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를 끝내고 평택에 집을 지어 이사를 하려고 결정했을 때 남편과 나는 서로 다른 로망이 있었다. 남편은 우리가 기른 야채들로 김치를 담아보고 싶어했다. 꿈도 야무지지 김장과 동치미까지 말이다.
난 허브밭을 만들어 늘 사먹기만 하던 카모마일꽃차를 직접 만들어 마시고 싶었다. 또하나는 바질페스토를 만들어 고마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고자 했다.
충분한 카페인 충전이 된 날 카페에 가면 고민이 된다. 뭘 마셔야 하지? 페퍼민트에서 카모마일로 바꿨다. 변경의 이유는 순전히 우러난 차 색깔때문이다. 은은한 노란색은 너무 예뻐 기분까지 좋게 했다. 부드러운 향도 좋지만, 꽃차에서 우러나는 색은 정말 예쁘다. 카페마다 카모마일을 마시다보니 색이 다 같지 않음을 알았다. 꽃의 상태나 말려진 상태에 따라 다르다.
색이 예쁘고 맛있는 경우엔 주인장에게 '카모마일 너무 맛있어요, 어디서 구하시나요?' 물어 집에서 주문해 마신다.
긴장감 해소, 숙면에 도움이 되고, 위장기능과 면역력도 향상되니 안 마실 이유가 없다. 천연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기에 알러지가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카모마일에 대해 검색을 할만큼 카모마일 사랑에 빠졌다.
봄이 되자 남사 화훼단지에서 카모마일 모종 10포트를 사다 심었다. 근데 좀 이상하다. 내가 아는 카모마일은 위로 쭈욱 뻗었다. 꽃이 필만큼 자라도 위로 자라기보다 옆으로 기어가며 성장했다. 그때서야 책을 찾아 보니 저먼 카모마일이라는 종이었다.저먼카모마일은 꽃이나 잎에서 사과향이 나 자꾸 만지게 된다. 바람에 실려 날아온 향이 좋아 손으로 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내겐 식용이 가능한 지가 중요했다. 꽃차나 샐러드용으로 잎이나 줄기까지 먹어도 된다.
통통한 꽃을 따서 물에 담가 놓은 후 건져서 깨끗한 후라이팬에 볶아 주었다.물에 담가 놓으니 매우 작은 벌레들이 수도 없이 나왔다. '열을 가하면 없어지겠지' 아니다. 덖은 후에도 벌레들이 있었다. 그래도 한 번은 맛을 봐야겠기에 모른척하고 마셨다.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황금빛 꽃차. 직접 손으로 만든거라 카모마일 꽃차는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었다. 한 번 더 시도했다가 태운 꽃차를 만들었다. 이제 꽃차는 만들지 말고 즐기기만 하는 걸로.
카모마일 차를 많이 만들 수 없어 집에서 키운 라벤다를 넣어 보기도 하고 여러가지 시도를 해 다양한 맛을 경험했다. 비싼 꽃차 가격을 인정한다.
내게 바질을 키우는 건 어렵고 조심스럽다. 첫번째는 너무 빨리 심었다가 기온이 내려가자 바로 아웃이다. 뒤늦게 씨앗을 발아시켜 바질밭을 만들었다. 너무 잘되서 신나게 바질잎 수확을 했다. 요리 잘하는 지인에게 목소리도 들을겸 '언니 바질페스토 어떻게 만들어요?' 전화를 했다. '준비한 대로 다 넣고 갈기만 하면 되.'
바질 페스토 만드는 재료와 양
바질잎 50g
마늘 2쪽
잣 20g
올리브 오일 100ml
파마산 치즈 30g
소금 후추 약간
언니가 알려준 대로 준비하려다 보니 잣 가격이 비싸 대신에 아몬드를 사용했다. 직접 바질 페스토를 만들었다. 가장 먼저 바질페스토를 넣어 스파게티를 했다. 내게는 너무 맛있지만 기대에 가득찬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도 '맛있어, 괜찮은데.' 신난다.
만들어 놓은 페스토를 이용해 쉽게 새우바질파스타 등 파스타나 샐러드 샌드위치등 다양하게 이용했다. 바질향이 코끝에서 아른거린다.
서울과 인천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고 고마운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나에게 바질 페스토를 받은 사람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항상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사람들은 내가 뭘 만들어 주는 것을 신기해 한다.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간을 안맞출뿐인데. 전원생활을 하니 나눔할 거리가 많아서 좋다.
바질 페스토는 냉장실에선 2주정도 냉동실에선 3개월 정도 보관가능하다.
처음으로 텃밭을 만들어 다양한 모종들을 심었다. 나오는 시기가 달라 주말마다 우리 부부는 시장을 가거나 근처 모종 파는 곳을 갔다. 가지, 강낭콩, 더덕,도라지, 상추등등.
열무와 루꼴라 등 십자화과는 벌레들이 좋아하는지 잎이 제대로 있는 것들이 별로 없다. 그래도 남편이 정성스럽게 가둔 덕분에 열무김치 한 번, 열무 물김치 한 번을 담글 수 있었다.
자신감이 생겼는지 이어서 총각무를 심었다. 재택을 한 남편이 출근하는 나를 대신해 총각무 수확을 했다. 총각무는 크기가 손가락크기부터 천차만별이었다. 샀다면 작고 못생긴 무들을 사지도 않겠지만 샀더라도볼품없어서 버렸을 것이다. 우리가 직접 심은거라 남편은 작은 거 하나까지도 잘 씻어 놓았다. 유선생 덕분에 혼자서도 양념을 만들고 버무리기도 했다.
가끔 우리집 정원의 꽃을 보러 올라오신 앞집 할머니 아닌 언니 덕분에 무를 심으려면 땅을 잘 고르게 해야 함을 알았다. 동치미를 담그고 싶어한 남편은 열심히 땅을 가꾼후에 무 모종을 심었다. 모종은 쑥 쑥 잘 자랐다. 드뎌 무 뽑기로 한 날, 크기와 모양이 너무 궁금했다. 크기는 작았지만 모양은 괜찮았다. 남편이 땅을 잘 고른 덕분이다.
남편은 김장은 못했지만 로망대로 무를 직접 키워서 동치를 직접 담궜다. 시장에 가서 삭힌 고추도 사오고 쪽파도 사오고 재료준비부터 혼자 다 한 남편을 존경스런 눈길로 바라봤다.
동치미가 짜기는 했으나 맛이 괜찮아 두고 두고 잘 먹었다. 대각선에 사시는 누님댁에도 한 통을 드렸다.
남편이 담근 김치들이 있을 때 손님이 오면 은근 자랑을 하는 우리 부부.'우리가 직접 키워서 직접 담근거에요.' 놀라워 하는 상대방들의 반응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눈맞춤을 하며 키우고 이렇게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한 번 공유했다.
딱 한 번으로 끝났다. '내년에도 할꺼야?' 물으니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전원 생활을 하면서 우리 부부의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모종 사러 가서 고르고 가져와 심고 키우는 것까지는 좋아하면서 즐겁게 한다. 반면에 수확엔 관심이 덜하다. 수확에 관심이 덜 한 이유가 뭘까?
이렇게 남편과 나의 로망은 끝났다. 남편과 나의 로망은 끝났다.
로망은 로망일뿐 로망은 로망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