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넷플릭스에서 『독거소년 코타로』라는 일본 드라마를 보았다. 다섯 살 소년 코타로가 독신자 아파트에 홀로 세 들어 살면서 벌어지는 일화들로 이루어진 10회 분량의 시리즈물이다.
이 드라마를 알게 된 건 2021년 겨울, 뇌경색으로 쓰러졌던 아버지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급성 폐렴으로 생사를 다투던 때였다. 의사는 전 가족을 호출하여 “이번 약이 듣지 않으면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말을 전했다. 두 번째로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처방 약이 주효하여 아버지는 조금씩 회복되었다. 문제는 예상보다 길어진 치료로 원래 있던 재활병원 통합간병 병동에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었다. 당진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나는 물론이고 투 잡에 어머니까지 돌보고 있는 동생이 갑자기 아버지를 모시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아버지가 생의 문턱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여유 따위는 없었다. 간병인 물색하기, 늘어난 병원비 가늠하기, 양쪽 병원 진료 일정 잡기, 이참에 집에 갈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아버지의 희망사항 모른 체하기. 이 모든 것을 검토하고 결정하느라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날들이었다.
뿐인가, 불쑥불쑥 30년 뒤 내 모습이 아버지와 겹쳐지며 심란한 마음을 더욱 부추겼다. 아버지처럼 갑자기 쓰러지면, 엄마처럼 예기치 않게 허리가 부러지면 누가 나를 응급실에 데려가지? 수술하려면 보호자 서명이 필수라는데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나. 같이 늙어가는 동생? 가는데 순서 없던데.(동생, 미안)
응급상황까지 갈 것도 없이 일상적인 병원 진료만 떠올려도 답이 안 나왔다. 50대인 지금도 진료에 검사에 수납에 예약까지 여기저기 다니려면 머리에 쥐가 나는데, 30년이나 더 낡은 심신으로 혼자 가능한 일일까? 아프지 않더라도 먹고 씻고 빨고 닦는 일상은 또 어떻게 감당하지?
떠다니는 생각만이라도 멈추고 싶어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만나게 된 소년이 코타로였다. ‘독거소년’이라니. 그 생소한 표현과 다섯 살 어린아이의 무표정한 모습이 어지러운 마음을 이겨 재생버튼을 눌렀고 순식간에 전편을 섭렵했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떨어져 살게 된 코타로는 엄마마저 병으로 잃고 보육원에 들어가지만 집요하게 자신을 찾는 아버지 때문에 결국 독신생활을 결정한다. 다섯 살짜리 어린이가 혼자 사는 삶이라니. 현실이라면 있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드라마 속 코타로는 진지하다. 사무라이인 듯 ‘토모사마 맨’ 검을 옆에 차고 요즘에는 보기 드문 ‘하오체’를 사용하는 정체불명의 소년. 어리둥절해하는 이웃들에게 고급 휴지를 돌리는 신고식과 함께 첫날을 시작한다. 검과 하오체는 어리지만 독신 생활을 당당히 해나가겠다는 다짐의 징표.
하루하루 야무지게 생활하는 코타로. 그의 일상은 날마다 유료목욕탕에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목욕탕이 문 닫은 날이면 싱크대에 들어가서 씻는다. 조금이라도 냄새가 난다면 사람들이 자신을 외면할 것이므로.
힘든 상황을 만나도 피하는 법이 없다. 엄마 손 잡고 유치원에 가는 아이가 부럽지만 청소로 마음을 달랜다. 아버지가 보낸 사설탐정의 정체를 알면서도 겁먹지 않고 자신의 거처를 알리지 말아 달라고 정중히 부탁한다.
재정(후원금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죽은 엄마의 사망보험금) 관리를 맡은 변호사를 통해 후원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꼬박꼬박 전한다.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부재가 자신이 약해서 벌어진 일이라 여겨 체력 단련을 빼먹지 않는다.
야무지고 용감한 데다 생각까지 깊은 소년이다. 이웃에 사는 타마루가 떨어져 사는 아들에게 전하지 못한 선물을 주자 “그대 아들 대신 받는 거짓은 기쁘지 않소.”라며 단호히 거절한다. 코타로가 가장 사랑하는 토모사마 맨 인형이었음에도. 폭력적인 애인 때문에 힘들어하는 미즈노를 위로하고 과거의 경험 때문에 어린아이 응대를 힘겨워하는 변호사 코바야시를 표 나지 않게 다독인다. 같은 보육원 출신 타스쿠가 후원금 때문에 접근했음을 알면서도 오히려 자신이 쓰레기를 모아 번 돈까지 보태 기꺼이 내어 준다. 이 정도면 어른도 지니기 힘든 내공이다.
누구라도 허무맹랑하다 할 이 드라마를 다섯 번은 족히 다시 보기 했던 것 같다. 나는 왜 이 다섯 살 ‘독거소년’에게 끌렸을까.
우선 아역 배우의 미소와 연기에 반했다. 혼자 살 수밖에 없어 “내가 할 수 있어!”를 외치는 코타로.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그 단단함, 그럼에도 무표정 뒤에 꽁꽁 숨겨둔 다섯 살 소년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어찌나 실감 나게 연기하던지 근 10년간 온갖 미남 배우가 출몰해도 별 감흥 없던 나인데 푹 빠져버렸다. 이웃들과 친해지며 동여맸던 마음이 풀어질 때 살짝살짝 보이는 백만 불짜리 미소는 또 어떻고. 얼마 전 시즌 2가 나왔다는데 초등학생이 된 모습에 실망하면 어쩌나 싶어 아직 보지 못했다. 첫사랑의 환상이 깨질까 다시 찾지 않는 심정이랄까.
역설적이지만 코타로가 처한 상황이 미래에 닥칠 내 모습 같아서 더 마음에 닿았다. 다섯 살이나 80살이나 혼자 살 능력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내 나이 10분의 1도 채 안된 이 소년의 삶을 반복해서 들여다보고 응원했던 것 같다. 홀로 생활하지만 결국 더불어 살아가야 행복함을 깨닫고, 자신을 격려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꿈을 꾸는 결말이 나의 해피엔딩으로 이어지길 바라면서.
코타로의 이웃들도 다시 보기의 이유였다. 무명 만화가 카리노,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미즈노, 이혼하고 아들과 떨어져 사는 영업사원 타마루, 재정 관리 변호사 스즈노와 코바야시, 보육원 동기 타스쿠. 이들은 코타로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도 필요한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방 한 칸에 욕실이 없으면 좀 어떠랴, 이런 이웃들이 사는 아파트라면 나라도 당장 거처를 옮겼을 것이다.
카리노는 날마다 유치원과 목욕탕 가는 길에 동행하고, 도시락이 필요하면 미즈노는 기꺼이 맛난 음식을 만들어 준다. 스즈노와 코바야시는 또 어떤가. 아파트를 물색하고, 유치원 입학을 도와주고 아버지의 근황을 살피는 등 재정뿐만 아니라 전 방위로 이 소년의 생활을 지원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코타로는 단지 운이 좋았던 걸까. 천만에, 멋진 이웃은 상호작용의 결과였다. 이 어린아이가 도움만 받는다 해서 누가 뭐라 할까. 하지만 코타로는 이웃들을 항상 살피고 격려한다. 코리노가 무명 딱지를 뗄 수 있게 의지를 북돋아주었고, 미즈노가 애인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코타로 덕분에 타마루는 떨어져 있던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한다.
어리지만 자신의 삶을 책임지려 애쓰는 소년의 모습에 힘입어 이웃들도 삶에 충실하고자 노력하고 서로를 살피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모습으로 성장한다.
나이가 들었나, 하루가 지나면 그만큼 내 삶이 낡아졌다 느낄 때가 많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질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생각되니 맥락 없이 불안하다. 자식이 해결책이 아닌데 결혼 안 한 대가를 치르나 보다 초조해지고 스스로 세워 가야만 하는 ‘독거노인 생활 대책’에 마음이 급해진다.
그래서일까, 이 드라마를 보고 난 뒤 변호사 스즈노 같은 존재가 노인들에게도 필요하다고 열변을 토했다. 요양이나 간병에 국한되지 않고 병원진료나 재정 관리, 일상생활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라가 안 해주면 퇴직하고 내가 만들어볼까 농반진반 말하고 다녔다.(투자 의지를 밝힌 이도 다수 있다.)
『독거소년 코타로』는 가족만이 ‘함께’의 단위가 아니며 홀로 산다고 ‘혼자만’ 감당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한, 내게는 남다른 드라마이다.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생활 지원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최선을 다해 내 삶을 가꾸고 할 수 있는 만큼 주변을 살피는 마음이 먼저라는 것도.
늙어감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심신이 쇠락함을 뜻한다. 하지만 할 수 없어진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마음, 주어지는 도움에 감사를 잊지 않는 성숙함을 잃지 않도록 나를 단련할 수는 있지 않을까? 다섯 살 소년도 했으니 말이다.
‘독거노인 가을투덜이’의 당찬 하루하루를 30년 후 <브런치 스토리>(그때도 있다면)에 담아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