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자로서 평생을 여자들에 비해 짧은 머리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사우나나 찜질방에서는 여자들이 유료 드라이어를 사용할 때, 남자들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혜택인 무료 드라이어를 잘 활용해 왔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남녀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니, 과민반응하지는 말아 주세요.)
사우나를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드라이어를 남자들은 대개 5분 이내로 사용한다. 반면, 여자들은 긴 머리 때문에 10분에서 30분까지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해 과도한 전기요금에 대한 걱정이 생기고, (여자사우나는 모르겠다만) 사우나에 설치된 드라이어는 대체로 2~3개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소수 인원이 장시간 독점하는 문제로 다른 이용객들의 불만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업자가 드라이어를 유료로 제공하는 것은 일정 부분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머리를 길렀던 때는 언제였을까? 생각해 보니, 20대 초반에 약 1년 반 정도 외국에서 (아름다운)'그지 생활'을 할 때였다. 그때는 15달러 정도의 헤어컷 비용조차 아까울 정도로 궁핍했다. 그때 귀 밑까지 내려올 정도로 머리를 기르고 살았다. 지금은 최저 시급 일자리(특성상 엄청나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힘든 일)밖에 없어서 한 직장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전전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생활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쉽게 싫증을 느끼는 내 성격도 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내 사주를 내가 읽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나는 원래 쉽게 싫증을 느끼도록 태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루 만에 꽃이 떨어지는 나팔꽃에게 "내일 떨어져"라고 명령한다고 해서 꽃이 불굴의 의지로 꽃대에 매달려 내일 떨어질 수 있을까? 설령 버틴다 해도 그것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만 찾는다면 우울증에 빠질지도 모르니, 다른 곳에서도 문제의 원인을 찾아보려고 한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은 중년에 접어든 나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주었고, 야망은 크지만 능력은 부족한 상사나 상사처럼 행동하는 동료들과 일하는 것은 힘들었다. 예전 회사 생활에서 내가 어떤 점이 정말 힘들어서 회사 생활이 싫었는지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존경할 만한 면을 찾으려 해도 "왜 저렇게 행동할까?"라는 생각만 들었다. 매번 좋은 일은 자기가 잘해서 생긴 것이고, 안 좋은 일은 남들이 못해서 생긴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자기보다 조금만 약해 보이거나 경험이 부족해 보이는 사람의 자존감을 깔아뭉개고, 자신은 편한 일만 하며, 힘든 일은 차츰차츰 남에게 떠넘기는 사람들. 결국 그 사람들은 가스라이팅되어 착취당하고, 영화 '다음 소희'의 소희처럼 되거나 힘들어서 회사를 퇴사하게 만든다. 그런 사람들과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조차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비극은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플라톤의 말도 떠올랐다. 나는 무엇을 외면했기에 회사가 이렇게 혼란스럽게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고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시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은 나를 회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뽀조와 럭키가 생각났다. 내가 직접 뽀조와 럭키를 연기한 적은 없지만, 다른 사람이 연기한 모습을 볼 기회는 가끔 있었는데, 연기를 보며 맥락도 없고 의미도 없는 저 긴 대사를 외우고 내뱉느라 배우들은 참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는 그런 대사들이 작가가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 없이 쓴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현실 사회에서 회사를 다니며 저런 논리 없는 말들을 직접 듣고 살아보니, 작가도 이런 사람들의 말들을 듣고 어이없어서 받아 적어놨다가 자신의 작품에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조리가 조리에 맞지 않는다고 머리로만 생각하고 있었고, 현실에 사람들은 조리에 맞게 살려고 노력할 거라고 생각했던 대학생 시절의 나에게 인터스텔라처럼 돌아가서 바보 멍청아, 현실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놈들이 엄청 많아. 현실에 부조리한 놈들이 많으니까 작가가 그걸 비웃거나 반성하자고 작품을 쓴 거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튼, 얘기가 길었지만, 요즘은 아껴야겠다는 생각에 길어진 머리를 그냥 기르다가 도저히 못 참겠다고 느낄 때면 머리카락을 자르러 미용실에 간다.
땀이 맺혀 눈을 간지럽히는 머리카락도 귀찮지만, 가장 귀찮은 것은 아침저녁 샤워 후 머리를 말리는 순간일 것이다. 5분 이상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성들은 이런 걸 매일, 내 나이로 가정한다면 40년을 (10살까지는 부모님이 해주신다고 가정하고) 해왔다고? 남녀는 머리 하나도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구나. 나는 남자로서 짧은 머리 덕분에 조금 더 편할 수 있었구나.
그렇다. 나는 남자로서 긴 머리의 불편함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긴 머리를 관리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지 못했다. 여자들이 매일 아침 머리를 말리고 손질하는데 드는 시간을 생각해 보면, 나는 그저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대충 말리면 끝이었다. 머리를 말리기 위해 드라이어를 들고 있는 시간조차 짧았으니, 그 불편함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여자들은 긴 머리를 관리하기 위해 매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머리를 감고, 말리고, 빗고, 스타일링하는 모든 과정이 단순한 일상일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시간과 노력은 결코 적지 않다. 나는 이런 점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단지 '머리가 길어서 예쁘다'는 외적인 측면만을 보며 살아왔다.
머리가 짧았을 때는 머리 긴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력이 나빠지기 전에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육아의 고통이 얼마나 힘든지 선경험자들의 얘기가 진저리 처지도록 싫었다. 이 외에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것들은 내 인생에 아직 얼마나 많을 것이고 나는 언제까지 편협함 속에 살게 될까? 그리고 조금이라도 그러한 편협함을 벗어나려면 어찌해야 할까? 언제쯤이면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