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던 하와이의 따뜻함을 그리며
사흘 전에 우리 주민들이 (산불을 피하려다) 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바로 다음날 관광객들이 같은 물속에서 수영을 했어요.
마우이 섬 주민, BBC 인터뷰 중.
지난 8일,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몇 시간 만에 13평방 킬로미터를 태웠고, 2,200개 이상의 건물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다.
이 중 86%가 주거용 건물이었으며, 약 55억 달러(7조 원가량)의 피해가 발생했다.
오늘(23.08.17.) 기준 최소 110명의 사망자를 '발견'했다.
앞으로 사망자 수가 얼마나 늘어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실종자 수만 해도 1,000명이 넘는다.
사망한 이들의 장례를 치러주기조차 쉽지 않다. 너무나도 강한 화재 탓에, 사람들의 형체조차 남아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고, 집을 잃었으며 희망 또한 잃어가고 있다.
지금 마우이의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관광객은, 불타 죽지 않으려 바다로 뛰어드는 주민들의 울부짖음이 들릴까.
언제나 참사는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수많은 조건과 실수와 방관이 얽히고설켰을 때야 비로소 나타난다. 우선, 하와이의 환경이 화재가 발생하기에 너무나 쉬운 환경이었다.
극심한 가뭄
강력한 바람
구글로 검색만 해보아도, 한 달 전, 일 년 전 언제나 가뭄에 의한 화재를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극심한 건조 기후가 나타나고 있으며, 화재 발생 시 큰 위험이 예상된다고 거듭 경고한다. 실제로 몇 차례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참사를 막을 시스템,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왜 가뭄이 더욱 심해졌으며, 바람까지 강했을까? 애석하게도 기후변화가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이상 기후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하와이의 경우 가뭄이 발생했다. 안 그래도 건조한 기후에, 비까지 내리지 않으니 가뭄이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또한, 먼 해상 지역에서 기온 상승으로 인해 허리케인이 발생했다. 이 또한, 기온이 높아질수록 증발되는 수분의 양이 증가하기 때문에 더욱 강력해지는 양상을 띤다. 이로 인해 최고 시속 129km의 말도 안 되는 강풍이 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돌풍으로 인하여 나무가 쓰러졌고, 전신주에 닿아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때, 어떠한 사이렌도 울리지 않았고, 광범위한 정전으로 인해 다른 방식의 경보조차 울리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자연 만을 탓할 수는 없어 보인다.
마우이 섬은 아니었지만, 오하우 섬에 잠시 한 달 정도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때 영어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와이키키 해변에 가 모르는 이들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청했다. 지금 생각해도 꽤나 부끄러운데, 그때는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특히나, 얼굴이 까맣게 탄 하와이 사람들에게 주로 말을 걸곤 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이야기해보고 싶기도 했다. 길을 걸어 다니며 대상을 물색하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아래처럼 말하며 다가섰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해외에서 온 학생인데요. 인터뷰 부탁드려도 될까요?"
처음에는 동양 아이 서너 명이 다가와 말을 거니 경계하던 것도 잠시, 공부하는 학생들이 인터뷰를 요청한다는 말에 환하게 웃어주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분명 인터뷰하는 것은 우린데, 더 많은 질문을 되려 받기도 했다. 어디서 왔는지, 하와이 생활은 어떤지, 언제쯤 돌아가는지. 그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와 질문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특히나 아직도 기억나는 분이 있다. 중년의 여성분이셨는데, 어김없이 환하게 웃어주시며 우리가 준비한 어설픈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셨다. 그렇게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감사 인사를 한 후 돌아가려는 찰나 갑자기 우리에게 말을 건네셨다.
"학생들, 정말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있고, 너무나도 멋져요. 앞으로 남은 하와이 생활도 즐기다가 가기를 바랄게요."
모르는 이들에게, 불편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따뜻한 말을 건네주신 그분 덕분에 하와이 사람들은 나에게 친절함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이번 참사가 더더욱 마음이 아프다.
기후 변화로 인한 참사라는 것이 나에게 좌절감을 느끼게 하곤 한다.
내가 환경을 지키는 일을 하더라도,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는 걸 막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과연 지금까지 내가 한 활동들이 환경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조차 확신하기 어렵다.
하지만, 결국 나와 내 주변 사람을 지키기 위해 꿋꿋이 해야 할 일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묵묵히 하다 보면 나와 내 주변을 지키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2050년, 우리는 탄소 중립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고 있다.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아니, 해야만 하겠지.
그때가 파멸의 해가 될 것인지,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는 해가 될 것인지.
다시 한번 하와이 마우이섬의 빠른 복구를 바란다.
마우이섬의 주민들이 웃음을 되찾을 때,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다.
하와이의 수많은 사망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