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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인 Oct 02. 2024

집이 쫄딱 망하면 끝!

4장 저녁 식사(3)






“어. 두고 봐.”


카톡! 성준의 폰이 울렸다. 무심결에 화면을 열어 읽은 그는 누가 봐도 수상하게 메세지 창을 넘겼다. 뭐야? 너 큰아버지랑 연락해? 성준이 뜨끔한 얼굴로 희주가 있는 부엌을 넘겨 보았다. 그러고는 누나, 일단 이리 들어와 봐. 하고서는 성진을 안방으로 끌어들였다. 안방 문이 꾹 닫혔다.


“어휴, 또 풍년이 왔네. 또 풍년이 왔어. 이이.”


“네? 뭐가 풍년인데요?”


“지럴이 풍년. 어째 저 넘의 잉간은 저러케 한 평생을 다 남을 등쳐 먹구, 빌어 먹구 사나 싶은 겨.”


성준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성진에게 그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는 중이었다.


“그 지랄 맞은 인간이 저기서 이야기 하는 큰 아버지라는 인간이에요?”


“이이— 우리 이제상 형님의 친 형님. 이제필.”


“한 배에서 잉태해 난 형제라 해도 다 같을 수야 없긴 하지. 어마마마께서 집안 대소사에 능하신 연유를 이제야 짐작하겠구나.”


“암만 혀두, 골치여요. 이이. 돈 냄새는 또 기가 멕히게 맡아가지구 연락을 했는가 벼어.”


“아니, 그럼 저 이제필이라는 인간을 대체 뭐 하는 인간이길래, 듣자하니 동생 장례식에도 오지 않은 모양인데요? 장가는 갔어요?”


“몰러. 한숨만 나오는 구먼. 나헌티 도오대체간에 을마를 빼 간 것잉지도 몰르것어. 나두 인쟈 고만 좀 뜯기구 싶어. 근디 저 치는 동상이 죽었는디 어째 더 헌 거 같냐아. 징허다. 징혀. 젊은 시절에 사업헌다고 말아먹어부른 거 제상이 형님이랑 울 희주가 메꾼 게 얼마여. 장가두 안 가구 내애 여자분덜이랑 노닥거리기나 허드니. 아니, 우리 준이 연락처는 또 어뜨케 알구 연락을 또 헌거여? 장례식에 일부러 불르지도 않았을 건디. 하여간 저 잉간이 구신인지 구신이 잡어가지도 않어. 이이.”


“홈쇼핑에 연락했겠죠. 저런 인간들은 그런 식으로 사람 피 말리게 하는 게 뭔지 귀신 같이 안다니까요.”


“아니, 어찌 그리 잘 아느냐?”


에쎄 담배의 놀라운 추리력에 윤조 에센스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제가 담배잖아요. 담배는 바람을 타고 소문과 사연에 닿는 걸요. 그지 같은 인간들을 얼마나 많이 알겠어요.”


“하이튼, 젊은 시절부텀 한참을 글른 잉간이긴 햤지만서도 조카들 헌테까졍 저러는 것은 선 많이 넘은 거여.”


성진과 성준 남매의 언성이 슬슬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너 여태껏 얼마나 드렸어? 너 미쳤어? 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준이가 지 엄니 걱정할까 봐서 자꾸 푼 돈을 쥐어쥬끄먼.”


“그런 인간들한테는 단칼에 잘라서 절대로 휘둘리지 말았어야 하는데. 너무 물렁했네. 아드님.”


“어른을 공경하고자 도리를 지키겠다 하는 장부의 마음으로 대하신 것이겠지. 결코 모자라서 그러신 것이 아닐 것이다.”


본윤 에센스가 성준의 편을 들었다.


“그건 염치깨나 있는 사람한테나 하는 소리구요. 저건 스불재가 맞아요.”


“스불재?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이더냐?”


“스스로 불러 일으킨 재앙이요.”


“그러하구나. 이리 보니, 난 참 세상을 평안하게 살았다. 그간 품위를 지키고 법도를 배우는 데에만 관심을 쏟았지, 그것이 완전히 무너진 세상을 본 경우가 없구나. 내 너와 저 이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배우고 느끼는 중이다.”


성진은 답답한 건지 가슴을 주먹으로 탕탕 치며 성준을 나무랐다. 야! 그 돈으로 골프채 사서 골프 치러다니다가 유행 지나면 아빠한테 싼값에 판다고 또 돈 받아가고 하던 분이야. 넌 그 동안 그런 게 하나도 안 보이고 그랬니? 성진이 퍼붓자, 성준이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아까도 구두 하나 버리면서 설마 했다. 그러자 성준이 입을 열어 구두? 하고 되물었다. 그래. 비싼 수제 구두가 하나가 있더라.


“아이. 고거슨 그 짝이 준 것이 아니여.”


“예? 그럼요?”


“울 성준이가 사 준겨. 아들래미 거금 쓴 거에 고마워서 그날 내가 밥을 샀거덩.”


그러자 성준은 오해한 성진에게 그것은 자신이 사준 처치스 구두라고 말했다. 누나는 모르고 정리했을 거 같아서 자신이 좀 전에 유품 정리 상자에서 꺼내두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니, 그걸 또 뭐 하러 꺼내?”


에쎄 담배가 마치 성진의 마음을 읽은 듯 똑같이 말했다.


“제가 사줘응게, 그려는 거지. 뭐어.”


“아니, 그러니까. 그게 무슨 의미예요. 어차피 가져가 봐야, 어디 상자에 담아서 처박아두겠죠. 아침, 저녁으로 거기다가 절 할 것도 아니면서 굳이 왜…….”


이번에는 에쎄 담배의 말을 들은 것인마냥 성진이 자신도 그런 의미 있는 물건이랍시고 뭘 오래 두고 보관해 봤지만, 그 또한 시간이 지나면 다 별 거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시대가 변해도 고준한 정신은 불변하는 법. 아비를 기리는 장부의 속사정을 무용한지 유용한지로 판단하긴 부족할 것이다.”


“이이. 그 말도 맞지요. 때로는 고것이 비록 별 필요가 없다 혀두. 다 하나하나 놓고 보면, 웃게 되구 허는 일들이 있는 것이여. 그니께, 저렇게 사진두 양 껏 찍구, 편지 글도 냄기구, 일기두 절절허게 써서 모다 놓구 허는 겨.”


“왕자마마의 저 따스한 성정이 참으로 장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무뢰배 같은 큰 어른에게 과히 휘둘리는 것이겠지요. 뭐가 맞다 틀리다 할 수는 없지만, 소첩 죽었다 다시 살아나고 보니, 어찌 법도에 한 방향만 있겠나 싶습니다. 때로는 악도라고 여길 정도로 비정해져야 이로울 때도 있는 법이라 생각 되옵니다.”


“맞아요. 누가 그러고 싶어서 그래요? 결단이라는 걸 해야 하는 때가 있으니까, 그냥 해버리는 거지. 아무리 돈이 문제지 사람은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글쎄요. 전 사람이 문제라고 봐요. 그리고요. 돈이 없잖아요? 아니, 돈으로 문제 생겨 보잖아요? 그러면요. 지금처럼 누가 정리 당하고 말고 할게 아니라. 우린 그냥 다 없어지는 거예요. 통째로요!”


“그랴. 나는 그 고비를 울 희주랑 제상이 형님이랑 맻 뻔이고 겪었지. 희주 첨에 봤을 때두 그럇고. 이이. 집이라는 거슨 눈 깜빡허면 망허기가 쉽상이여.”


“폐하, 소첩은, 폐하의 품안에서 그리고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서 이끈 태평성대에서 너무나 평안하고 근심 없이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소리 마시오. 짐만 하겠소. 내 그동안 참 소홀히 살았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오.”  


그 순간 성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제상의 사망 보험금을 담당한 보험사 직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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