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1

by 한솔

출렁출렁. 등을 받친 물이 몸짓에 따라 몸뚱이 앞 쪽으로 넘어왔다가, 내려갔다, 다시 올라갔다가- 양팔을 크게 한번 젓자 물을 가르는 느낌이 가볍다. 락스 냄새. 희끄무레한 높은 천장이 일렁인다. 수경에 물이 들어갔나 보다.


소리야.

아주 멀리서 들리는 듯한 목소리. 귀에도 물이 들어간 걸까?

소리야.

소리 나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꺾자, 물에 다리만 담그고 앉아 있는 엄마가 보인다. 야무지게 수모까지 쓰고 있다.

소리야, 이리 좀 와 봐.


엄마와의 거리는 멀지 않다. 자잘하게 물장구를 치며 그대로 다가간다. 수모를 쓰지 않아 미역처럼 너울대는 단발머리가 엄마의 종아리를 간질일 만큼 가까워지자, 올라와 앉으라는 무언의 눈빛이 보인다. 물 찬 수경 너머로도 느껴지는 눈빛이다. 몸을 돌려 서니 바닥에 수월하게 발이 닿는다. 수경을 벗어 물을 턴다. 탁, 탁. 엄마의 눈이 몸짓을 따라오는 게 보이지만, 느릿느릿한 템포를 유지한다. 엄마 옆에서 30cm쯤 떨어진 옆에 양손을 짚어 올라앉는다.

엄마는 수영 안 해?

엄마는 아무 말이 없다.

수경 빌려줘?

여전히 답이 없는 엄마를 바라본다. 이번엔 눈빛에 아무 말도 담겨 있지 않다. 의아해진 내가 눈썹을 위로 쓱 올리자, 엄마의 눈이 촉촉해진다.

엄마는 수영 못하잖아.

나는 엄마의 말을 이해 못 한다. 우리 엄마는 수영을 못하지 않는데. 그사이 엄마의 눈이 더 촉촉해진다. 촉촉해지다 못해 검어진다. 안 그래도 크고 동그란 동공이 흰자위까지 꽉 채운다.

엄마는 수영 못해.

어라, 엄마가 아니다. 눈을 피하고 싶은데 시선이 붙잡혀 떨어지지 않는다. 어쩐지 엄마의 다음 말을 알 것 같아 귀를 막으려 하지만, 손보다 엄마의 목소리가 빠르다.

네가 죽였잖아. 내가 어떻게 수영을 해?

헉, 소리와 함께 눈을 뜬다. 익숙한 내 방 천장이 보인다. 안도의 한숨. 식은땀을 흘렸는지 이불도 몸도 차갑다. 어쩐지 불안함이 가시지 않아 몸을 일으킨다. 방문을 열자 거실 불에 눈이 부시다. 엄마의 영정 사진이 걸린 텔레비전 장 앞으로 걸어가 무릎 꿇는다. 엄마, 미안해. 목소리가 울린다. 눈물이 줄줄 흐른다.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눈물에도 시야가 흐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또렷해진다. 또렷한 시야에서 엄마의 영정 사진도 점점 커진다. 누군가 검지와 엄지로 내 동공을 잡아 벌려 화면을 확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도르륵. 사진 속 엄마의 눈이 오른쪽으로 굴러간다. 나와 눈 마주쳐 주지 않는다. 나는 절망감에 엎어진다.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한다. 엄마, 내가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미안해애... 엎어진 내 주변에 해바라기가 솟아난다. 온 거실을 가득 채운다. 돌아간 엄마의 눈동자는 다시 오지 않는다.


다시 헉, 하는 소리. 익숙한 내 방 천장. 눈이 축축하고 뜨겁다. 이불도, 몸도 차갑다. 벌떡 일어나 닫힌 방문을 보자 거실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없다. 고개를 돌리면 커튼 없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깥의 희미한 빛. 이번엔 진짜 현실이다. 이불에 얼굴을 묻는다. 다시 새어 나오는 울음을 이불로 쑤셔 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