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르소나 May 26. 2023

망설임

전화가 왔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상대의 이야기를 들었다. 상처 주는 말을 해버렸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상대가 그렇게 받아들였다. 내 말과 행동에 상대가 아파한다면 의도야 어떻든 상처가 되는 것이다. 상대가 말했다. 그냥 위로가 듣고 싶어 전화했다고. 네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고. 아차, 싶었다. 미안한 마음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전화기 사이로 어색한 정적만 흘렀다. 서로 미안하다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드는 한편, 화도 났다. 나는 항상 이해해주고 공감해 줘야 하는 사람인가, 왜 전화를 해서 불편하게 만드는 거지. 힘들 때 내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는 사람에게 그런 마음이 들어버렸다. 지금 많이 예민한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내 잘못이 컸다. 먼저 연락을 해볼까, 망설였다. 손에서 핸드폰을 놓았다. 그래, 다음에 하지 뭐.


망설임에는 어떤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잘 살펴보면 솔직한 내 마음을 알게 된다. 내 잘못이 분명함에도 상대에게 먼저 사과를 할까 말까 망설였던 나는 어쩌면 그대로 그 인연을 끊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이 인연이 이대로 끝이 나진 않을까, 하는 기대 아닌 기대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매정하게도 나는 힘들 때 내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던 그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행동과 감정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아주 솔직한 민낯의 내가 보인다. 이 사건이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그 사람과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되었다.  


긴 머리를 잘랐다. 아주 짧게. 뒷모습만 보면 남자라 착각할 정도다. 미용사가 정말 자를 거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지만, 그러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사람들이 나보다 더 아까워하며 물어본다. 왜 잘랐냐고. 안 좋은 일 있었냐고. 실연당했냐고. 그럼 나는, 많은 사람이 안 좋은 일 겪으면 머리를 자르는 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들은 변화를 바랐고 그것을 가장 쉽게 보여주는 방법으로 머리 자르기를 선택했을지 모른다. 자를까 말까 망설이다 힘들게 마음먹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머리에 변화를 준다고 다른 무엇이 변하지는 않는다. 남는 건 잘린 머리카락과 후회 뿐. 다시 자라나는 머리카락 자르는 일쯤은 별거 아닐 줄 알았던 나도 거울을 보며 생각한다. 미용사 선생님, 당신 말이 맞았을지도 몰라요. 저를 조금 더 말려주지 그러셨어요. 훌쩍.

매거진의 이전글 고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