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건국자들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독립 선언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노예를 소유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양식 있는 사람은 노예를 소유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다수는 노예제도를 합리화했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시절 성경은 자기 합리화에 좋은 도구였다. 이들은 창세기 노아의 저주를 이용했다. 노아의 저주를 받은 노아의 아들 함이 흑인의 시작이라 했다. 그리고 흑인은 다른 인종으로 열등하여 노예로 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했다.
노예제도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초기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구조 및 문화에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 노예제도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조세 제도이다. 지식인들이 노예의 중요성을 뒤늦게 발견한 것은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미국인은 다른 사람을 노예로 소유할 수 있다는 ‘자유’를 믿고 있었다. 따라서 노예소유주들은 정부의 노예제도 폐지가 큰 위협이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정부’라는 미국인의 불신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미국인은 노예제도 폐지를 두고 민주정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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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초기 다양한 경로로 노예를 확보했다. 가장 쉽게 인디언이 있었지만 이들은 다루기 어려웠다. 인디언도 자기 동족을 팔아 노예로 넘기는 것에 저항감이 있었다. 인디언들이 문명과 타협하면서 이들은 생각을 바꾸었다. 동족을 돈을 버는 상품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정착민 연합과 피퀏(Pequot)족의 전쟁, 킹필립스 전쟁에서 잡힌 인디언 포로는 서인도 제도로 팔려나갔다.
사우스캐롤리나 주는 인디언 노예를 획득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노예 획득에 있어 백인 민병대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노예 상인들은 대신 인디언 부족 간 해묵은 증오와 경쟁을 부추겨 노예를 확보했다. 그 결과 수베나스(Savannahs)족은 웨스토스(Westos)족를 잡아 넘기기 위해 전쟁했고 반대로 쿠타바스(Catawbas)족은 수베나스(Savannahs)를 노예로 팔아넘겼다. 야마세히스(Yamasees)는 터스커로라스(Tuscaroras)족을 노렸고 체로키스(Cherokees)는 야마세히(Yamasees)를 공격했다.
야마세히스(Yamasees)는 노예 전쟁의 악순환을 스스로 깨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인디언 동맹을 구축하고 야마세히 전쟁(Yamasee war, 1715-16)을 일으켰다. 전쟁에서 사우스캐롤리나 주민들을 몰살 위기에 몰렸지만 배신 때문에 살아남았다. 야마세히스(Yamasees)가 주도하는 전쟁의 승리를 질투하던 경쟁 부족 체로키스(Cherokees) 때문이다. 사우스캐롤리나는 체로키스가 막판 마음을 바꾸고 돕는 바람에 살아났다.
초기 지주들은 백인 노예도 활용했다. 백인 노예는 노예살이 계약을 통해 조달했다. 유럽에서 대서양을 횡단하는 운임은 상당했다. 돈 없는 백인들은 대서양을 횡단하기 위해 4-7년 동안 노예로 일하겠다는 계약을 맺고 희망의 땅으로 이주했다. 계약기간 동안 이들은 노예였고 상품이었다. 노예소유주는 계약 노예를 상품처럼 자유롭게 사고팔았다. 온갖 핑계를 만들어 노예로 부리는 기간을 늘리고자 했다. 노예가 병들어서 일하지 못한 날은 자동으로 계약이 연장됐다. 현지 법원은 노예 소유주에게 유리한 판결로 이들을 도왔다. 서부개척지가 늘어나고 계약노예 공급이 한계에 이르자 흑인 노예가 주로 사용되었다.
백인들은 노골적으로 인종을 차별했다. 백인을 상위계층으로 하는 계급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노예 여성이 출산한 아이는 부모와 관계없이 무조건 노예였다. 기독교로 개종하여도 노예신분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들은 백인이 인디언, 흑인과 결혼하면 식민지에서 추방하는 법을 1691년 만들었다. 여성이 부족한 사회에서 이는 가난한 백인 남성에게 가혹한 조치였다. 이를 통해 미국에는 부유한 백인 남성을 정점으로 하는 가부장적 사회구조가 만들어졌다. 버지니아 주가 가장 대표적이다. 아이러니하게 미국의 독립운동은 버지니아에서 노예를 소유한 워싱턴, 제퍼슨, 메디슨 같은 사람이 주도했다. 이들은 가부장적 백인 우월 제도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노예는 돈벌이 수단이지만 평등사상에 반하고 비도덕적이다. 노예는 때때로 폭동을 일으키며 안전을 위협한다. 건국자들은 이런 이유로 노예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를 피하고 싶어 했다. 남부는 노예를 필요악이라 생각하고 노예제도를 은밀하게 옹호했다. 그리고 북부가 자신의 죄의식을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북부 또한 노예제도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새로운 국가의 단합과 존립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북부 지도자는 노예폐지론자가 아니었다. 이들은 단순히 흑인 노예의 자유에 무관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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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는 1777년 연방 규약에 합의했다. 첨예한 문제는 주 별로 전쟁비용을 얼마 부담할 것인가였다. 당시 가장 보편적인 세금은 사람의 머리수를 기준으로 부과하는 인두세였다. 문제는 노예에 인두세를 부과할 것인가였다. 노예에 인두세를 부과하면 남부가 많은 세금을 내고 노예를 면제하면 북부가 많은 세금을 내는 불공평의 문제였다.
노예제도로 왜곡되는 현실에서 부담금을 배분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였다. 노예에 대한 세금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북부는 노예를 과세하여 남부가 높은 세금부담을 지도록 하고 싶었다. 이에 반대하는 남부는 북부가 노예제도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연방 탈퇴를 불사하겠다 했다. 당연히 남부는 북부가 더 많은 부담을 지는 제도를 원했다. 배수진으로 북부는 노예제도 자체의 폐지를 들먹였다. 이는 노예 해방과 전혀 관계없는 경제적 이익의 문제였다. 이는 독립운동가들이 주장하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주장과 다르다.
남부는 노예는 자산이라고 주장했다. 노예는 자산이기 때문에 다른 자산인 토지, 양, 소, 말과 비교하여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할 이유가 없다 했다. 북부의 자산인 가축이 별도로 세금을 내지 않는데도 남부의 자산인 노예에 세금을 더 부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했다.
남부는 계산된 발언을 했다. 이들은 노예 제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먼저 이야기했다. 그리고 노예의 낮은 생산성을 지적했다. 노예는 노동 생산성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생각이 없으며 일하는 척할 뿐이다. 노예를 소유함으로써 생기는 반란과 저항 때문에 받는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조세 특혜가 필요하다 주장하였다. 따라서 남부는 인구비례로 세금을 배분하는 것보다 노예를 제외한 액수를 납부할 수 있다 했다.
북부 또한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노예의 저항과 반란을 지적하거나 독립전쟁 중 노예들이 영국 편을 든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인도주의적인 입장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경제적 관점에서 단순하게 반박했다. 노예는 생산성이 낮지만 노예소유주들은 비용을 최소화하여 이익을 보고 있다. 지주들은 노예에 제공되는 음식, 의류 등의 단가를 낮추어 더 큰 수익을 얻고 있기 때문에 많은 부담을 질 능력이 있다 했다.
남부는 노예에 세금을 부과하면 연방을 탈퇴하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남부의 벼랑 끝 전략에 북부는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1777 연방 규약에서 남북은 결국 노예를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토지 가격에 기초한 조세 분배를 채택했다. 하지만 합의대로 전쟁비용을 징수하고 연방에 비용을 납부하는 문제는 다른 이야기였다. 식민 시대 토지가격이 평가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조세 납부 기준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토지에 기초한 세금을 징수할 수 없었고 전쟁비용은 조달할 수 없었다. 의회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분담금 문제를 다시 논의해야 했다. 노예제도를 논의하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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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7년 2월 연방규약을 개정하기 위한 집회가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됐다. 쟁점은 세금 배분 문제와 각 주에서 선출하는 대표자 수를 정하는 기준이었다. 돈은 권력이기 때문에 정부 구성에 부(富)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부자들이 정부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부에 가중치를 두어야 한다. 자유와 생명은 도적적 가치에 불과하지만 부는 국가와 사회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조세 납부는 부를 측정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따라서 조세 부담과 대표 선출은 연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부(富)를 기준으로 대표 수를 정하는 것에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국가와 사회의 최종 목표는 부가 아니며 국가의 가장 고귀한 목표는 문화와 인간 개발이다. 그리고 정부의 역할은 개인의 권리와 재산 보호이기 때문에 가장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기준은 ‘인구’이다 했다.
인구 기준이 논의되자 규모가 있는 주에서는 인구수에 비례한 대표 선출을 원했고 작은 주에서는 1주 1 투표 시스템을 원했다. 이 부분은 쉽게 타협할 수 있었다. 상하원을 만들면 된다. 상원은 1주 1 투표 그리고 하원은 인구에 비례하여 대표를 선출하면 된다. 인구에 의한 대표 선출에는 노예의 수를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의 문제가 다시 나왔다. 인구에 의한 세금 배분에서 북부는 노예는 사람이라 했고 남부는 노예를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대표 선출에서 이들은 입장을 바꾸었다. 남부는 하원의석을 배정하는 문제에서 노예는 가축이 아니었다. 노예는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남부의 위선과 오만이었다. 이 문제는 유명한 3/5의 법칙으로 해결되었다. 흑인 노예는 세금의 3/5를 납부하고 의석 계산에 백인의 3/5로 계산한다는 원칙이다.
참고자료
American Taxation American Slavery (Robin L. Einhor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6), Introduction Page 6-7, Virginia Page 32, Variations Page 96, Introduction to Part II, Page 112, The Origin of Tariff Page 118, Page 144, Direct taxes Page 163, Page 172, Page 162
Empires in World History (Jane Burbank and Frederick Cooper,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0), Empires across Continents page 255-256
이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 에서 가져온 내용이 아닙니다. 앞으로 많이 다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글들이 완성되면 새로운 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