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 & 조지아> 시즌 1, 2
시즌 1을 본 후 '클리셰 비틀기로 악녀를 재해석한 점이 마음에 든다'라고 일기에 썼던 게 기억난다. 마녀, 남편 잡아먹는 여자, 꽃뱀 따위로 부를 수 있는 캐릭터를 엄마로 두고 모녀 중심의 가족 서사를 보여주는 게 좋았다. 온갖 일을 다 겪으며 생존형 악녀가 된 '조지아'가 주저앉아 우는 대신 활짝 웃으며 우뚝 서 있는 점도 좋았다.
조지아는 밝고, 센스 있고, 똑똑하며, 터프하다. 이는 시즌 2에서도 유지되는 캐릭터이다. 동시에 그녀가 어떻게 그 캐릭터를 유지하는지, 그녀의 생존방식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조지아의 캐릭터는 여전한데도 처연해 보이는 순간이 많다. 아이들의 입장을 생각할 때 탄식이 나오는 순간도 많다.
조지아가 착한 사람인가? 아니다. 그럼, 최선을 다하는 양육자인가? 그렇다. 열다섯 살에 첫 아이 지니를 낳은 조지아는 그 순간부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자신과 아이들을 지키며 살았다. 그 최선에는 윤리와 도덕이 많이 빠져 있으나, 다른 사람과 같은 윤리의식으로 살았다면 아마 조지아나 지니는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좋은 양육자인가? 아니다. 조지아는 정말 최선을 다했으나, 세상이 말하는 좋은 양육자가 되기엔 나쁜 요소를 많이 갖추었다. 여기엔 조지아가 자신과 아이를 지키고자 저질러 온 범죄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 자체가 그녀를 나쁜 양육자로 만들진 않는다. 근본적인 해결이나 극복 없이 순간을 모면하고 도망치거나 외면하는 조지아식 문제해결은 결국 그녀의 과거사에 아이들을 끌어들인다. 조지아가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는 점에서 불의라기보단 불행에 가까우나, 과정을 안다고 결과가 바뀌진 않는다. 그리고 이 맥락에서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특히 지니에게) 조지아가 좋은 엄마냐는 질문이다. 사랑하는 엄마가 살인자이며 그 살인을 통해 내 삶이 지켜져 왔음을 알았을 때, 나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시즌 2의 많은 이야기는 지니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지아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조지아의 웃음이 행복의 표현보단 방패에 가까운 것처럼, 그의 터프함은 회피와 외면에 근간을 두고 있다. 조지아의 인생에서 아버지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위해였다. 그들은 조지아의 취약함을 빌미로 그를 구속하거나, 때리거나, 성폭행했다. 그때마다 조지아는 도망쳤다. 처음엔 혼자, 다음엔 딸 '지니'와, 그다음엔 아들 '오스틴'까지 데리고. 도망치는 방법은 점점 발전해서, 먹고살 돈부터 유산까지 알뜰살뜰 챙겨 온다. 그러나 가정을 이루고 안착하려던 계획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다른 주로 떠나기를 반복하는 삶은 조지아에게 점점 얼룩을 남긴다. '나쁜 남자(들)에게서 도망치기'였던 과정은 '내 과거를 숨기기 위한 도망치기'로 바뀌며, 그 안엔 '내 모든 것을 알고 나면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라는 불안이 있다.
한편, 회피와 외면의 반복은 지니와 오스틴에게 친구 하나 만들지 못한 채 떠도는 유소년기를 남긴다. 이는 청소년이 된 지니가 불안과 외로움을 쌓아두게 만드는 장치 중 하나다. 백인과 흑인 혼혈에서 오는 정체성의 혼란, 처음으로 정착의 가능성이 보이는 동네에서 친구를 만들고 첫사랑과 첫 연애를 경험하며 겪는 감정의 역동, 툭하면 가십의 중심이 되는 엄마의 존재감과 복잡한 남자관계는 지니가 한꺼번에 감당하기 어렵다. 이 모든 것들을 안으로 욱여넣기만 하던 지니는 시즌 2에 들어서 마침내 표출하기 시작한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터뜨리는 감정은 언제나 날 서 있고 서투르기 짝이 없다. 그리고 이는 조지아도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빠르게 실행에 옮기던 조지아는 시즌 2에서 울고, 소리 지르고, 말문이 막히며, 슬픔과 두려움을 숨기지 못한다. 그렇게 조지아와 지니가 서로의 비밀을 알고 충돌을 거듭하다 서로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수용하기까지의 과정은 엄청난 감정 소모의 연속이다.
조지아와 지니는 아주 달라 보이지만, 지독하리만치 남에게 기댈 줄 모른다는 점이 똑 닮았다. 그 안엔 사람을 향한 사랑과 불신이 뒤섞여 있다. 그런 둘에게 시리즈가 내린 처방은 대화할 용기다. 문제를 마주하고, 털어놓으며, 기댈 줄 아는 용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때로는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더 어렵다. 지켜주고 싶은 마음과 진실을 털어놨을 때 거부당하고 상처받을 거란 두려움이 섞이게 되니까. 그리고 지니와 조지아는 서로를 통해 용기 내 부딪히는 법을 배우고 주변인에게 손 내미는 연습을 시작한다. 나에 대해 말하고 이해를 청한다. 거부당했을 때 자신을 지키는 연습도, 거부당하지 않는 경험을 통해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연습도 한다.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조지아는 생존자인 동시에 범죄자다.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좋은 사람이자 나쁜 사람이고 좋은 엄마이자 나쁜 엄마다. 능숙하게 사람을 다루며 상대를 지키는 사랑엔 익숙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믿는 방법은 모른다. 지니는 성숙한 딸이자 불안정한 십 대이고, 독립적인 모범생이자 나약한 문제아다. 사랑이 많지만 주고받는 덴 서투르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더 알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늘 갈팡질팡한다. 시리즈는 이렇듯 다면적인 조지아와 지니의 캐릭터를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고, 둘을 둘러싼 복잡한 관계와 지난한 서사를 찬찬히 풀어간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특히 지니의 시점을 통해, 누구에게도 조지아를 선이나 악으로 단정 지을 권리는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단죄는 법의 역할이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판단하는 일은 법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모든 사람은 다면적이니까. 악당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말이 여론을 이루고, 단죄가 소감이 되며, 미디어가 보여주는 단면으로 사람과 인생을 판단하는 게 쉬워진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다음 시즌이 기대된다.
커버 이미지 <지니&조지아>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