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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인 Oct 03. 2024

재산 분할을 왜 해 줘?

4장 저녁 식사(4)





그 순간 성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제상의 사망 보험금을 담당한 보험사 직원이였다. 통화가 진행될수록 옆에서 지켜보던 성진의 얼굴이 상기 됐다.


“저게 다 무슨 일이냐? 어찌 공주마마의 얼굴에 저런 분기가 서려?”


“저거. 아마 부검 안 했다고, 진짜 급성 심근경색인지, 아니면 지병으로 인한 합병증 쇼크사인지 판별할 수가 없다는 이야길, 아니 개소릴 해대는 중일 거예요.”


“난리도 아니구먼…… 아이구.”


“아니, 어찌 그리 얼토당토 않은 소릴 하는 게야!”


“사망 보험금 안 주려고 수 쓰는 거죠. 줘도 그동안 납입한 보험금 정도에서 그치려고.”


“이러어어어언, 경을 칠!”


“어쩔 수 없어요. 이씨 남매가 얼마나 영리하게 받아 먹냐에 따라 달린 거지.”


그런 후에도 꽤 오래도록 성준은 그 보험 상담사와 통화를 이어나갔다. 성진이 간간히 전화기를 넘기라는 제스쳐를 취했지만, 성준은 못 본 채 했다. 얼마 후 성준은 전화를 마치고 골치 아픈 얼굴로 성진을 쳐다봤다. 뭔데? 빨리 말해 봐. 성진은 흥분감을 감추지 않고 보챘다. 성준이 하는 이야기는 에쎄 담배가 말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골자였다.


“여그 저그서 아주 돈 땜시 난리네 난리여. 어휴 넌덜머리 나.”


성진이 소리를 꽥 지르려고 하자, 성준이 얼른 주의시켰다. 혹시라도 희주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말이다. 남매는 이내 작전 회의라도 하는 듯 수군거리더니 안방 내부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뭘 찾는 게 있구나.”


“이른 일에는 말여요. 꼭 문서가 있어야 햐요. 그랴서 거기 뭐 계약헐 띠 뭔 조항이 들어갔었는지 잘 보구 대응을 해야 혀요. 근디 고거시 어디 있는지를 몰루것댜. 하두 오래 돼서.”


그때 방문이 딸깍 하고 열렸다. 희주가 살짝 땀이나 젖은 얼굴을 하고서 두 남매를 쳐다봤다. 왜들 그렇게 놀래? 바짝 굳어버린 성준을 대신해서 성진이 놀라긴, 집중하다가 기척이 나니 그런 거지. 정리 얼마 안 남았어. 엄마 왜? 화장실? 하고 상황을 넘겼다. 아니이. 나 가지찜 간 좀 봐 달라고. 그러면서 얕은 간장 종지 위에 있는 가지찜 조각을 내밀었다.


“이이— 간장에 다져 냉이를 넣었구먼. 쩌 냉이 쩌것이 옛날에는 더 향이 찐했는디. 요즘 것들은 약간 들 해. 그랴두 참 좋다. 좋아.”


먼저 맛 본 성진의 얼굴이 밝아졌다. 자, 성준이 너도 아. 성준이 다가와 아기새마냥 입을 벌렸다. 오물거리던 그가 엄지를 척 치켜들며 애살을 떨었다. 엄마, 나 온다고 가지찜 하신 거예요? 기분 진짜 좋은데? 그러자 희주는 내가 너 준다고 이걸 했겠니? 그냥 집에 있으니 한 거지. 라며 속 없는 말을 했다. 시식 타임이 끝나자, 희주는 미련 없이 방을 나와 거실 베란다 문을 열었다. 차가운 겨울의 냉기가 온몸을 차지한 후끈함을 가라앉혀 주었다.


“얼른 가서 물어 봐. 물어 봐서 빨리 찾고, 확인할 건 확인해야지.”


문 틈에 서서 망설이는 성진을 두고 에쎄 담배가 말했다. 성진은 그의 부추김에 걸음을 떼고 희주에게 보험 증서가 있는 곳을 물었다. 희주는 고개를 돌려, 건, 왜? 하고선 소파로 가서 앉았다. 아아— 보험사에서 성준이한테 그거 하나 복사해서 보내달라고 해서. 원래 하는 행정 관행인가 봐. 어쩐지 오랜 교직 생활로 단련된 목소리가 커다란 신뢰감을 안겨 주었다. 희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건너 가서 화장대 아래에 있는 작은 서랍을 열었다.


“휴…… 오늘 이래저래 참 다사다난한 것이 쟤들도 고생이 참 많다. 많어.”


잠자코 있던 재봉틀이 한마디 던졌다.


“에게? 고작 이걸로?”


열린 화장대가 의미심장하게 응했다.


“뭐여. 글믄 또 뭐시 더 있다는 소리여?”


“안에 퇴직 연금이라고 적힌 게 보이는데요?”


에쎄 담배가 서랍장에 있는 서류 제목을 얼른 읽으며 그랬다.


“아차! 고것이 또 있아부럿네. 아이, 그르믄 뭐여. 회사 퇴직금이랑, 부의금도 있을 것잉디. 아이, 야단났네. 그 잉간이 이런 거슬 다 알아불고 연락한 것이로구먼!”


 “저런 것들을 알면 그 치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것이냐?”


“재산 분할이요. 못 그럴 거 같죠? 세상에는 별에 별 일이 다 일어난답니다. 소송으로 집안 거덜나는 거도 예삿일이 아니구요.”


“당장 하옥시켜 주리를 틀어도 모자랄 인간이구나!”


본윤 에센스가 처음으로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구 싶어두 그러질 못허는 것이 골치야요. 그럴 작정으루 대해두 힘든 것인디. 성준이 쟈가 암만 봐두 먹이를 준 거시여.”


카톡! 카톡! 모두가 성준을 쳐다봤다. 성준은 두 눈을 댕그랗게 뜨고는 멋쩍게 웃고 말았다. 그러고 나선 얼른 알람을 껐다. 성진이 그가 하는 양을 쳐다보다가 눈짓했다. 그냥 엄마한테 빨리 말해. 그러나 성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이렇게 된 일. 염희주씨한테는 연락을 안 할까. 얼른 대책을 논의하고 그나마 괜찮은 방법으로 큰아버지란 인간을 떨궈내야지.”


성준이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머뭇거리자, 성진이 며느리 지연의 입장을 생각하며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때 희주가 둘에게서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고 그들을 불렀다.


“아니, 다들 들으셨어요? 지금 큰아버지라는 사람 때문에 이 집에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거?”


스투키 화분이 거실로 나와 앉은 남매 뒤에서 다급하게 말했다.  


“사기든 뭐든 당해 망해불믄 자네가 모시고 살믄 되제. 뭔 걱정잉가?”


“예? 그게 무슨 소리세요? 제가 모시고 살다니요? 그거 지금 저희 지연이 언니가 시집살이 해야 한다는 소리예요?”


스투키가 팔짝 뛰었다. 그때 마침 성진의 입에서 제상 앞으로 나오는 돈들을 엄마에게 다 넘길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말이 나왔다. 사실 성준은 거기까지 논의한 적이 없었지만 성진이 선수를 치는 바람에 잠자코 있어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 희주는 조금 뜸을 들이더니 아빠 퇴직금은 준이 줄라고 그랬지 해버렸다.


“아니, 주실 거면 언니 것도 같이 주셔야지.”


돼지토끼 알람시계가 발끈했다. 성진도 그에 맞춰 그건 왜 주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성준이 엄마, 나 그때 그거 진짜 괜찮아. 안 줘도 돼. 그거. 하고 말았다.


“저건 또 무슨 소리예요? 오빠는 뭐가 괜찮다는 거예요?”     


스투키 화분이 맥락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투로 질문했다.


“결국 밝혀지네.”


“세상에 비밀이 어딨어. 그것도 집안 일을.”


“아니, 선배님들! 무슨 일이냐니까요?”


“새아기 화분, 너가 들으면 좀 속상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가죽 소파와 이야기를 나누던 가족 사진 액자가 넌지시 경고했다.


“그래도 들을래요. 저도 이제 어엿한 이 집의 일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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