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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May 20. 2023

쓰레기 같았던 뉴욕의 크리스마스

뉴욕의 크리스마스가 아름답다는 환상


캐나다에서 교환학생으로서 한 학기를 마치니 어느새 연말이 다가왔다.

다른 캐나다 친구들이 가족이 있는 본가로 돌아갈 때, 나는 뉴욕으로 떠났다.

마침 10년 지기 친구가 그곳에 있었고 내가 살던 런(캐나다에도 런던이라는 도시가 있)에서 가까워 부담이 없었다.


뉴욕 하면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하면 뉴욕!

안 그래도 1년 연휴 중 크리스마스를 가장 좋아하는데, 뉴욕에서 보낸다니 괜히 낭만적이었다.

미드에서 흔히 보던 아늑한 분위기, 모닥불의 훈훈한 온기와 마시멜로 동동 띄운 따뜻한 핫초코 한 잔이 떠올랐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 성인이 되어 다시 가면 그 세계가 작아져 보인다. 뉴욕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나는 너무나 커다란 세상 속에 들어온 어린아이 같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고개가 아플 정도로 높은 고층건물이 가득했고 알고 보니 지구촌 만남의 광장이었는지 길거리는 전 세계 사람으로 붐볐다.


지하철 역에서 나오자마자 펼쳐진 광경은 눈이 부셨다. 글자 그대로 너무 환해서 눈이 부셨을 뿐이다. 영업 종료가 된 가게도 환하게 불이 켜있고 (신기하게도 미국은 영업 종료 후에도 쇼윈도 불은 밝혀두었다.) 크리스마스 장식과 네온사인으로 반짝이는 도시는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밝 생기가 넘쳤다.


그리고 그 건물 앞에는 노숙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대부분은 움직임이 없었고 몇몇은 휴지통을 꾸물꾸물 뒤졌다. 무채색 옷을 아무렇게나 껴입어 그냥 그림자 덩어리 같기도 했다. 모두가 관심이 없어서 더 그랬다.

왁자지껄한 크리스마스 분위기 도심 속 높은 빌딩 앞 노숙자. 내 시야에 함께 담긴 모습이 너무 어울리지 않아서 이상했다. 

이곳이 밝고 화려한 만큼 노숙자는 더욱 어둡고 음침해 보였다. 어딘가 찝찝했다. 짧은 순간에 세상의 이치를 본 것 같기도 했고 마음이 좋지 않다. 


뉴욕 도시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데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트럼프 타워와 자유의 여신상도 실제로 봤지만 전혀 감흥이 없었다. 가이드를 해준 친구에게 미안할 정도로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에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허례허식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씁쓸함을 지닌 채 캐나다로 돌아왔다.

다음 학기 글쓰기 수업 과제로 The shitty New York(쓰레기 같은 뉴욕)이라는 글을 써냈을 만큼, 그 잔상이 오래 남았다.




"Hey! How was your holiday?"

연휴는 잘 보냈어?


"I visited New York! It sucks."

뉴욕 다녀왔어! 구렸어 :)


- 연휴 후 기숙사 복도에서 만났던 친구와 나눈 대화

2018.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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