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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클로버 Apr 15. 2024

Happy Easter! 레디 플레이어 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12일 차

 정수리에 경미한 화상을 입힐 만큼 따가운 햇빛이 내리쬐지만, 그와 동시에 찬 바람이 쌩쌩 부는 토론토의 3월. 캐나다에 도착한 이후 우리를 기다리는 제일 큰 행사는 단연 Easter였다.

 부활절 자체는 나에게 큰 행사가 아니었다. 예쁘게 포장된 삶은 계란을 받을 수 있는 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날. 나에게는 부활절보다도 당장 4월부터 머무를 수 있는 숙소를 구하는 일, 직업을 구하는 일, 국외 부재자 투표를 하는 일 정도가 더 중요했달까.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부활절 전 금요일부터를 공휴일로 지정해 봄의 연휴로 삼는다.

마트의 휴일 안내 표지. Good Friday와 Easter 이틀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기독교 휴일이 우리나라보다는 더 비중이 클 수밖에 없겠지….’ 하고 말려고 했는데, 공휴일에 문을 열지 않는 마트나 식당이 많아서 정말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의 공휴일이란 오히려 마트/식당 자영업자들이 더 신나게 영업하는 날 아닌가?! 새삼 공휴일에 돈을 버는 것보다도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중요한 나라라는 것을 깨닫는다.


 부활절에 맞춰서 어떤 영화를 리뷰해볼까 고민하다가, <레디 플레이어 원 READY PLAYER ONE, 2018>이 떠올랐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로, ‘오아시스’라는 가상 현실에서 오아시스의 창작자 제임스 할리데이가 숨겨둔 이스터 에그를 찾아 헤매는 플레이어, 웨이드 와츠의 이야기를 다룬다.


2019년도,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나의 <레디 플레이어 원> 팬아트.

 처음 영화관에서 봤을 때부터 뭣도 모르고 이 영화를 좋아했다. 수많은 캐릭터와 영화를 인용하고 있어 덕후들이 알 수 있는 포인트가 많다는 것은 알 수 있었으나, 그 안의 문화들이 나와 거리가 있어서 정확히 모든 요소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아직도 다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다시 볼 수 있는 영화 리스트’에 당당히 올라섰고, 대여섯 번 이상 다시 본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성장 서사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면서도 아르테미스, 모로 등의 주변 인물들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 특히 아르테미스의 캐릭터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등장 장면만 몇 번이고 돌려본 적도 있었다. 바이크 헬멧 벗어 던지는 빨간 머리 캐릭터를 어떻게 미워하죠?!


구글에서 주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면. 이건 Gif로 보셔야 해요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을 꼽자면, 웨이드 와츠가 오아시스를 보여주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허름한 장소에서 웨이드의 눈을 통해서 오아시스로 들어가는 이 컷을 보다 보면 한 순간에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이번에 리뷰를 위해서 다시 보다 보니, 새삼 스필버그의 컷 구성 능력이 눈에 들어왔다. 가상 현실인 오아시스와 현실 세계. 그 두 가지를 명확하게 구분하면서도 서사에서 필요한 부분만 남겨내고 덜어내는 법을 안다. 보면 볼수록 정말 대단한 할아버지다.

며칠 사이 발견한 부활절 토끼/계란들

 이스터 에그. 한국에서는 부활절에 계란을 숨기는 행사가 없기 때문에, 영화나 게임 속에 숨겨진 비밀 장치로 더 익숙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원래의 뜻 보다는 파생된 의미가 더 커진 것 같기도!) 이 이스터 에그를 다루는 영화는 가상 현실에서의 이중생활도 같이 다루는데, 그 점이 어쩌면 토론토에서 새로운 자아를 만들고 있는 나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 ID카드를 만들 기 위해서 대기중. 나의 귀여운 여권 케이스 2) 국외 부재자 투표 3) Smart Serve 취득!

 워킹 홀리데이를 온 후, 이주가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제일 열심히 한 일들은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었다. 비자를 받고, Sin 넘버를 만들고, 은행 계좌를 만들고, 이력서를 쓰고…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존재했던 주민등록번호/일할 수 있는 신분을 전부 나의 노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낯설었다. 

 머릿속으로는 이해하지만 실제로 겪으면서 새삼 어색했달까. 근데, 레디 플레이어 원처럼 나의 ‘파시벌’을 새롭게 만든다고 생각하니 좀 위안이 되는 것 같았다. 여기는 가상 현실도 아니고 캐릭터의 외향을 마음껏 바꿀 수도 없지만, ‘오아시스’에서 새로운 캐릭터로 레벨업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작은 아이디어였지만, 마음을 다잡는데 조금 도움이 된다. 이왕이면 ‘아르테미스’처럼 멋있는 삶을 살고 싶거든요! 이 기세로 취직도 성공했으면!


 영화 속 주인공은 결국 이스터 에그도 전부 찾고, 현실에서의 삶도 안정화된다. 오아시스는 현실과 닿아 있다. 완벽하게 분리할 수는 없다. 나도 그 점을 계속 기억하려고 한다. 여기서 조금 헤맨다고, 한국에서의 삶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안정이 된다.

 나는 아직 한국 시각을 더 많이 확인하는 중이지만ㅋㅋ 점점 음식도 적응하고, 루틴도 정리되고 있다. 4월이 되고, 날씨가 더 좋아지면 더 많은 시도를 해볼 수 있겠지! 이번 워홀을 통해 나만의 이스터 에그를 찾길 빈다. Player One is already re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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