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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May 08. 2023

나도 누군가에게는 꺼려지는 사람이다.

아름답게 반격하기

 붐비는 전철을 피해 일찍이 회사에 도착하면 오피스에 올라가기 전 지하 공용 공간에서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곳에는 늘 비어있는 원 모양의 테이블이 있는데 하루는 그곳에 가방을 두고 금방 편의점에서 사 온 빵을 먹고 있었다. 늘 비어있지 않은 곳에는 여느 때와 같이 어떤 중년 여자와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자리에 앉은 지 5분 정도 지났을까. 중년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당신이 있는 곳에서 우리 쪽으로 어떤 냄새가 와요."  


무엇을 쓸어안는 듯한 제스처를 하며 냄새가 난다는 것도 아니고 냄새가 온다고 힘껏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향수를 뿌리고 오긴 했지. 평소라면 한 번 뿌릴 걸 아깐 두 번이나 뿌렸어'라는 생각으로 그녀에게 향수 냄새가 나는 거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잘 모르겠어요. 어떤 냄새가 이 쪽으로 강하게 와요. 자리 좀 옮겨주세요. 이상"


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순간적으로 '이런 걸 보고 혐한을 당했다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빵을 계속 먹었다. 하지만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한 번 더 말할게요"라는 말과 함께 손뼉을 치며 자기를 보라는 알량한 제스처를 하는 그녀를 더 이상 대하기 싫어 "됐어요" 하고 자리를 옮겼다.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려고 마음먹은 나였지만 누구나 그렇듯 싫은 소리는 하루 종일 신경을 긁는다. 그래도 아침의 일은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았다. 오히려 외국에 와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하며 가볍게 넘긴 일이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전철을 타기 위해 지하로 내려갔다. 그 지하 공용 공간을 지나가야 했던 것이다. 아침에 보았던 그 두 남녀는 하루 종일 무엇을 한 건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나는 오늘 아침 일면식도 없는 저 여자에게 기분 나쁜 소리를 들었다. 이에 반격하기 위해 못다 한 답을 전하고 싶었다.


 "당신에게는 아름다운 향기가 나요."


라고 말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요 며칠간 기분이 정말 산뜻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곁눈질하며 들리지도 않을 비아냥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산뜻함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나를 위해서이다.




 한때는 주변 사람들 모두 나를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어린 생각에 사로잡혀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라는 문구를 우연히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과연 이게 충격받을 일이었을까. 나는 왜 그 말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반대로 말해서 어떤 부탁과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그에 응해주고 싶었던 것뿐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나중에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절을 안 한 것이 '못 하게' 되어버린 것을 알았을 때, 그 말은 곧 내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한다는 의미임을 깨달았을 때에는 누구를 탓해야 할지, 무엇을 탓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싫은 소리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는 나를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었다.


 모든 사람이 나를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이젠 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말을 듣든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이다. 그것은 자존감도 고집도 아닌 그날의 마음가짐이 결정한다. 이제야 깨달아서 스스로에게 참 미안하지만 그날은 아름답다는 단어를 생각해 낼 수 있었던 내가 전혀 안타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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