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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 천사 Aug 23. 2023

지금, 살아가는 중이구나.

사는 것이 일이다.

수능 시험 공부하듯이 살았다.

삶이란 계단을 하나씩

오르려면 그래야만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삶에는 점수가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새로운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답 없는 것이

삶이라는 시험지였다.

결혼을 하면서부터

나의 삶은 문제투성이었다.

아내와 주부. 엄마라는

다중 역할을 한 몸으로 해야 하는

슈퍼우먼이 되어야 했다.

덤으로 개인사무실까지 운영하며

시곗바늘이 되어 똑딱똑딱

쉬지 않고 산 셈이었다.


 하루 세끼 밥 먹고 사는 일인데

해야 할 일은 끝이 없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의심하면서도 바쁨 속에 갇혀

질문조차 사치가 되는 날들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사는 것이 지긋지긋해졌다.

고장 난 브레이크처럼 달리기만 하는

생활이라는 관성의 속도는

위험을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일정했다.

어디로 달리는 지도 모르고

달리는 것이 습관이 된

생활이라는 수레바퀴.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겨서라도 멈추고 싶었다.

결혼으로 인해 주어진

역할에 사표를 던지고 싶을 지경이었다.

나를 그냥 내 버려두라고

소리치고 싶었던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엎어버리고 싶었으니, 당연히

사는 것이 우울해지고 있었다.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만큼

사람을 단순화시키는 사건은 없다.

주부로만 산다면

바보가 되어 버릴 것 같아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일 역시 반복되는

시계추의 움직임이었다.

결국, 나는 주부가 할 일을

상황 따라 남편과 분배하기로

결정했으며, 일도 그만두고 싶어서

고민 중이었다.


그런 순간마다

지금 생이 잠시 쉬어가는

간이역이길 바라곤 했다.

다음 생으로

갈아타는 시간의 역에는

쉼터가 될 벤치하나만 있어도 족하다

싶었다.

그 벤치에 앉아서

철로 길 옆으로 피어 난

코스모스를 첨 보는 아이처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봄의 왈츠를 듣다가 벤치에 누워

 깜박 잠이 들어도

달콤한 하루일 것이다.

바람의 기척에 눈 뜨는 순간

 쏟아질 듯한 노을빛에

한동안 홀려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삶을 살고 싶어진 것이다.

상상만 해도 숨이 고르게 변하고

걸음도 느릿해지면서

맘이 솜털인양 가벼워진다.


현실이란 말은

언제부터인가 삭막하고

쇳덩이처럼 차갑고

무거운 단어가 되어 있다.

결혼과 함께 주어진 현실은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공수표로 돌릴 수만 있다면

독립만세 부르며 돌려주고 싶은 것이

결혼이었다.

남편도 직장도

모두 바이바이 하면

무엇을 하며 살게 될까?

상상하기만 해도 설레었다.

그 무엇을 하든

살기 위해서 바둥대는

삶이라면  물속에 얼굴을

묻고 다시 들고 싶지 않았다.

아파트 산책로에서 하버드 노인을

만나기 전까진 그랬다.


"어딜 가세요?"

"저어기"

손가락으로 노인이 가리키는 쪽은

 어린이 놀이터였다.

빨강, 노랑 파란색

놀이기구가 동화책 표지처럼

알록달록해서 천진해 보였다.

"미끄럼도 타고, 그네도 타 보려고."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구나.

그런데도 나는

그네를 타거나 미끄럼을

타 본 적이 없었을까.

그곳은 나와는 상관없는

아이들만의 성지로 여겼던 것처럼.

잠시라도 아이로 돌아가

구름과 하늘 향해

공중으로 휙휙 올라섰다가

다시 내려서는 그네 타기를 하고 싶었다.

놀이터에서 놀이를 즐기듯

살 수만 있다면

무거워서 힘든 책임과 의무도

엄마, 아빠 놀이를 하듯

할 수만 있다면?


하버드 노인은

아는 것이 많아

이웃끼리 붙여 준 별명이다.

역사면 역사, 경제, 스포츠 등

법률에 이르기까지

대화의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그래서인지 하버드 노인에게

아파트 주민들은 소송건이나

투자등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은빛 머리칼에

헐렁한 운동복 차림인데도

활기차면서도 생생한 느긋함이

걸음걸이와 미소에 배여 있었다.

그런 느낌 탓일까.

나도 모르게 마주치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하버드 노인은

자글자글한 눈웃음으로

오냐, 오냐, 를 대신했다.



노인이란 말은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편히 쉬세요라는 대명사인줄 알았다.

그래서 , 하버드 노인이 부러웠다.

업무에 시달리다 거의 멘붕

상태여서 더 그랬을까.

노인은 풀 죽어 있는

내 표정이 안쓰러운지 물었다.

"왜? 일하는 게 힘든가?"

그러지 않아도 투덜댈 대상이

필요했던 터라 눈물이 왈칵 솟구칠 뻔했다.

친정아버지 앞에서 하듯이

툴툴거렸다.

"다른 별로

 이사 가 버리고 싶다니까요."

눈만 뜨면 시작되는 전쟁같이

치르는 일들을 나열하면서

힘겨운 내 심정을 하소연했다.

헐! 헐! 헐!

하버드 노인은 재밌다는 듯

손뼉까지 치며  웃었다.

가 우스운 거지?

시큰둥하면서 갸우뚱하는 순간이었다.

하버드 노인은 갑자기

열중쉬어 자세가 되어

나를 말끔히 쳐다보며 말했다.

"이 사람아, 사는 게 다 일이야. "


하버드 노인의 말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숨 쉬는 것도 걷는 것도

아침에 눈 뜨는 것도

일이라 생각하면 힘들걸.

눈 뜨기 싫다고 계속 감고 있어 봐.

숨쉬기 싫어서 숨 안 쉬는 사람 없잖아.

나도 살고 너도 살고 다 그냥

그러면서 살아가고 있어.

그냥, 지금은 내가 이렇게

사는 중이구나 생각하면  쉬워.

하버드 노인은

내 어깨를 토닥거려 주다가

어린이 놀이터로 가선

그네를 타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물끄러미 하버드 노인을

바라보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는

시간의 표정이 새삼스러웠다.

하루 동안 하늘도 색깔이 달라진다.

어둠을 밀어 올리는 아침의 표정과

붉은 자락을 그림자로 남기는

저녁의 모습이 그렇듯이.

달님은 달님이 하는 일이 있고

해님은 해님의 일을 하고

별들은 별들이 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우주의 질서는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구나,

사는 게 다 일이구나.

무엇을 위해 열심히 일하느냐

묻는다면?

존재하기 위해 살아가는

행위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을 돌려보니

인간으로 살기 위해 주어진

모든 노동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포지션이었다.


지금,

 나는 살아가는 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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