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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Feb 26. 2024

거품은 국가가 만든다(영국)

남해 거품(South Sea Bubble)은 영국 왕이 일으켰다. 영국도 프랑스처럼 전쟁 부채의 높은 이자에 시달렸다. 100년 동안 7-9%의 이자를 지급하는 채무도 있었다. 이를 낮추기 위한 영국 왕의 다양한 시도는 만기 이전 상환불능 채권을 보유한 귀족들의 로비에 밀려 실패했다.  이웃나라 프랑스에서 로(John Law)의 개혁이 성공으로 보이자 영국의 악성 부채는 국가 비상사태로 생각되었다. 


영국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는 아프리카 노예를 남미에 판매하는 회사였다. 회사의 자산은 미미했고 스페인과 경쟁으로 독점 이익도 보장되지 않았다. 영국은 이 회사를 이용하여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 로(John Law)처럼 남해회사는 영국의 국가 부채와 회사 주식을 교환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회사가 교환으로 입수한 국가 부채에 대해서는 발행 이자보다 더 낮은 금리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 사업을 허가한 정부에 4백만 파운드의 사례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여기에 더하여 사업이 성공하면 3.6백만 파운드의 사례금을 추가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왕의 입장에서 부채 이자를 낮추고 사례금까지 받는 일석이조 사업이었다.  


남해회사 주식을 투자자에게 팔기 위해서는 주식 거품이 필요했다.  이웃나라 프랑스의 성공사례는 유용했다. 우선 회사는 주식을 손쉽게 사고팔 수 있도록 시장을 만들었다. 투자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회사에서 돈을 무제한 빌려줬다. 주식 구입 선납금은 최소화했고 추가 납부는 최대한 늦추었다. 초기 주식 발행 물량을 최소화했고 가격을 높이 조작하여 주식 열풍을 만들었다. 그다음 순서는 주식을 높은 가격에 대량 발행하는 것이었다. 


남해회사는 투기 붐을 조성하기 위해 언론의 도움이 필요했다. 영국은 프랑스와 달리 독점 언론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언론은 믿을 만한 기관이 아니었고 주가 조작을 위한 가짜 뉴스가 유행했다. 언론의 주식 분석 능력도 형편없었다. 남해회사는 노예 거래 이익을 최대한 부풀렸고 회사의 홍보 내용은 그대로 보도됐다. 남해회사의 주가는 1720년 초 126파운드에서 1,100 파운드로 올랐다. 이후 바로 폭락하여 126파운드로 다시 떨어졌다.  


주가 폭락에도 승자는 영국 왕이었다. 영국 왕은 주식 거품으로 100년 가까이 7-9%의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만기 전 상환불능 국가부채를 해결했다. 채권 투자자들이 장기간 높은 이자가 보장되는 권리를 포기하고 남해회사 주식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투자이익을 기대한 이들은 국가 채권의 80%를 주식으로 전환했다. 영국 왕은 결과적으로 투기 심리를 이용하여 정부 부채의 대부분을 털어냈다. 국가 신용도가 높아짐에 따라 채권 발행에서 더 낮은 이율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행운도 얻었다. 국가 부채를 단칼에 털어낸 영국은 이후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여 네덜란드 프랑스와 전쟁에서 계속 승리했다. 영국 왕이 일으킨 남해회사 거품은 영국이 유럽을 넘어 세계 제국으로 성장한 배경이다. 


주가 폭락에 피해를 본 투자자들과 공공의 분위기는 험악했다. 폭동 전야였지만 영국은 당근과 채찍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당근은 투자자들의 계약조건을 완화하여 손실을 줄여주고 정부가 지급받기로 한 사례금을 포기하는 것 등이었다. 채찍은 희생양을 찾아내 국민의 분노를 다른 곳으로 분산하는 것이었다. 남해회사 임원과 관련 국회의원은 파면되었고 이들의 자산은 몰수됐다. 정부 조치를 주도한 재무장관 아이슬라비 (John Aislabie)는 런던 탑(Tower of London)에서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투기 광풍 이후 영국에서도 불황이 찾아왔다. 언론은 투기 사건을 비난하면서 투자에 실패하여 자살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많이 다루었다. 그럼에도 영국의 수출입 거래, 농산물 가격 등락, 은행 부도 등으로 보면 작은 불황 수준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많은 반성과 비판이 있었다. 현실에서 거품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일으켰지만 비난의 대상은 인간의 탐욕이었다. 다수의 의견은 거품은 정부가 일으킨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현상의 문제로 보았다. 거품은 인간 본연의 탐욕이 일으킨 예외적인 허상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거품은 탐욕을 부린 개인의 문제였다. 


천재 과학자 뉴턴도 탐욕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는 초기 남해회사 주식 투자로 상당한 매매차익을 거뒀다. 뉴턴은 과열이라고 판단하고 주식을 처분했지만 미친 주가는 3배 더 올랐다. 조급했던 뉴턴은 정점에서 주식을 다시 매입했다. 주가가 하락하면 돈을 빌려 추가로 구입했다. 그는 결국 전 재산의 90%를 날렸다. 뉴턴은 자신은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하지 못하겠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프랑스와 영국의 성공을 모방하려 했다. 교전국 네덜란드도 이를 검토했으나 국가부채의 이자가 낮아 실익이 적다고 판단했다. 국가 부채를 주식으로 교환하는 시도는 스페인, 포르투갈, 덴마크, 스웨덴, 러시아, 비엔나 등에서 있었다. 다만 이들 국가의 거품은 영국과 프랑스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이 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가져온 내용이 아닌 새 글입니다. 내용이 더 풍부해지면 수정보완해서 출간을 검토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Boom and Bust (William Quinn & John D. Turner,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2) 1720 and the invention of the bubble page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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