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무직. 아직도 독립 못한 35살 미운오리새끼.
대학 졸업과 함께 약간의 방황을 겪고 나는 ‘야너두? 야나두!’라는 너도나도의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게 되었다. 결말부터 말하자면 5년 동안. 불합격.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라는 사회 분위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으로 시선을 돌렸다. 더 많은 부 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정년까지 보장된 월급과 확실한 복지라는 것에 가치를 더 쳐주게 된 것이다. 나에겐 무엇이 더 큰 가치인지 ml 단위까지 살피며 꼼꼼하게 가격 비교를 해도 모자랄 판에 나는 내 미래를 유행에 맡겼다. 그렇게 공시생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정점을 찍었던 그 시기쯤에 나도 어설프게 노량진에 서 있었다.
시작하게 된 계기도 별 거 없었다. 졸업은 했고 마땅한 스펙도 없고 이대로 취업 시장에 부딪혀보자니 패배감에 상처만 남을 것이 두려웠다. 다른 동기들처럼 공모전 수상내역이 있는 것도 아니고 포토샵, 엑셀을 다룰 줄 아는 것도 아니었다. 무언가 도전하기에는 지독하게도 게으른 완벽주의자라 애초에 시작을 하지 않았다. 어학 성적도 졸업만 간신히 할 정도로만 받아놨으니 내가 생각해도 당장의 나는 상품성이 한참은 떨어지는 무쓸모 상품이었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수험 생활이었다. 이 ‘공무원 준비’가 공부라는 명분으로 당장의 취업 스트레스도 밀어내줄 테니 땡큐고 게다가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쓰고 어필하지 않고도 시험만으로 취업이 되는 일이 있다니 이렇게 공평한 기회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우습지만 그냥 나는 되겠지란 막연한 낙관론적인 생각도 나를 부추겼다.
스스로가 특별하다고 느껴지던 것이 무너지는 순간은 언제쯤일까? 어릴 때는 손가락이 길다는 피아노 선생님 칭찬 하나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는 상상도 해보았다. 당장의 연습도 귀찮아서 10번 연습 동그라미를 한 번에 왕창 그리고 다했다고 거짓말 치는 게 다였지만 나에게 엄청난 잠재력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엄청난 유명인이 되어서 학창 시절 친구들을 찾는다며 티브이에 나와 진짜 친구를 찾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가수? 배우? 뭐가 됐든 유명해져서 티브이에 나올 수 있는 걸로. 어리다는 것의 가장 큰 무기는 가능성이다. 꿈꾸는 모든 것에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 차츰 대다수의 학생들처럼 보통의 중,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는 좋은 대학에 대한 로망을 품게 되었다. 나 스스로의 특별함이 살짝 처음 금 가기 시작했던 것도 그때였던 것 같다. 아쉽게도 나는 그렇게 특별히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아니었고 고등학교 진학 후 지망하는 목표 대학은 해마다 낮아졌다. 대학교 최종 발표 이후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어쨌든 그 당시 희망했던 학교였고 무엇보다 운도 따라줬다는 건 내가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갓 성인이 된 나는 꿈같은 특별함은 버리고 다른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적당히 좋은 직장, 적당히 좋은 집, 적당히 좋은 차. 그리고 그것들을 가진 나이스한 어른의 내 모습. ‘적당히’라는 단어로 마치 양보하고 객관적으로 나름 세상과 타협을 본 것처럼 생각한 꼬락서니가 지금 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다. 물론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쌉가능은 아니다. 그야말로 나에겐 현실적인 판타지다.
방황하는 무직. 아직도 독립 못한 35살 미운오리새끼. 그리고 장롱면허조차 없는 무면허. 특별함은 고사하고 평범함도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세상의 이치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나다. 이렇게 허무하고 보잘것없이 내 청춘이 흘러가는 것인가.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내 지난 시간들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인가.
안 되겠다. 그렇게 펜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