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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영 May 06. 2023

나의 상식이 모두의 상식이라는 착각

관점 바꾸기


1. "이거 진짜 대단하군!"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아내의 오랜 친구 중 맹인이 한 명 있다. 그가 하룻밤 묵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 십 년 전 여름, 시애틀에서 그를 위해 일한 뒤로 그녀는 한 번도 그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와 맹인은 말로 녹음한 테이프를 우편으로 주고받으며 계속 연락하고 있었다. 내게는 그의 방문이 반갑지 않았다. 나로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고, 맹인이라는 사실도 마음에 걸렸다.


십 년 전 그녀는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그녀는 신문에서 맹인에게 책 읽어주는 일자리를 발견했다. 그 자리에 채용되면서 맹인을 만났고, 둘은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일을 그만둔 후에도 그녀는 그녀의 첫 결혼과 이혼 그리고 나와의 만남과 재혼 등 살아가는 이야기를 테이프에 녹음해서 맹인과 주고받고 있었다.


드디어 맹인이 도착했다. 맹인은 건장한 체격에 어깨가 구부정한 사십 대 후반의 남자였다. 하지만 그는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았고 검은 안경을 쓰지도 않았다.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었다. 맹인은 자기 접시 위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나이프와 포크로 고기를 다루는 걸 넋을 잃고 지켜봤다.


식사를 한 후 우리는 거실로 자리를 옮겼고, 나는 TV를 켰다. 아내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그녀가 빨리 오기를 바랐다. 맹인과 단둘이 있고 싶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고 온 아내는 곧 소파에서 잠들었다. 어색해진 나는 TV를 봤다. TV에서는 교회와 중세에 관한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화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맹인에게 설명하느라 애를 썼다.


이제 TV에서는 대성당이 나왔다. 나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뭔가 말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맹인에게 대성당의 모습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대성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나에게 맹인은 펜과 종이를 가져오라고 했다. 맹인은 펜을 쥐고 있는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었고, 그 상태로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나는 그리기 시작했고 맹인은 잘하고 있다며 칭찬해 주었다.


맹인은 나에게 이제 눈을 감고 그려보라고 했다. 맹인은 잘했다고 말하며 나에게 그림을 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고 싶었다. 맹인이 나에게 보고 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은 분명 우리 집이었으나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말했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 (It's really something!)"  




2. 상식이란 이름의 고정관념  



주인공 '나'는 그 손님이 반갑지 않다. 그 손님이 '모르는 사람이고 맹인이라서'라고 했지만, 더 솔직히 말하면 그 손님이 맹인인 데다, 아내와는 오랜 시간 연락을 주고받은 사이이고, 자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기 때문에 뭔가 찝찝하고 귀찮은 것이다.


그렇게 처음부터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맹인이 도착했을 때, 반가운 맘보다는 자기만의 고정관념이 앞선다. 하지만 '맹인이 뻔하지'라고 생각했던 그의 고정관념은 첫 만남부터 깨진다. 맹인은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았고 검은 안경을 쓰지도 않았다. 주인공이 알고 있는 맹인은 지팡이에 검은 안경을 쓰고 있다는 고정관념이 깨진 것이다.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주인공의 고정관념은 또다시 깨진다. 맹인은 자기 접시 위에 음식을 눈으로 보고 있는 듯 나이프와 포크로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주인공이 알고 있는 맹인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식사가 가능하는 고정관념이 또다시 깨진 것이다.


이제 주인공의 고정관념은 깨지는 정도가 아닌 초월의 경지를 경험한다. 맹인에게 대성당의 모습을 설명하느라 애를 쓰는 주인공에게, 맹인은 말이 아닌 그림으로, 그리고 눈을 뜨고 보는 것이 아닌 눈을 감고 보는 법을 가르쳐 준다. 눈을 감은 주인공은 분명 집에 있으나 어디에도 있지 않은 초월의 경지를 경험한다. 그것을 경험한 주인공의 입에선 감탄의 말이 절로 나온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


나는 한때 '상식'이라는 말을 많이 했었다. '그거 상식 아니야?' '그건 상식에서 벗어나잖아.' '상식에서 벗어나면 문제 있는 거야.' 그 말로 인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 깨달았다. 그 상식은 나만의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나의 고정관념을 상식이라는 말로 모든 것에 적용하고 모든 사람을 판단하려고 했던 것이다. 


고정관념의 가장 큰 문제는 관점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관점을 바꾸지 않으면 고정관념은 더욱 단단해지고, 이것은 관점 바꾸기를 더욱더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고정관념을 깨면 관점을 바꿀 수 있고, 관점을 바꾸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 또는 놓쳤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다시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 고정관념이 자리잡지 않도록 도와준다.


주인공을 보는 내내 상식이란 이름의 고정관념으로 덮여 있던 내 모습이 생각나 마음이 짠했다. 그 상식이란 이름의 고정관념을 깨고 나오는 순간 주인공은 외친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 이제 세상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관점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과연 나는 어떤지 아직도 나의 상식이 모두의 상식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참 어려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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