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는 몸이 아주 길고 납작한 띠 모양으로 누구나 긴 칼을 연상하게 된다. 그래서 '칼을 닮은 물고기'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우리말 고어에서는 '칼'을 '갈'이라 불렀다고 하니 그 어원을 짐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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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잡은 갈치를 만지면 비늘 대신 은색 가루가 손에 묻어난다. 이것은 구아닌이라는 유기 염기로, 갈치를 날로 먹을 때 깨끗이 벗겨 내지 않으면 복통과 두드러기가 날 수 있다. 그런데 반짝이는 이 은색 가루가 인조 진주의 광택을 내거나 립스틱을 만드는 원료로 쓰이기도 한다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좋고 나쁨이 공존하는 것 같다.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中
갈치구이는 호불호가 없는 반찬이다. 토막을 내어 약간의 소금에 절였다가 기름에 튀겨 내면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은빛 제주갈치와 목포 먹갈치가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매대에서 늘 먹갈치를 구입한다. 보기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제주갈치가 탐스럽지만 먹갈치가 기름기가 더 많고 씹을 때 찰진 맛이 좋아서다. 어차피 빛나는 갈치의 은색 가루는 모두 벗겨내어 먹어야 하므로 손질하면 모양새는 똑같다.
상인은 가격을 고려해 두툼하지 않고 저렴한 먹갈치를 구매한 우리를 배려해 조금 길게 잘라 비닐에 담아줬다. 갈치를 손질하고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빼면서 나는 오늘 밤에 올려질 된장찌개와 갈치구이를 상상한다.
추억의 절반은 음식과 함께 한다는 말이 있다. 식구(食口)란 의미가 같은 공간에서 머리를 맞대고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이란 뜻이므로 끼니의 빈도만큼이나 음식은 우리의 일상에 지배하는 감정이 큰 것이다.
반찬을 만들고 밥상을 차려내는 입장에서 볼 때 식재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어쩌면 숙명과도 같은 자연스러움이다.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에 한 바퀴 도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도 가족들이 선호하는 음식과 함께 식탁에 올려지는 반찬을 구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게는 갈치에 관련된 오래된 유년의 기억이 있다.
내 위로는 나이터울이 있는 두 언니들이 있고 내 밑으로는 맏며느리였던 엄마의 소원을 풀어준 남동생이 있다. 내 유년시절의 기억은 온통 남동생에 대한 엄마의 편애로 인해 얼룩져 있다. 터울을 주어 낳은 내가 여자였다는 엄마의 낙담은 이해가 되지만 내가 세상을 나와서 엄마가 힘들었다는 말은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그것은 앞으로 나의 행동의 제약을 주었고 착한 아이가 되어야 했고 불만이 있으면 안 된다는 강요였다.
사 년 뒤에 남동생이 태어났지만 엄마의 강요는 해제되지 않았다. 당시 알 수 없는 엄마의 배분 방법이 있었다. 남동생은 어떤 음식이든지 한 개를 차지했고 나머지 한 개로 남은 세 자매가 나눴다. 그러니까 여자인 우리는 남동생의 1/3 인생인 셈이었다.
두 언니들은 배고픔의 갈증에서 회복된 시기였던지, 아니면 엄마의 계산법에 달련된 능숙함이었는지 몰라도 어린 나의 경우는 달랐다. 어떻게 하면 다 먹지도 못할 양의 동생의 과자를 모두 내 것으로 만들까 궁리할 뿐이었다. 그것은 엄마에 대한 복수기도 했고 사랑을 독차지하는 남동생에 대한 질투심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값비싼 은빛 갈치구이가 밥상에 올라왔다. 뼈 채 삼켜도 녹을 만큼의 식욕을 가진 나에게 엄마의 그 억울한 계산법에 근거한 갈치토막을 봤을 때, 눈물이 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것 같다. 식구 모두가 당연한 배분에 대한 암묵적 합의로 젓가락을 드려는 그 순간, 나는 민첩하게 동생의 갈치를 내 입 속으로 모두 집어넣어 버렸다. 식구들의 놀란 눈망울은 정적과 함께 열심히 씹고 있는 내 입으로 향했다.
나는 처절한 매를 맞는 것도 부족해 그다음 날 아침까지 굶는 벌을 받았다. 하지만 녹듯이 입 안에서 느꼈던 그 갈치의 온전히 맛이 얼마나 좋던지 그까짓 한 끼 굶어도 괜찮았다.
이 기억은 슬픈 기억이기도 하고 갈치의 맛을 제대로 느낀 최초의 흥분된 경험이기도 했다. 결혼하고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아주 러프하게 말해주었다. 나는 이렇게 성장했어. 나는 사랑받지 못하고 컸지만 때론 소심한 반항도 했었어. 나는 내 식구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는 걸 일찍 깨달았어.
갈치 반찬이 오르면 남편은 제일 먹기 편하고 이쁜 녀석을 꼭 내 접시에 슬그머니 올려놓아준다.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