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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영 Jun 27. 2023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가

정체성 찾기


1. 패싱... 백인 행세 (넬라 라슨 『패싱』, 문학동네)



1부 : 뜻밖의 만남


시카고, 팔월. 아이린 레드필드는 더위를 피해 들어간 드레이튼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학창 시절의 친구인 클레어 켄드리를 우연히 만났다. 그녀를 본 것은 십이 년 만이었다. 고아가 되어 웨스트사이드(백인 거주 지역)에 있는 백인 친척집으로 떠났던 클레어 켄드리. 그녀는 '인종 패싱' 즉 '백인 행세'를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흑인 혼혈이었지만 백인처럼 보였던 클레어는 흑인 혼혈인 것을 숨긴 채 백인 행세를 하며 백인 존 벨루와 결혼해 딸을 낳았다. 아이린 역시 백인처럼 보이는 흑인 혼혈이었지만 그녀는 흑인 의사와 결혼해 아들 둘을 낳고 할렘(흑인 거주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며칠 후, 아이린은 클레어를 다시 만났고 클레어의 남편 존 벨루도 보게 되는데, 흑인을 증오한다는 그의 말에 아이린은 수치심과 분노를 느낀다. 다음날 아침 클레어로부터 편지가 왔다. 어제 일을 용서해 달라며 다시 만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 아이린은 편지를 찢어버리며, 다시는 그녀를 보지 않기로 한다.



2부 : 재회


그렇게 이 년이 흘렀고,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그것은 클레어 켄드리에게서 온 편지였다. 제법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흑인을 증오한다는 존 벨루의 말을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보고 싶다고, 다시 만나고 싶다고 적혀 있는 클레어의 편지를 보니 불쾌했다. 아이린은 답장을 하지 않았고 편지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느 날 아이린의 집으로 찾아온 클레어. 그녀는 아이린에게 답장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아이린은 클레어의 안전 때문이라고 대답하며 흑인과 만나는 생활로 다시 돌아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했다. 늘 외로웠던 클레어는 이 년 전 아이린을 만난 이후 생각이 달라졌다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흑인들과 함께 하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때 아이린에게 걸려온 백인 작가 휴 웬트워스의 전화. 클레어는 내일 흑인복지연맹 댄스파티가 있으며, 흑인들의 댄스파티에 백인들이 온다는 말을 듣고 파티에 참석하기로 한다. 댄스파티 날, 아이린의 남편 브라이언을 처음으로 만난 클레어. 그녀는 브라이언과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댄스파티 이후 클레어는 자주 아이린의 집을 방문했고, 이따금 아이린과 브라이언을 따라 파티에 가고 춤을 추러 다녔다. 그리고 드물게 아이린이 갈 수 없거나 외출이 내키지 않을 때는 브라이언과 단둘이 파티에 가기도 했다.



3부 : 피날레   


어느 티파티 날, 초대하지 않은 클레어가 나타났다. 그녀를 초대한 사람은 아이린의 남편 브라이언이었다. 아이린은 굉장히 불쾌했고 눈물이 나왔다. 그 불쾌함은 남편 브라이언과 클레어가 다정히 앉아 얘기하는 걸 보자 분노로 바뀌었다. 아이린은 클레어의 남편 존 벨루에게 클레어의 할렘 방문을 알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렇게 클레어를 영원히 제거하고 싶었다.


그녀의 바람에 대한 응답처럼 바로 다음날 아이린은 존 벨루와 마주쳤다. 그녀는 흑인 펠리스와 시내로 쇼핑을 갔었다. 아이린을 백인으로 알고 있는 존 벨루는 흑인과 함께 있는 아이린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아이린은 존 벨루와의 만남을 클레어에게 말해야 했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린이 클레어에게 물었다. 할렘에 오는 것을 남편이 알면 어떻게 할 거냐고. 이곳 할렘에 와서 살 거라고, 여기서 하고 싶은 걸 할 거라고 말하는 클레어. 아이린은 두렵고 불안했다.


다음날 아이린과 브라이언 그리고 클레어는 펠리스가 초대한 파티에 갔다. 브라이언의 팔에 달라붙어 있는 클레어와 그녀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브라이언이 아이린의 눈에 들어왔다. 덥다고 느낀 그녀는 바닥까지 닿는 긴 여닫이창을 열었다. 그때 들리는 초인종 소리. 문쪽에서 클레어를 찾는 존 벨루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는 클레어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네가 깜둥이란 말이지. 빌어먹을 더러운 깜둥이."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고통이 담겨 있었다.


창가에 선 클레어는 상관없다는 듯 태연했다. 심지어 희미한 미소까지 보이는 그녀. 그 미소에 아이린은 격분했다. 그녀에게 달려간 아이린. 클레어의 팔에 손을 얹었다. 아이린이 기억하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활짝 열려있던 창문으로 클레어는 떨어졌고 즉사했다. 그녀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아이린은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가 물었다. 남편 존 벨루가 클레어를 민 것이 아닌지. 아이린은 대답했다. "아니, 아니에요! 클레어는 그냥 떨어졌어요." 그러자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사고사인 것 같군."  



2. 패싱...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여기 두 여인이 있다. 아이린 레드필드와  클레어 켄드리. 그들은 흑인 거주 지역에서 자랐고, 백인처럼 보이는 흑인 혼혈이었다. 백인처럼 보이는 외모를 가진 그들은 '패싱' 즉 '백인 행세'를 했는데, 아이린은 식당이나 극장 등 편의상의 이유로 가끔 '패싱'을 하며 흑인으로 살고 있었고, 클레어는 원래 백인인 양 '패싱'을 하며 백인으로 살고 있었다. 그녀는 왜 백인으로 살려고 했을까?  


클레어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살림은 궁핍했다. 고아가 된 클레어를 데려간 대고모들은 백인이었고, 그들이 사는 곳은 백인 거주 지역이었다. 흑인 핏줄을 수치스럽게 여긴 그들은 클레어에게 온갖 집안일을 시키며 신신당부했다. 이웃들에게 흑인이라는 말을 절대 하지 말라고. 클레어에게 그들은 조카를 돌보는 보호자가 아닌 흑인 하인을 부리는 주인이었다. 클레어는 그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고아에 가난한 흑인 소녀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예쁘고 백인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된 클레어는 그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백인이 되기로 한다. 그녀는 철저하게 흑인 혼혈이라는 것을 숨긴 채 '패싱'을 했고, 성공한 백인 사업가 존 밸루와 결혼해 딸을 낳았다. 그녀는 목표를 이뤘다. 행복한 가정을 이뤄 불우한 가정에서 벗어났고, 성공한 사업가를 만나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났으며, 백인이 되어 인종 차별에서 벗어났다. 패싱을 통해 그녀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다. 패싱을 하며 살고 있는 자기는 진짜가 아니었다. 가짜 인생을 사는 그녀는 너무 외로웠다. 이제 그녀는 진짜 인생을 살고 싶어졌다. 패싱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인생. 그녀는 아이린을 찾아간다.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는 아이린. 아이린을 통해 흑인 사회로 돌아가고 싶고,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었다. 이런 클레어가 아이린에겐 어떻게 보였을까?  


아이린은 그녀가 소름 끼치게 무섭다. 제집 드나들듯 아이린의 집을 방문하더니, 이 집의 안주인인 양 아이린의 남편과도 아이린의 자식들과도 심지어 가정부와도 너무 친하게 지낸다. 게다가 부부동반 모임에 따라다니더니 이젠 아이린 없이 남편과 둘이 모임에 가기도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가까워지는 둘을 보며 아이린은 불안하고 두렵고 분노한다. 아이린에게 클레어는 친구가 아니다. 기족의 평온함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인 것이다.  


그녀를 멈추게 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일까 아이린은 고민한다. 그녀의 백인 남편이 알게 되는 것, 그래서 패싱으로 얻은 모든 걸 잃게 되는 것. 그것이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아이린. 하지만 아니었다. 클레어는 오히려 남편이 알기를 바랐다. 남편이 알아서 그녀와의 관계를 끝내주기를. 그래서 자유롭게 되기를 원했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패싱을 하며 사는 가짜 인생이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안전한 곳은 과연 어디였을까? 목적 달성을 위해 패싱을 하며 살았던 백인 사회였을까 아니면 진짜 인생을 살기 위해 찾아간 자신의 뿌리 흑인 사회였을까.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 그녀의 인생, 어디에도 뿌리 내리지 못한 그녀의 인생에 과연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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