. 유라시아 대륙은 한반도의 미래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할 곳이다. 현국이 구축한 자료들은 문화적 차원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도 아주 귀중하게 쓰일 수 있다. 그가 구축한 자료와 그의 경험은 우리 사회가 충실히 활용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이제까지 홀로 고군분투했던 그의 모습은 감탄할 일이지만 이제는 사회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지도상에 길들을 연결하면 선이 그려진다. 그 선에 열정과 영혼을 부여했던 한 사람, 단순히 선으로 남지 않고 우리가 걸어가고 달려갈 길로 제시한 안내자, 그 기회의 여정에 그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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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국

- 탐험가  

- 뉴욕, The Explorers Club 정회원

- 사) 세계 탐험문화연구소 소장


- 남과 북의 분단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400Km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일상이

  광주에서 암스테르담까지

   유라시아 대륙 14,000Km로


   확장될 수 있음에 도전해 온 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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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희원

- 서양 화가

- 시인

https://m.mdilbo.com/detail/SexeuZ/73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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