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년준비생 Apr 03. 2023

고픈 청춘들이 모이는 곳





그 당시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해마다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젊은 인재들이 노량진으로 모이고 있다. 이런 현상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을 가져올 것이다.’


연일 매스컴에서 전문가들이 나와 우려를 내보였지만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공무원 열풍은 건재했다. 나 또한 그랬다. 국가 미래를 걱정하기엔 내 코가 석자였다. 합격만 한다면 적어도 내 인생은 이익일 것이었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는 말처럼 이례적이고도 비정상적인 경쟁률은 뉴스거리가 되기 충분했다. 덕분에 내 주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번 시험의 경쟁률이 얼마나 피 터지는지, 올해도 나의 합격 소식을 들을 확률이 얼마나 희박한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어차피 나와의 싸움이라며 일부러 경쟁률을 확인하지 않았을 때도 있었는데 말이 되는 경쟁률이냐며 걱정을 쏟아주는 친구의 연락 덕분에 알게 된 적도 있었다.





경쟁률을 방증하듯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노량진에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아침에는 패스트푸드점에서 모여 스터디하는 사람들도 여럿 보였고 점심시간에는 건물 안에서 꽁꽁 숨어있다 터져 나오는 사람들로 길바닥이 바글바글했다.


학원, 독서실만큼이나 많은 곳이 술집, 피시방, 당구장, 노래방 등이라는 것은 노량진을 와봤던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펼쳐놓은 책 위로 현란하게 움직이는 게임 화면은 그야말로 죄책감과 쾌락의 콜라보 같았다. 저녁이 되면 인기 있는 술집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굳이 술집이 아녀도 값싼 삼겹살집에서 고기에 소주를 곁들여서 먹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런 일탈에 찌들어있는 사람들은 시험 경쟁률에서 ‘허수’로 취급받는다.


학생 때의 공부와 성인이 되고 나서의 공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학생 때야 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빠져봤자 야자나 학원 수업이었지만 하루를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움직일 수 있는 성인의 공부는 더 큰 절제력이 필요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나의 선택이고 음주가무에도 더 이상 법적인 제재가 없다. 자유가 늘어난 만큼 유혹은 종류도 다양하고 가까이, 아주 쉽게 다가온다.





나는 하루 중 식사시간을 가장 기다렸다. 그나마 유혹들을 참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숨통 같은 것이랄까. 소확행이라는 말이 이렇게 와닿았던 적이 없는 것 같다. 평소에도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스타일인데 몇 발자국만 가도 다양한 음식이 천지인 노량진은 그런 면에서는 장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밥 먹는 시간마저 아껴야 한다며 간단하게 빨리 해치울 수 있는 음식을 선택하거나 식사를 하면서 영단어를 외우는 양손 신공을 보이기도 했다. 올해 응시 지원자 수에 1을 더해줬을 경쟁자들의 노력을 목도하게 되면 슬슬 불안함이 올라왔다. 나라고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원래도 음식을 빨리 먹지 못하는 편이라 조금만 속도를 내도 속이 더부룩했고 식당에서는 도무지 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바람에 결국에는 밥때만큼은 편하게 즐겁게 보내자는 쪽으로 스스로 합의를 보았다.


물론 제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끼 식사로 지출할 수 있는 금액의 정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나는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나에게 커피는 앉을자리가 필요할 때 사야 하는 카페 이용권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수험 생활 때는 거의 필수재였다. 루틴처럼 식사를 끝내면 꼭 음료 한 잔씩 테이크아웃해서 독서실로 돌아갔다. 답답한 독서실 공간 안에서 빨아들이는 시원한 음료는 한 모금의 상쾌한 공기였다. 얼음으로 한결 더 차가워진 커피의 쌉싸래한 맛은 맛있진 않았지만 희한하게 당겼다. 몸속으로 들어오는 카페인은 식곤증으로 노곤노곤해지는 정신을 잠깐씩 붙잡아주었다.


때문에 포기하기가 어려웠는데 조금 더 비싼 음료가 고픈 날이면 밥값과 저울질을 했어야 했다. 가난한 수험생들에게 노량진의 물가는 따스한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나는 생각 없이 쓸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정도는 아니었다. 밥에 주력하는 날에는 한 잔에 천 원 하는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생과일이나 달달한 초콜릿이 갈려있는 이런, 말하자면 ‘프리미엄 급‘ 음료가 마시고 싶은 날에는 김밥이나 떡볶이 같은 분식류나 저렴한 식당의 음식들을 먹었다.





내가 노량진을 떠난 후 이곳에 스타벅스가 생길 것이라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었다. 음료 한 잔 값이 노량진 밥값 뺨 후려치는 정도인 그 비싼 카페가 과연 노량진에서 경쟁력이 있을까 싶었다. 그때 당시 내가 마셨던 ‘프리미엄 급’ 음료 가격이 아마 스타벅스에서는 가장 싼 음료 가격과 비슷했을 것이다.


이런 나의 예상을 깨부수고 노량진 스타벅스에는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흥행의 확인 이후 노들역으로 가는 방향에 한 곳이 더 생겨났고 그곳도 거의 만석이라고. 가난하게 공부하던 때는 지난 건지 이것도 아직은 ‘사바사’인지 모르겠지만 궁상떨던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노량진과 함께 있는 스타벅스는 꽤나 어색하기 그지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마주한 노량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