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시장은 도덕과 공공의 이익에는 별 관심이 없다. 시장은 경제를 발전시키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반대로 사회적 가치가 없거나 부정적인 서비스도 발전시킨다.
시장은 인터넷과 통신 산업을 발전하게 했지만 조세회피 산업도 성장시켰다. 조세회피 산업은 사회적 부를 생산하지 않는 나쁜 서비스이다. 이 산업은 부자들이 세금을 납세하지 않도록 하여 부자를 더 부 자로 만들어주고 조세부담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해악이 큰 사업이다.
과거 미국은 조세회피 산업을 규제하고 단속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사람은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그는 “조세회피는 25,000달러짜리 변호사를 고용하는 것을 말하며, 변호사는 탈세를 조세회피로 바꾸어 준다.” 했다.
그는 90%에 이르는 소득세를 징수하기 위해 국세청에 법률·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금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고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는 한편 탈세를 비난했다. 미국 대법관 홈스(Holmes)는 세금은 문명사회를 위해 내는 돈이라고 했고, 루스벨트는 이에 더해 “많은 사람은 할인된 가격의 문명을 원하고 있다.”라고 했다.
조세회피를 범죄 취급하던 전통은 1980년대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레이건 대통령에서 시작됐고 조세회피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레이건은 1981년 취임 연설에서 “정부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문제이다.”라고 했다. 그는 세금을 회피하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적이지 않은 세금이 문제라 했다.
이 견해에 의하면 세금은 강도 혹은 절도와 같이 나쁜 것이기 때문에 조세를 회피하는 것은 애국적인 일이 된다. 조세회피를 조장하고 지원하는 탈세 산업은 이후 번성했다. 반면 미국 국세청은 의회로부터 조직과 예산을 삭감 당해 조세회피 산업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능력을 상실했다.
조세와 관련하여 변호사가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가 무용한 것은 아니다. 조세 관련 서비스는 소비자가 법을 해석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며 세금 신고서를 대신 작성하는 것은 합법적이고 사회적 가치가 있다. 하지만 조세를 회피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은 절도용품을 파는 것과 차이가 없다.
세무당국이 기괴한 탈세 수법을 발견하고 이를 차단하면 새로운 수법이 다시 만들어진다. 새로운 수법은 신차 모델처럼 신문과 잡지에 광고되며 이들 간 경쟁으로 조세회피 비용은 낮아졌다. 비용이 낮아지면서 조세회피 서비스는 대기업과 부자만이 아니라 중산층까지 이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부자가 세금을 회피함으로써 보통 사람이 부족한 세금을 메워야 하는 피해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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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회피는 법의 맹점 만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조세회피는 깨끗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언어의 유희(遊戱)를 사용한다. 사회 현상은 정의하는 바에 의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제적으로 작명하면 자신이 원하는 개념을 주입시킬 수 있다.
대표적으로 정치인들은 의제를 선점하기 위해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물을 정의한다. 이는 밀수꾼의 반세계 화 운동으로 촉발된 미국 독립전쟁이 ‘대표 없이 과세 없다’라는 조세혁명으로 변모하거나, 링컨 대통령의 현실적인 관세전쟁이 고귀한 노예해방 전쟁으로 바뀌는 것과 같다.
미국인 런츠(Frank Luntz)는 작명의 대가였다. 그는 목재 회사를 위해 부분 벌목이 아닌 일정 지역에 있는 나무를 모조리 베어낼 수 있도록 요청하면서 이를 ‘건강한 숲’ 정책이라고 했다. 그는 상속세를 반대하는 ‘사망세(Death Tax)’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정부는 죽은 사람을 벌하지 말라며 상속세 반대 운동을 했다. 상속세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 상속한 재산에 대해 납부하는 세금이지만 이는 무시된다. 반대로 상속세를 지지하는 사람은 이를 ‘복 터진 귀공자 세금’이라거나 ‘패리스 힐튼(Paris Hilton) 세금’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상속세에 반대하는 공화당은 사망세, 이를 지지하는 민주당은 유산세Estate tax라는 말을 사용한다. 같은 개념을 두고 필요에 의해 말을 바꾸는 장난을 하는 것이다.
언어학자 레이코프(George Lakoff) 국가부채를 ‘어린이세(Baby Tax)’로 불러야 한다고 한다. 불법적인 탈세는 탈세라고 하지 않고 부적절한 자조(自助, self-help)라고 부른다. 교묘한 수를 쓰는 것은 조세전략이라고 한다. 이러한 풍토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사람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 성실한 납세자이다.
과거 조세전략이 부자들의 놀이였다면 지금은 바보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조세회피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며 사회적 비용만 늘어나게 된다. 세금은 결국 누군가가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성실한 사람만 바보가 된다. 보통 사람에게는 조세전략이 필요 없는 세제를 가진 나라가 가장 살기 좋은 나라이다. 좋은 조세 제도는 일반 사람들이 세금 고민 없이 생업에 종사해도 납부해야 할 세금에 별다른 차이가 없어야 한다.
조세회피 산업에서 만든 대표적 언어는 조세천국(ax Haven)이라는 말이다. 조세천국이라는 말을 사용하다 보면 조세는 지옥이기 때문에 이를 회피하면 천국에서 복을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조세는 악마이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정의롭게 된다.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탈세 소굴이고 사회적 책임을 외국까지 가서 회피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이다. 역외금융센터(Offshore Finance Center) 또한 탈세 소굴을 미화한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절세(節稅)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절세는 자원을 절약하듯이 근검절약을 통해 세금을 아낀다는 창조적인 표현이다. 이 말은 세금을 내지 않고 회피하는 것을 합법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영어 표현에는 절세(Save tax)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조세회피(avoidance)라는 말을 사용한다. 절세는 조세회피를 한국에서 창조적으로 작명(作名) 한 것으로 보인다. 언어적 느낌으로는 절세는 칭찬받아야 할 현명한 행동으로 보이지만 조세회피는 불법은 아니더라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 있다. 조세의 공정성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절세’라는 말 대신 의미가 명확한 ‘조세회피’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국가와 언론 은 최소한 ‘탈세‘와 ‘조세회피’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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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도 자신에게 유리한 이름을 통해 국민들이 세금을 더 잘 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조세와 재정을 연구한 셀리그만(E.R.A Seligman) 교수는 조세는 7단계로 발전했다 한다. 세금은 고대 국가에 대한 자발적 선물에서 강 제적인 의무로 변모했다. 첫 번째 단계에서 세금은 개인이 국가에 주는 선물(gift)이다. 이는 중세 라틴어의 ‘donum’으로 표시된다. 두 번째 단계는 정부가 요청하는 탄원 또는 기도(prayed)에 대한 응답이다. 이는 라틴어의 ‘precasium’으로 표시된다.
세 번째 단계에서부터는 세금은 국가를 지원하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는 영어의 ‘aid, subsidy, contribution’이라는 말을 가진 세금이 이 범주에 속한다. 네 번째 단계에서는 개인이 국가를 위해 희생(Sacrifice)하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는 불어의 ‘gabelle’, 독일어의 ‘Abgabe’라는 말로 쓰이었다. 다섯 번째 단계는 납세자가 의무를 지는 단계이다. 영어의 ‘duty’가 이러한 의미로 쓰인다. 영국에서 ‘duty’는 상속세와 소득세를 포함한 의미이다.
여섯 번째 단계에서는 국가가 강제한다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는 영어의 ‘impost’ 또는 ‘imposition’으로 표현된다. 마지막 일곱 번째 단계는 납세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정 금액을 부과하는 것을 말하며 영어로는 ‘tax’ 또는 ‘rate’로 표현된다.
세금이라는 관념과 용어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프랑스에서 조세는 단순히 정부가 사용하는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아니었다. 조세는 사회적 유대감과 결합을 위한 필수 요소이며 자유와 평등 같은 프랑스혁명의 상징이었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조세’ 대신 ‘기여(Contribution)’라는 말을 사용했다. 프랑스에서는 지금까지 조세를 사회적 기여라고 한다. 프랑스 진보주의는 높은 세금은 기업의 이윤보다는 공정성과 서비스를 강조하는 기품 있는 사회의 상징이라 한다.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 지수로 보면 프랑스는 미국에 비하여 조세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624달러 이상의 소득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5%의 승리세(Victory tax)라는 거부하기 힘든 이름의 세금을 징수했다. 동유럽 슬로바키아는 재정위기로 부자들에 대해 높은 세금을 부과하면서 이들의 불만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회의원과 각료는 5%의 세금을 더 내도록 했다. 이는 노동자와 연대(Solidarity)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홍보됐다. 체코에서도 상위 1%의 소득자에게 7%의 추가 세금을 부과하면서 연대세(Solidarity tax)라 했다.
이 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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