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은 얼마나 튼튼해야 하는가.
최근 위스키에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습니다. 비록 술은 못하지만, 술을 즐겨 볼 수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실제로 최근 몇 주 동안 몇몇 개의 위스키를 직접 구매해 맛을 보기도 하고 정보의 바다 유튜브를 통해 위스키의 역사, 제조 방법, 맛 평가 등등 다양한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역시 내가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고, 깨우쳐 가는 건 참 재밌더군요. 다만 아직까지 여러 향을 구분하고, 어떤 술이 맛있는 술인지를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아! 이런 게 위스키구나 하는 수준이라 취미를 가졌다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어쨌든, 유튜브에는 참 재밌는 영상이 많아 열심히 보던 참입니다.
그런데, 관련 영상을 보다 보니 잠깐 스쳐가듯 지나가는 내용에 관심이 확 꽂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로, 제분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위스키라는 술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곡물을 갈아주는 과정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양조장마다 제분기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양조 업자들이 많이 구매했던 브랜드가 바로 '포르테우스'였습니다. 마치 우리가 요즘 스마트폰을 구매할 때 갤럭시 혹은 아이폰을 구매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포르테우스라는 회사. 망했습니다! 너무 튼튼해서 약간의 정비만으로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었거든요. 성능 또한 너무 좋아서 굳이 바꿀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죽하면 1900년대부터 지금까지 사용할 정도니까요. 그러다 보니, 제분기를 한 번 구매한 기업들은 다시 구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포르테우스 제분기의 판매량은 계속해서 감소했고, 결국 파산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좋은 제품을 만들었기에 오히려 회사가 파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이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요즘의 제품들은 어떠한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저는 보통 스마트폰을 2년에 한 번씩 바꾸곤 했습니다. 2년 정도가 지나면 스마트폰이 슬슬 느려지는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제품, 성능이 매력적으로 보였거든요. '슬슬 흠집이 나기 시작했는데', '요금제 약정도 끝났다'와 같이 여러 바꿔야 할 이유를 만들어가며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곤 했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물욕이 조금 줄어들어, 새로운 스마트폰을 구매하지 않고 3년 조금 안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스마트폰을 3년 정도 사용하기도 하고, 몇몇 분들의 경우 짧게는 수개월에 한 번씩 교체하고 있습니다. 비록 기기 자체에 문제가 없더라도 새로운 물건을 구매하고 싶어서, 새로운 기능을 쓰고 싶어서 바꾸기도 합니다. 일부 기사에 따르면 2022년은 세계적인 경기 침체 역풍으로 인해 판매량이 매우 감소했다고 합니다. 몇 대 출하되었냐고요? 12억 4천만 대입니다. 많이 감소해서요.
놀랍게도 삼성과 애플과 같은 유수의 기업들은 각 제품별로 온실가스가 얼마나 배출되는지 계산해서 공개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삼성의 최신 스마트폰 중 하나인 S23을 봐볼까요?
3년 사용 기준으로, 삼성의 갤럭시 S23을 사용할 경우 1대 당 45.6kg의 탄소가 배출됩니다.(제조, 사용, 폐기 등의 모든 과정을 고려하였을 때) 12억 4천만 대 모두가 S23이며, 모든 사용자가 3년간 알차게 사용한다고 가정한다면 5654.4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됩니다. 실감이 잘 안나 실 겁니다. 이는 대충 어림잡아 인천에서 파리까지 72,772,200번 비행하면 나오는 온실가스 양과 맞먹으며, 우리나라 국가 배출량의 8-9%가량 되는 수준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3년이 되기 전에 바꾼다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네요.
만약 삼성과 애플의 스마트폰이 포르테우스 분쇄기처럼 엄청난 성능, 내구도를 갖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래도 지구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굳이 새로운 스마트폰으로 바꾸지 않아도 되니,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양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테니까요. 하지만, 분명 삼성과 애플이라는 기업의 가치는 하락하고, 언젠가는 파산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의도적으로 1년 정도만 쓸 수 있게 만든다면? 그것 또한 소비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겠지요.(실제로 과거 애플에서는 고의적으로 기기 성능을 제한한 바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3년 정도를 타깃으로 기기를 제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참 수익, 성능, 환경 등 모든 요소를 고려한다는 것이 기업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문제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비자들에게 무조건 3년을 채워야 변경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방안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갤럭시의 삼성, 아이폰의 애플은 아래의 두 가지를 해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1. 친환경 설계
- 기기 자체의 설계, 제조를 친환경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재활용 플라스틱을 활용하고, 전력을 보다 적게 사용하도록 한다면 현재의 배출량보다 훨씬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것들을 보통 친환경 설계라고 부르며, 스마트폰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제품군에서 적용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사용자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이상적인 방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2. 부자재 통일/제거
- 이 방법은 사실 소비자들에게 많은 질타/응원을 받기도 합니다. 스마트폰 패키지에서 충전기 혹은 이어폰을 제거한다거나(부정), 아이폰의 충전 단자를 C타입으로 통일하는(긍정) 방법입니다. 기존의 충전기, 이어폰이 잘 작동됨에도 불구하고,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는 새로운 상품을 사용한다면 환경에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를 제거하고, 가격을 조금 인하했습니다.(실제로 가격이 인하되었는가는 고민해 볼 부분입니다.) 또한 기존 8핀을 사용하는 아이폰의 충전 단자를 C타입으로 통일해 추가적인 충전기를 구매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방법은 꽤나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부가적으로 필요한 충전기를 줄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도 했습니다.
간단합니다. 기업이 제품을 생산할 때 품질과 이윤을 절묘하게 맞추기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계를 너무 튼튼하게, 오래 사용하게 만드는 것은 기업의 존립에 위협이 됩니다. 따라서 기업에게 강요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그 정도가 심해지면 소비자, 환경에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기업에서 고려를 할 겁니다. 하나 팔이 안으로 굽듯이, 점차 이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슬그머니 갈 때, 소비자들이 직접 제품을 사용하고, 평가하고, 의견을 냄으로써 그 중도를 맞출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결론.
기업이 너무 이윤에만 치우치면, 꼭 짚고 넘어가자. 지구와 소비자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