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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el Oct 06. 2023

rain

비의 과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동네 아이들과 함께 뒹글며 뛰어 놀아도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는 모두가 그래도 되는 시절이었으니까.

그에 비해 요즘에는 산성비니 어쩌니 하며 내 자식이 비 맞을새라 엄마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물론 예전과 달리 요즘 비는 맞으면 탈모에도 영향을 준다고 하니 피하는 것이 상책이긴 할 듯 하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나에게 비는 어릴적, 추억이 될 수 없는 슬픈 기억의 지점이 있다.

물론 벤또?의 반찬부터 시작해서 나의 유년시절의 어느 한곳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마디가 없었다지만

비가 내리는 날의 기억 또한 그런 대목이다.

아침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학교를 향해 걸어갈 때와 달리 수업을 마칠 즈음에 날씨가 변동을 부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럴때마다 비를 피하는 아이들의 대처 방법은 제각각이었다.

손을 머리에 얹어서 달리는 아이들, 가방을 머리에 이고 비를 피해 보려는 아이들,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무작정 달려가거나 학교앞 문방구에 들러서 서성거리다 큰 비를 피해가는 아이들.

모두 저마다의 방법으로 비를 덜 맞으려고 애를 쓰던 모습들이 기억난다.

절반의 아이들의 모습이 그러하다면 또 다른 절반의 아이들은 ‘나! 있는 집 자식이예요!’ 라거나

‘우리엄마 왔지롱! 넌 엄마도 안오냐?’ 라는 듯한 모습들을 보며 내심 부러움과 부끄러움이 교차되는 마음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렇게 있는 집 엄마들은 예기치 않게 비가 오는 날에는 학교 정문 앞에서 우산을 쓰고

다른 한손에는 아이에게 줄 우산을 들고 수업 마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면 자신의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찾는다.

아이와 만났을 때의 그 애틋한 모습들. 다정다감하게 나누는 대화도 대화지만 아이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그 엄마를 보면서 참 많이도 부러워했었지.

매일 직장 다니시는 엄마가 오실 수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한번쯤 두리번거려 보았던

그때의 내 모습은 나를 더 작게 만드는 행동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갑툭튀'의 비를 만나서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흠뻑 젖은 새앙쥐 모양으로

집에 도착해서 나홀로 옷을 바꿔입고 씻고 해야 하기도 했지만,

엄마의 공백으로 동생들의 비에 젖은 모습까지 챙겨가며 유년을 살아야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의 나는 유난히도 비오는 날을 많이 싫어했었다.


한데 지금의 나는 크게 쏟아지는 비를 좋아한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땅굴을 파고 들어가서 혼자인 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그런 시간을 좋아하다보니 휴무인 날이 비오는 날이 되는 것이 반갑기도 하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캡슐에서 빠져나오는 커피액으로 인해 집안에 커피향도 더 짙어지고

내마음도 커피향을 닮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한때는 비가 내리면 같이 따라 붙었던 것이 부침개였다면

지금은 커피가 더 큰 소리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가끔씩 큰 비가 내리면 좋겠다.

예전처럼 지붕에 비가 새어 대야를 받쳐두지 않아도 되고 우산은 늘 차에 스탠바이 중이니

비 맞고 다닐 일도 없고 비 맞은 동생을 챙겨야 할 일도 없고,

집근처 학교 문앞에서 우산 들고 혹은 차안에서 자식 기다리는 엄마들을 부러워 할 일도 없으니

이제는 비가 많이 내려도 안심이다.

다만 홍수로 비 피해 나지 않고 농사짓는 이들에게 득이 될만큼만 내려주면 좋겠다.

우리의 감수성이 빛을 발할 정도만큼만 비가 내려주면 좋겠다.

비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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