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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May 05. 2024

이런 나라서 좋다는 사람.

나를 미워했다.

소심하기 짝이 없는 내가. 눈치만 보는 내가. 내 밥그릇을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는 내가.

이런 이유들로 인해 남의 속도 모르고 사람 좋다는 소리만 듣는 내가. 착하지도 않으면서 착하다는 소릴 듣는 내가. 


미움받기도 싫어서 이런 내모습을 고쳐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쎄보이고 싶었다. 만만하게 보이는 내가 싫어서. 드세 보이고 싶어서 열 손가락에 검은 매니큐어를 발랐다. 사람 사이에 질려버려 혼자 지내보기도 했다. 그렇게 살아보니 아무 소리도 듣고 살지 않아서 편하기도 했는데. 

외로웠다. 너무나 외로웠다. 눈물도 말라 버릴만큼 메마르고 서글프며 외로운 날이 잦았다. 혼자 살아가는 게 해결책은 아니었던게다.     



마음이 아파서 상담실을 자주 들락거렸다. 주의력에 결핍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기도 했다. 향 정신성약물이라는 그 명칭이 부담되어 약을 먹는 것 만큼은 피하고 싶었는데. 나를 바꾸고 싶다는 절박함에 먹어본 약은 정신성 약물이라는 드센 이름과는 다르게 나를 순하고 다소 여유롭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도 살아온 습성은 변하지 않아서 예민하고 소심한 구석을 갖다 버릴 수는 없었다. 작은 말에 상처 받고 마음의 문을 닫는 일들이 잦았다. 엄마는 세월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고 하던데. 그 말을 믿고 살았는데. 나는 사는 날이 많아질수록 상처받는 일들이 더해갔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adhd약물을 먹으며 치료를 이어갈 때 의사에게 들었던 말들에 무너졌다. 걱정이 너무 많다는 말. 가슴이 펄떡 거린다는 내게 부작용이라고 진즉 알려 주었는데 몰랐냐는 말은 나를 탓하는 말로 들렸다. 이전에 하던 일을 계속 이어 나가고 싶은데 ‘쉬운 일 해요’라는 그 말은 그냥 들리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데. 내게 희망을 주지 않고 안주하게 만드는 그 말을 이어 듣고 싶지 않았다. 

약은 먹어야 하는데. 그걸 먹어야 찰나에 반짝하는 내 주의력이 이어지는데. 그러려면 이 의사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 버려야 하는데. 병원을 옮겨 다시 검사를 하고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지루한 일을 다시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피곤한데. 
















생을 자꾸 이어나가다 보니 나를 다르게 바라봐 주는 몇몇의 사람들이 있었다. 

소심한 나를 조심성이 많은 사람으로 여겨줬다. 예민한 나를 작은 것도 섬세하게 바라보는 이로 여겼다. 내 밥그릇을 챙기지 못하는 나를 배려하는 사람이라며 더 좋은 것을 내게 양보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과 사귈 때에는 소심함과 예민함, 대차지 못한 성정들은 귀한 것이 되어버렸다. 


나를 굳이 바꿀 필요가 없었다. 내향적인 내 모습마저도 내가 지닌 무늬라고 생각하며 그려러니 하고 바라보는 그들 앞에서 나는 검은 매니큐어를 바를 필요가 없었다.   


   

그런 의사 선생님도 있지 않을까. 걱정이 많은 나를, 내 자신의 증상마저도 의심하는 나를. 주의력이 부족함에도 극복하고 싶어하는 나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누군가. 내가 원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게 격려해 줄 수 있는. 이해는 못하더라도 이런 나라고 인정할 수도 있는. 그런 의사 선생님은 없을까.      


나는 adhd를 진단받고 세 번 병원을 옮겼다. 갑상선 기능저하증을 진단 받고도 세 번 병원을 옮겼는데. 

갑상선 약을 평생 먹어야 한 대서 겁이 나서 병원을 옮겼다(나는 약을 끊어보고 싶었다). 그래도 평생 먹어야 된다는 말 앞에 눈물을 또르르 흘리는 나를 보고 울일 아니라고 말하는 의사선생님 앞에 병원을 옮겼다(거리가 멀어서 옮기긴 했지만). 지금 정착한 병원은 약을 끊어보고 싶어하는 내 의지를 존중해주는 곳이었다. 약을 끊어보고 싶은 내 의견을 들어주고 함께 계획해주는 의사선생님을 만나서 마음이 너무 평안해졌다. 내 예민함을 그러려니 하는 이를 만나고 싶었다.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의사보다 환자의 의견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분을 만나고 싶었고 다행히 만났다.   

   

정신건강의학과도 그랬다. 세명의 의사를 만나서도 내가 예민하고 걱정이 많고, 고쳐야 될 점을 안고 있다면 내 성격을 뜯어서라도 고치겠다고. 


“성격은 안 고쳐져요. 고칠 필요도 없어요. 그냥 그렇게 살면 돼요.”


그 말을 듣고선 내가 병원 투어한 게 잘못된 선택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해받지 못해도 지금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란 걸. 똑같은 모습이라도 어느 상대를 만나느냐에 따라 내 모습이 달리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지지리도 궁상맞은 내 모습은 어느 이에게는 소박하고 검소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나이에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걸쳤다고 누군가 비꼰다면 어느 이는 힙 하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울지도 모른다. 똑같은 내 모습인데도 말이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건 달나라에 가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모습을 귀히 여기며 나를 믿고 살아가다보면 나와 향긋한 차처럼 잘 우러나는 이를 선물처럼 만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너무 엉뚱한 나라서, 어설픈 내 모습이 귀엽다며 나에게 다가올 것이다. 더 나은 내가 되라고 재촉하는 대신 지금 이 모습인 네가 그냥 좋다고. 그런 이와 함께 시간을 나누고 싶다.      


나를 모조리 뜯어 고칠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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