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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영 Jul 16. 2023

삶이 전쟁터였던 아버지

바르게 살기



1. 10년 동안 12번 불 지른 아버지 


   (윌리엄 포크너 『헛간, 불태우다』, 민음사)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재판이 열렸다. 땅 주인인 해리스 씨의 옥수수밭에 소작농인 애브너의 돼지가 두 번이나 들어왔다. 해리스 씨는 돼지우리가 없는 애브너에게 돼지우리를 만들라며 철조망까지 넉넉히 주며 돼지를 돌려보냈다. 세 번째 또다시 돼지가 들어왔을 때, 해리스 씨는 돼지를 붙잡아 가둬 놓고 애브너의 집으로 갔다. 철조망은 앞마당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해리스 씨는 애브너에게 돼지우리 사용료로 1달러를 내면 돼지를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한 흑인이 1달러를 갖고 돼지를 찾으러 왔다. 그는 "장작과 건초는 불에 잘 탄다고 전하래요."라고 말하며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 해리스 씨네 헛간이 불에 타 버렸다. 해리스 씨는 소년(사토리스)에게 증언을 요구했지만 난처해하는 소년을 보며 증언을 중지시켰다. 애브너는 판사로부터 증거 부족으로 무죄 판결을 받지만 이 마을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애브너는 소년의 아버지였다. 소년의 가족은 아버지와 형, 뚱뚱하고 게으른 누나 둘, 어머니와 이모 이렇게 일곱 식구였다. 그들은 마차를 타고 마을을 떠났다. 아무도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고 물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면 늘 어딘가에서 늘 어떤 종류의 집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도착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다른 농장에서의 소작 일을 이미 정해 놓은 것 같았다. 그는 늘 이런 식이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마차는 열 살 소년의 삶에서 열세 번째 새로운 집 앞에 멈추었다. 아버지는 소년을 데리고 땅 주인인 드스페인 소령의 집으로 갔다. 가는 길에 말똥을 밟은 아버지는 집 안으로 들어가 양탄자에 그의 발자국을 남겼다. 드스페인 소령은 집에 없었다. 얼마 뒤 드스페인 소령이 더럽혀진 양탄자를 가져왔다. 아버지는 딸들에게 양탄자를 빨도록 했다. 발자국이 지워진 양탄자에 아버지는 돌멩이로 선을 그어 돌려주었다. 양탄자에 난 흠집을 보고 화가 난 드스페인 소령은 수확을 하고 난 뒤 옥수수 550킬로그램을 부과하겠다고 말했다.


며칠 후, 소년은 아버지 그리고 형과 함께 치안 판사를 만나러 갔다. 아버지는 양탄자에 발자국 흔적을 지워줬으니 옥수수 550킬로그램 배상은 지나치다고 했다. 판사는 양탄자에 흠집을 냈으니 발자국 흔적을 지웠어도 발로 밟기 전과 동일한 상태로 돌려준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판사는 아버지의 형편을 생각해 옥수수 270킬로그램을 드스페인 소령에게 갚으라고 판결했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기름통을 들고 헛간으로 향했다.


소년은 드스페인 소령 집으로 달려가 "헛간이에요!"라고 큰 소리로 외친 후, 현관문을 빠져나가 뛰기 시작했다.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 뛰었다. 그의 귓가에 총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계속 뛰었다. 곧바로 총성이 두 발 더 울렸다. 그는 달리면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 아버지!" 그는 새들이 물 흐르듯 은빛 소리로 끊임없이 울어 대는 어두운 숲을 향해 언덕을 내려갔다. 그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2. 전리품 : 적에게서 빼앗은 물품 

 


여기 공포와 절망을 느끼는 열 살 소년(사토리스)이 있다. 소년의 아버지(애브너)는 가는 곳마다 일부러 문제를 일으키고, 지주의 헛간을 불태웠다. 그로 인해 가족들은 한 곳에 정착할 수 없었다. 소년의 나이 열 살이 되는 동안 가족들은 열두 번 이사를 했다. 이 모든 게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아버지. 소년에게 아버지는 공포와 절망이었다.    


벌써 열두 번째다. 아버지는 지주의 헛간을 불태운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증거 부족으로 무혐의 처리됐다. 열세 번째 이사 간 농장. 이제는 제발 아버지가 헛간을 불태우지 않기를 소년은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며칠 후, 지주의 헛간을 불태우러 가는 아버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소년은 지주에게 달려가 알린다. 얼마 후 들리는 세 발의 총성. 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는 더 이상 소년에게 공포와 절망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소년의 아버지는 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헛간을 불태운다고 했을까?


그는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백인 의용군이었다. 아군 적군 없이 오로지 전리품만을 위해 참전했던 그는, 남군과 북군의 눈을 피해 전쟁터의 말들을 훔쳤고, 훔친 말을 타고 가다 발뒤꿈치에 총을 맞았다. 절름거리는 다리로 전리품(말들)을 지켜야 했던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4년이란 긴 시간을 숨어 지내야만 했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 그가 의지한 건 오직 불이었다. 그에게 불은 그와 전리품(말들)을 지켜주는 무기였다.    


전쟁은 끝났고 그는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그에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의 삶은 여전히 가난과 싸우며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전쟁터였다. 그는 일곱 명이나 되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전리품(곡물, 가축 등)을 찾아 나섰다. 그 전리품은 지주의 헛간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소작농이 되었다.


아군 적군 없이 오직 전리품만을 위해 참전했듯, 그가 소작농이 된 이유도 농사가 아니었다. 오로지 전리품(곡물, 가축 등) 때문이었다. 전리품을 빼내기 위해, 남군과 북군의 눈을 피하듯, 지주의 눈을 피해야 했던 그는 일부러 문제를 일으켜 지주와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지주의 헛간에서 전리품을 챙겼고, 챙긴 전리품을 들키지 않기 위해 헛간을 불태웠다. 전쟁터에서 그랬듯 그에게 불은 그와 전리품을 지켜주는 무기였기 때문이다.


가족의 생계였던 전리품.

전리품을 지키기 위해 불태워야 했던 헛간.

그에게 전리품을 지키는 것은 곧 가족을 지키는 것이었다.


삶이 전쟁터였던 아버지.

이제 그의 전쟁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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