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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안 Aug 04. 2023

우리 엄마는 특수교사다.

우리 엄마는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특수학급 교사이다.


대학원서를 넣을 당시 엄마는 외할아버지와 약 한 달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행여나 공부도 잘 한 귀한 딸이 힘든 삶을 살까 걱정한 할아버지가 특수교육과를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의 꿈은 바뀐 적이 없었다. 교사가 되고 싶었고, 가르치는 일이 좋았다. 어느 순간 ‘특수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 이후 다른 직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할아버지가 딸에게 졌다. 그렇게 하고 싶은 꿈이면 하라며 어느 날 밥 먹던 와중에 슬쩍 이야기하셨단다.

그렇게 엄마는 특수교사가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엄마에게는 돌발상황이 많았다.

가끔은 전화를 하면 엄마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수업 중에 아이가 밖으로 뛰어나갔다는 말을 듣고 찾으러 간 것이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엄마는 뛰어다녔다.  한 시간 만에 찾았다며 지쳐 집에 돌아올 때도 있었다.


지금도 손과 몸에 상처를 입고 오는 경우가 있다.  대화보다는 행동으로 표현하는 아이들을 대할 때에는 붙잡다가 멍이 들기도 하고 긁혀오기도 한다.

상처가 생겼다며 속상해하다가도 다음날이면 또 학생들과 있었던 이야기를 신나서 들려주는 엄마를 보면서 어렸을 때는 아이들이 밉기도 하고 질투도 났다.


물론 엄마도 단호할 때가 있다. 장애를 가진 아동들의 특성에 맞는 교육을 진행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엔 그것이 강하게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이번 사건만 해도 여러 의견이 나뉘는 듯하다. 그러나 장애 아동들이 일반학급에 적응하여 지내기 위해서는 더욱더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특수학급 교사가 단지 천사여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장애아동을 사회와 분리시켜 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곁에서 엄마가 일하는 것을 봤기에 도저히 특수교사는 못하겠다고. 학교에서 더 인정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지원해 달라고 가끔은 교장선생님과 담판을 지으러 가기도 하는데, 힘들지 않냐고. 이게 엄마가 생각한 삶이 맞냐고.


그래도 엄마는, 다시 태어나도 특수교사를 하겠다고 한다.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조금씩 나아져가고 커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뿌듯하고 행복하단다.

아직도 엄마는 성인이 된 학생들과, 또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함께 아이를 돌보았던 학부모님들과 전화를 한다. 사회에 나가 바리스타와 같은 직업을 가진 어른이 되고 잘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 부모님과 엄마를 비롯한 선생님들의 대단함을 느끼며 내 부족함 또한 깨닫는다.


최근 특수교사와 관련된 일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경험하는 과정이 아니기에 보는 시선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사건의 여파가 걱정되기도 한다. 특수교사의 역할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이해하면서도, 이로 인하여 어린 특수학급 학생들이 피해를 겪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장애를 가졌다고 사회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융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장애를 가진 이들도 함께 하는 노력이다.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에서 배려하며, 함께 사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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