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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lberrina Jun 27. 2024

14. 턴아웃과 발목

턴아웃과 발목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턴아웃과 관련하여 골반에서부터 시작해서 고관절, 넙다리뼈, 무릎관절, 정강이뼈까지 살펴보았고, 드디어 발목에 도달했다. 턴아웃은 궁극적으로 발끝의 각도로서 보여지기 때문에 발목이 턴아웃에 많은 영향을 줄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동시에 과도하게 발목만 턴아웃하는 것을 지양해야 하므로 발목에서 턴아웃을 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발목에서의 턴아웃은 어떤 것일까? 열심히 노력해서 발목의 턴아웃을 이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잘못된 것이므로 발목 턴아웃은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발목과 발의 뼈, 근육은 서로 이어져 있으며 움직임에 있어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발목과 발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다.)

직립자세로 있을 때 발과 발목은 몸에서 가장 아래쪽에 위치하므로 체중 전체를 오롯이 받으며, 발바닥은 지면과 부딪히는 충격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무게를 적절히 분산하고 발바닥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 발목과 발에는 작은 뼈들이 매우 여러 개 존재한다. 성인의 경우 몸 전체에 206개의 뼈가 존재하는데, 이중 양쪽 발목과 발에 52개의 뼈가 있다. 여담으로 손목과 손에는 54개의 뼈가 있다. 손목과 손의 작은 뼈들은 체중분산을 할 필요는 없지만 아주 정교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해 준다. 몸 전체에 비해 손과 발의 면적은 작지만, 구성하는 뼈의 개수는 전체의 절반 이상인 셈이다.

만약 발목과 발의 뼈가 커다랗게 한 덩어리로 존재한다면 충격흡수도 제대로 되지 않고, 걷거나 뛸 때마다 발바닥과 콘크리트 바닥 간의 힘대결을 하다가 결국 발뼈가 부러지고 말 것이다. 발목과 발을 구성하는 작은 뼈들 각각은 딱딱하고 유연성이 없지만, 이들이 여러 개 옹기종기 모여있는 구조를 통해 구조의 가변성과 유연성을 획득하게 된다. 걷거나 뛸 때 다양한 지형에 대해 착지를 다르게 할 수 있도록 모양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발바닥에 가해지는 충격을 최적으로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발목과 발은 발목뼈 7개, 발허리뼈 5개, 발가락뼈 14개로 이뤄져 있다. 뼈의 개수가 많은 만큼 각 뼈들이 서로 맞닿아있는 관절면들도 많고, 각 뼈들을 이어 붙여주는 인대들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발목과 발에는 여러 개의 뼈들이 존재한다.
각각의 뼈와 뼈를 이어 붙여주는 인대들이 표현되어 있다.
발목과 발의 여러 관절 중에서도 특히 위 그림에 표시한 네 개의 관절이 발목의 특징적인 움직임과 관련이 깊다.



발목 관절의 움직임을 살펴보자. 수동적으로 움직일 때는 x, y, z 축을 기준으로 모두 움직일 수 있다. 수동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발목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힘이 개입해서 움직이는 것으로, 누군가가 발목을 잡고 직접 움직여주거나, 바닥이나 벽에 발의 일부를 대고 특정 축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x, y, z는 세 개의 수직축을 임의로 명명한 것이다.

x축: 양쪽 복사뼈를 연결하는 축으로, 이 축을 중심으로 발등쪽굽힘(dorsiflexion)과 발바닥쪽굽힘(plantarflexion)이 일어난다.
y축: 몸통에 수직인 축으로, 이 축을 중심으로 벌림(abduction)과 모음(adduction)이 일어난다.
z축:  발가락에서 발꿈치를 관통하는 축으로, 이 축을 중심으로 안쪽들림(inversion)과 가쪽들림(eversion)이 일어난다.



하지만, 내가 직접 능동적으로 발목을 움직일 때는 x, y, z 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발목 움직임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x축을 중심으로 하는 발등쪽굽힘과 발바닥쪽굽힘이다. x축은 엄밀히는 양쪽 복사뼈를 연결하는 축으로서, 가쪽복사가 안쪽복사에 비해 조금 더 뒤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에 약간 비스듬하게 위치한다. 이것이 바로 목말종아리관절의 축이며, 이를 중심으로 포인(point)과 플랙스(flex)를 하게 되는 것이다.



y, z축으로의 운동을 하고자 할 때는 각각 독립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x, y, z 세 개의 축이 동시에 움직이게 되는데 이는 목말밑관절과 가로발목뼈관절(목말발배관절+발꿈치입방관절)의 생김새와 구조적 특징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발목 움직임의 또 다른 축은 뒤가쪽 아래에서부터 앞안쪽 위로 비스듬하게 향하는 '빗축'이다. 엄밀히는 목말밑관절의 관절축과 가로발목뼈관절의 세로축 및 빗축은 모두 조금씩 다르게 위치하지만, 실제 움직임은 이 모든 축을 가로지르는 움직임들의 혼합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발목 운동의 축은 아래 그림과 같이 '복사뼈를 잇는 축''빗축', 크게 두 개로 생각할 수 있다.

뉴만: 발등쪽굽힘과 발바닥쪽굽힘을 일으키는 ML축과 빗축(Oblique axis)가 표시되어 있다. / 카판지: XX', UU'의 두 개의 축이 표시되어 있다.



빗축을 중심으로 한 운동을 살펴보자. 발목이 공중에 떠있으며 아무런 부하를 받지 않는 상태에서 발목관절을 움직여서 벌림(abduction, 턴아웃방향)을 하려면 반드시 가쪽들림(eversion)과 발등쪽굽힘(dorsiflexion, 포인방향)이 함께 일어난다. 이렇게 벌림, 가쪽들림, 발등쪽굽힘 세 가지 움직임을 합해서 엎침(pronation, 회내)라고 표현한다. 반대는 뒤침(supination, 회외)으로 모음(adduction, 턴인방향), 안쪽들림(inversion), 발바닥쪽굽힘(plantarflexion)이 함께 일어난다.



이와 같은 발목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근육들은 종아리에 위치하고 있다. 종아리의 근육들은 얇은 근막에 의해 앞칸, 뒤칸, 가쪽칸으로 구획 지어진다. 종아리의 근육들은 대부분 정강뼈나 종아리뼈에서 시작해서 발목을 지나 발뼈에 붙어서 발목과 발을 움직이게 된다.

-종아리의 앞칸에 위치하는 근육들은 공통적으로 발등쪽굽힘(dorsiflexion)을 일으키며, 개별 근육에 따라 발가락을 펴기도 한다. 여기서 발가락의 폄(extension)은 데미포인의 방향으로 발가락을 당기는 것을 뜻한다.
-종아리 뒤칸의 근육들은 공통적으로 발바닥쪽굽힘(plantarflexion)을 일으키고, 개별 근육에 따라 발가락의 굽히기도 한다. 발가락의 굽힘(flexion)이란 포인 방향으로 발가락을 당기는 것을 뜻한다.
-종아리 가쪽칸의 근육들은 발목의 가쪽들림(eversion)을 일으킨다.
간략하게 생각하면 앞쪽의 근육들은 플랙스, 뒤쪽의 근육들은 포인, 가쪽의 근육들은 가쪽들림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개별 근육들의 복잡한 작용이 합해져서 엎침(pronation)과 뒤침(supination)이 일어나게 된다.




이 움직임을 토대로 발레 동작에서의 발목 턴아웃을 살펴보자. 발을 지면에 붙이고 있을 때 떼고 있을 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지면에 발을 붙이고 있을 때는 발목만 과도하게 비틀어서 고관절과 무릎은 앞을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발끝만 180도가 되게 만들 수 있다. 이는 발레 슈즈에 송진이나 물을 묻혀서 마찰력을 빌리는 것이다. 이 상태는 곧 발목이 뒤침(pronation) 상태가 된다. 뒤침(pronation)은 발등쪽굽힘, 벌림, 가쪽들림이 동시에 일어나는데, 발이 지면에 닿아있는 상태에서는 발등쪽굽힘 성분이 상쇄되어 벌림(즉, 마찰력에 의해서 발목이 턴아웃 방향으로 돌아간 것)과 가쪽들림만 일어나게 된다. 이때 가쪽들림이 일어나면서 발바닥의 안쪽아치가 무너지게 되고, 가쪽아치는 붕 뜨게 된다. 이런 상태를 'rolling in' 되었다고 표현한다.

발만 과도하게 턴아웃 방향으로 돌려서 발목이 엎침(pronation), rolling in 된 상태를 보여준다.



이렇게 발목을 비튼 채 움직이면 발목뿐 아니라 무릎, 고관절에까지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발목턴아웃을 지양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발목에서 발끝 각도를 조금이라도 더 벌리려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마찰력이 없는 빙판에서 발레를 하지 않고, 고무바닥에서 발레를 한다면 어느 정도의 마찰력은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 마찰력을 이용해 고관절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무리하지 않는 정도로 조금만 더 발목을 돌리면서 뒤침(pronation)에 저항하는 엎침(supination) 방향으로 힘을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rolling in'을 방지할 수 있으며, 턴아웃을 시키는 엉덩이 심부외회전근과 허벅지 모음근에 힘을 느끼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발목을 엎침으로 만드는 것 바로 앞정강근(Tibialis anterior, 전경골근)이다. 발등쪽굽힘(dorsiflexion)을 할 때, 즉 발레동작 플랙스(flex)를 할 때 앞쪽 발목의 가장 안쪽에서 제일 두껍게 올라오는 힘줄이 바로 앞정강근 힘줄이다. 지면에 발을 붙이고 턴아웃을 할 때 항상 이 근육을 긴장해서 발바닥 안쪽 아치를 세운다는 느낌을 가지면, 발목이 pronation 즉 rolling in 되는 것을 막으면서 전체 턴아웃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만 실제 플랙스를 하는 것처럼 앞정강근 전체에 힘을 줄 필요는 없고, 힘줄만 긴장하는 정도의 강도를 유지하면서 아치를 세우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무어: 앞정강강근의 위치를 보여준다. 카판지: 위쪽을 향하는 3번 화살표가 앞정강근 힘줄이다. 그림과 같이 화살표 방향으로  수축하면 발목이 뒤침(supination) 된다.
과도하게 발목만 턴아웃하여 발목이 엎침(pronation)된 것과, 발목을 뒤침(supination) 시키는 힘을 이용하여 바르게 아치를 세운 것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발을 지면에서 떼고 있을 때를 살펴보자. 발레동작 중 발이 지면에서 떨어진 경우, 대부분은 포인(point) 상태 거나, 포인을 향해 가는 상태다. 이때, 일하는 다리에 대해 '안짱발'을 하지 말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의학에서 말하는 안짱걸음은 '내족지보행'이라는 질병명으로 불리며, 주로 소아에서 나타나는 다리의 회전변형의 일종이다. 걸을 때 발이 안쪽으로 돌아가서 보기에 좋지 않다는 미용적 문제뿐만 아니라, 양쪽 발이 서로 부딪혀 잘 넘어지는 등의 기능적 문제를 동반하기도 한다. 넙다리뼈나 정강뼈, 혹은 발허리뼈가 안쪽으로 돌아가 있어 발생하며,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호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드물게 일정 시기가 지나도 호전되지 않으면 수술적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발레에서 말하는 '안짱발' 혹은 '안짱다리'는 180도 턴아웃을 기준으로 할 때, 이에 비해 다리나 발이 안쪽으로 내회전 되어있다는 뜻이지, 질병으로서 일상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안짱발'이라고 말하는 것은 발목에서 가쪽들림 (혹은 엎침) 힘이 부족하거나, 안쪽들림 (혹은  및 뒤침) 힘이 너무 강해서 발이 전체적으로 뒤침(supination) 되어있는 상태를 뜻한다.


지면에서 발이 떨어져 있을 때, 특히 포인(point)을 하고 있을 때는 안짱발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떤 선생님께서는 발목과 발끝 모양을 '비행기 날개'처럼 하라고 표현하시기도 한다.

발레에서의 안짱발은 영어로 sickled foot (낫모양 발)이다. 안짱발의 반대쪽으로 발목을 돌린 상태는 winged foot (날개모양 발)이다.
뒤로 뻗은 다리의 발끝이 마치 비행기 날개가 위로 꺾인 것과 같이 위를 향하고 있다.
앞으로 뻗은 다리의 발끝이 안짱발의 반대 방향으로 예쁘게 꺾여있다.



아무리 고관절에서 턴아웃이 잘 되더라도, 발목에서 뒤침(supination)이 되면서 안짱발이 되면 턴아웃의 완성도는 완전히 떨어지게 된다. 그만큼 포인을 할 때 발목에서 안짱발이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안타깝게도 여러 해부학적 구조들에 의해 포인을 할 때 원래 살짝 안짱 방향이 되게 되어있다. 포인을 할 때 안짱이 되기 쉬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목말종아리관절(talocrural joint)의 축 자체가 뒤가쪽에서 앞안쪽으로 비스듬하다.

 가쪽복사가 더 아래쪽까지 내려와 있기 때문에, 뼈 자체가 가쪽들림을 방해한다.

 발목의 안쪽곁인대(=가쪽들림을 제한)가 가쪽곁인대보다 더 강하다.
 발바닥쪽굽힘(plantarflexion)을 일으키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장딴지세갈래근(장딴지근 gastrocnemius+가자미근 soleus)이 최대로 수축하면, 발바닥쪽굽힘과 함께 뒤침(supination)을 동반한다. 이는 장딴지세갈래근이 발꿈치뼈에 붙어서 목말밑관절의 빗축을 통해 발목관절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위쪽으로 향하는 흰색 화살표는 장딴지세갈래근을 뜻한다. 이 근육이 수축하면서 발목의 모음(adduction)과 뒤침(supination)이 일어난다.

정강뼈 뒤쪽에서 시작되어 발바닥을 거쳐 발가락 아랫부분에 붙어있는 긴발가락굽힘근(flexor digitorum longus, FDL)은 발가락 끝까지 포인을 하기 위해 수축하는 근육이다. 긴발가락굽힘근(FDL)은 발의 안쪽면을 지나기 때문에, 이 근육이 수축할 때 발이 전체적으로 안쪽을 향하게 되기 쉽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긴발가락폄근 힘줄의 뒤쪽으로 붙어있는 발바닥네모근(quadratus plantaris)을 함께 수축해야 하지만, 발가락 포인에 집중해서 힘을 주다 보면 발바닥네모근까지 쓰기 어려울 수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발끝까지 포인을 조금이라도 더 하기 위해 종아리와 발에 쥐가 나도록 힘을 주면 안짱발이 되기 쉽다. 안짱발이 안되게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발가락을 당기는 힘을 조금 풀어야 한다. 대신 종아리 가쪽의 종아리근들을 긴장해서 발목을 가쪽들림(eversion)하는 느낌으로 움직여서 엎침(pronation) 상태가 되도록 해야 한다. 발목을 가쪽들림 및 엎침 시키는 근육들은 종아리 가쪽의 긴종아리근(Fibularis longus), 짧은종아리근(Fibularis brevis), 셋째종아리근(Fibularis tertius)이다. 가쪽들림을 하려고 시도하면 이 근육들이 단단해지면서 발목이 엎침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담으로, 위와 같이 발목을 엎침(pronation) 시켜서 발을 비행기 날개처럼 만드는 것은 반드시 발에 무게가 실리지 않을 때 행해야 한다. 발에 무게가 실리는 를르베(Releve)나 토슈즈를 신고 포인-업을 한 상태에서 이와 같이 발을 비행기 날개처럼 만들면 부상의 위험이 올라간다. 간혹 프로 발레리나들 중에 토슈즈를 신은 상태에서도 발목을 엎침(pronation) 방향으로 밀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는 고도로 훈련된 프로 발레리나가 보여줄 수 있는 매우 아름다운 라인이다. 하지만 함부로 따라 하면 위험하다.



발레를 함에 있어서 발목에서 뒤침(supination)과 엎침(pronation)을 둘 다 적절히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상적인 보행을 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발목은 고관절 부위의 뼈구조처럼 턴아웃과 관련하여 바꿀 수 없는 타고난 구조를 갖지는 않는다. 발목관절의 뼈들이 턴아웃 쪽으로 조금 더 돌아가 있거나, 주변의 인대가 조금 더 유연할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발목의 가동범위가 넓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턴아웃에 있어서 바꿀 수 없는 구조적 특징을 짓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발목은 턴아웃을 위해 내가 노력해 볼 수 있는 영역을 제공해 준다. 발목만 턴아웃 방향으로 무리하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턴아웃을 위해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발목턴아웃은 나쁜 것이므로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발목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면 바른 턴아웃에 도움이 될 것이다.





턴아웃을 하라고 뇌에서 몸에 명령을 내리면, 뼈와 인대, 근육 등의 작용이 합해져서 발끝의 턴아웃이 완성된다. 어떤 사람은 넙다리뼈의 구조에서 이미 180도의 대부분이 완성되기도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넙다리뼈 구조는 턴아웃에 적합하지만 고관절의 인대가 너무 강해서 180도가 잘 안 될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뼈 구조에 의한 턴아웃 각도는 작지만 여러 근육을 잘 써서 180도에 가깝게 완성하기도 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골반뼈와 넙다리뼈의 구조는 턴아웃에 적합하며 필요한 근육도 잘 쓰지만, 정강뼈가 안쪽으로 돌아가 있어서 발끝의 각도가 180도가 잘 안 될 수도 있다. 모든 경우에서 턴아웃의 마지막 치트키(cheat key)는 슈즈에 송진가루나 물을 묻혀서 마찰력을 빌리는 것이다. 이 경우 어지간하면 180도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를르베를 하거나 다리를 들어서 마찰력이 현저하게 줄어들면 결국 더 이상의 눈속임을 할 수 없게 된다.  

턴아웃을 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결과값이 나온다. 타고나서 내가 바꿀 수 없는 요인들도 있지만, 노력해 볼 수 있는 요인들도 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의 턴아웃 각도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송진이나 물의 마찰력이다. 턴아웃을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변수, 조건 중에 나의 경우는 송진가루와 물의 영향력이 가장 컸다. 마찰력의 힘을 빌리면 180도를 만들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100~120도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발바닥의 마찰력을 상쇄시켜 주는 턴아웃 보드 위에서 1번을 해보면 딱 100도 정도 나오는 것 같다.



마찰력을 빌려 발만 턴아웃 모양을 따라한 상태로 여러 동작들, 특히 복잡하고 빠른 콤비네이션을 수행하면 적절한 근육을 쓸 수 없다. 대신 허벅지 앞쪽과 바깥쪽의 근육들, 종아리 뒤쪽과 바깥쪽의 근육들, 발바닥의 애먼 근육들만 잔뜩 쓰게 된다. 이렇게 되면 턴아웃을 위해 집중해야 하는 엉덩이의 심부외회전근과 허벅지 모음근(내전근)은 더 못쓰게 되어 악순환이 된다. 전공생때는 발끝 각도를 무조건 180도를 만들어야 했지만, 취미로 즐기는 지금은 발끝 각도를 조금 포기하고 대신 적절한 근육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적절한 근육에만 집중하면, 다음날 엉덩이 깊은 곳의 근육들과 허벅지 안쪽의 근육들만 뻐근하게 뭉친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보여지는 발끝 각도에 욕심을 내서 무리한 날은 다음날 어김없이 다른 근육들만 잔뜩 뭉쳐있다. 몸은 참 정직한 것 같다. ㅎㅎ

매번 발레를 할 때마다, 오늘은 치트키(cheat key)를 쓸지 말지, 얼마나 쓸지의 기로에서 고민하게 된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마찰력을 빌리지 않고 정직하게 춤을 춰야 하지만, 이왕이면 예쁜 모습을 보고 즐기기 위해 시간을 내어 거울 앞에 서는 것인데 마찰력 좀 빌리면 어떤가 하는 마음이 항상 든다. 나적나라한 턴아웃 각도를 마주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싫은 일이다. ㅎㅎ

내가 스스로 만들어놓은 환상에서 빠져나와 있는 그대로를 볼 때, 비로소 현실에 발을 딛고 서서 제대로 일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발전할 수 있다. 내 턴아웃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때때로 필요에 따라 치트키를 쓰고 있는 상태마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거기서부터 비로소 진짜로 발레를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비로소 '에이, 이렇게나 턴아웃이 잘 안 되는 것은 내가 아냐.' 하는 현실부정의 마음, '오늘은 망했고,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하는 미루고 싶은 마음, '에이, 어차피 나는 타고나길 잘 안 되니까 적당히 해야지.' 하는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고되고 힘들지만, 동시에 그것이 진정으로 기쁨이 되는 발레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겸허하게 기초를 닦으면서도, 계속해서 발레를 즐길 있는 원동력을 제공해 줄 있을 만큼의 치트키를 적절하게 쓰는 것, 이 둘 사이에서 멋진 균형 잡기를 꿈꾼다.





<참고>

Adalbert. l. Kapandji (2021) 카판지 기능해부학 7판. 대성의학사.
Donald A. Neumann (2017) 뉴만 Kinesiology: 근육뼈대계통의 기능해부학 및 운동학 3판. 범문에듀케이션.
Keith L. Moore (2013) 무어 임상해부학 7판. 바이오사이언스.
Cleveland clinic (https://my.clevelandclinic.org/health/body/22407-deltoid-ligament)
대한정형외과학회 (https://m.koa.or.kr/infor/index.php?mv1=7&mv2=2)
분당서울대병원 관절센터 (https://www.snubh.org/dh/main/index.do?DP_CD=JRC&MENU_ID=00200400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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