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하늘 Jan 26. 2024

6) 사망한 아버지의 보증빚

빚과 가족의 상관관계

5) 월세방에서 쫓겨날 위기의 엄마

기존글 편집


6) 사망한 아버지의 보증빚


97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6년간 투병하면서 숨을 이어가다가 끝내 생을 마쳤다. 아버지가 아프면서 집의 가세는 가파르게 기울었다. 이전까지도 부유한 적은 없었지만 가장의 심각한 병환은 자식들에게 빚의 굴레를 만들었다. 자녀넷은 각자 자신의 몫에 한계를 느끼며 빚을 갚았다. 자녀 넷 중 셋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전후로 결혼과 이혼을 경험했다. 이혼한 세명의 자녀가 한집에 살게 되었다. 집안의 막내였던 내 집 24평 임대아파트. 59m 2 공간에 엄마, 오빠, 오빠의 자녀 둘, 작은언니, 나, 그리고 나의 아들이 모였다. 2007년, 아버지가 영면에 들고 10년이 지나고 있었다.


어느  우리 집에 온 우편물, 수신인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내용을 보니 아버지가 보증 선 것에 대해 채무자 표기는 나로 되어있었다. 돌아가신 지 10년이나 됐는데 갑작스러웠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우편용지에서 토네이도가 일면서 블랙홀로 나의 감정들이 빨아들였다.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자그마치 10년 동안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허우적거렸는데 다시 시작이란 말인가? 서러움과 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끊임없이 괴롭히는 빚의 굴레는 어디까지인 걸까? 빠져나갈 수는 있는 걸까? 왜 부모님은 나를 낳으셨을까? 돌아가신 분을 대상으로 화를 낼 수도 물어볼 수도 없었다. 엄마에게 물어봤지만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채무자라고 표시된 사람의 이름은 채ㅇㅇ이었다. 엄마는 도통 채가라는 사람은 모른다고 했다.


98년 개정된 상속법 중 우리 가족에게 유의미한 한 가지 개정정책이 있다. 단순상속에 대한 내용이다. 본 상속법 개정이전까지 상속은 3개월 이내에 단순 상속이 원칙이었다. 98년 개정된 내용은 빚이 재산보다 많거나 빚을 늦게 발견한 경우 구제해 주는 제도다. 무조건 3개월 이내에 상속되는 것이 아니라 채무를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상속을 포기할 수 있는 정책이다. 상속을 받는다는 것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산을 상속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재산뿐 아니라 빚도 상속이 된다. 법률적 용어인 '단순상속'이란 '무조건적인 상속'을 의미한다. 고인이 재산을 남기고 갔다면 다행이지만 빚을 남기고 갔다면 낭패를 보게 된다. 고인과 이별에 아파할 겨를도 없이 재산과 채무를 파악해야 한다. 요즘엔 상속인이 금융권 조회가 수월 해졌기 때문에 간편해졌다. 안타깝게도 97년에 돌아가신 아빠는 개정된 법률과 무관했다.


아버지가 6개월만 더 사셨더라면 우리 가족들의 인생이 조금은 편안했을까? 원망.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원망이란 감정이 먹어버렸. 누군가는 법을 제대로 알고 법을 활용하고 이용도 할 줄 안다. 나는 어땠을까? 법은 사회적 약속이므로 보편타당하고 마땅할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다. 적당하게 모르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법, 사회 질서를 묵묵하게  지키고 살면 그럭저럭 편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지한 우리들은 법에 패배하고 휘둘렸다. 아버지의 보증채무는 원금은 2천여만 원이었다. 그런데 이자는 배가 넘었다. 10년의 세월 동안 불어난 이자는 원금보다 더 많았다. 나를 상대로 법조치가 된다고 되어있었다. 그즈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통장, 급여, 보증금, 유체동산등이 압류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넋 놓고 있다가 다시 크게 당할 수는 없었다. 피할 수 있는 것이라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면 맞닥뜨려야 한다. 그리고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작은언니와 나는 우편물에 있는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통화하면서 의문점이 생겼다. 도대체 채 00이란 채무자는 누구일까? 아버지와는 어떤 관계였을까? 채무자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떤 채무자길래 보증인이 죽은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빚을 갚지 않은 것인가? 그리고 어떤 채권자길래 이다지도 무자비한가? 확인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빚을 갚아도 갚기로 했다. 실마리를 찾기 위해 채권자의 사무실에 가기로 했다.


00 신용정보사라고 표기된 사무실로 들어갔다. 건물의 낡은 건물이었고 그곳에 들어가니 직원이 꽤 많은 곳이었다. 담당자는 반색을 하며 우리를 반겼다. 채무를 해결할 호구들의 등장에 환호하는듯했다. 담당자는 어떻게든 우리가 채무를 갚도록 유도했다. 담당자는 최근자료만 내밀었다. 우리는 모든 원인서류를 요청했다. 


서류를 가지러 갔던 담당자는 협조하며 캐캐묵은 파일을 가지고 나왔다. 우리는 서류를 꼼꼼히 살폈다. 채 00과 아버지의 관계를 찾아야 했다.  서류파일이 두꺼웠다. 10여 년 동안 쌓인 서류는 여러 장이 있다. 아버지와 채 00이 어떤 관계인지 살폈으나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싶었다. 채무내용은 단순했다. 덤프트럭 차를 사며 보증을 섰다. 관련된 차량도 확인하고 차량의 행방도 물어봤다. 채무자의 초본이나 개인정보에 대한 사항도 묻고 기록했다. 한참 서류를 보다가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조 00  삼촌의 이름이었다. 뭐지? 채무자인 채 00은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조 00은 엄마의 동생이다.


"이 사람이 서류에 왜 있죠? 우리는 채 00은 모르는 사람인데 조 00은 아는 사람입니다. 채무가 조 00과 관련이 있습니까?" 언니와 나는 뭔가를 찾은듯했다. 그나마 아는 사람이름이 나왔고 원인규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채권자담당자의 말을 듣고 보니 아주 이상했다. 조 00은 차를 산사람이라고 되어있었다. 채무자인 채 00이 조 00에게 덤프트럭을 팔았다고 했다.  엄마에게 당장 확인전화를 했다. 그제야 엄마는 아빠가 삼촌이 차를 살 때 보증이 필요하다고 해서 서류를 준 적이 있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아버지는 삼촌의 보증을 서준적이 있다. 채 00은 차를 판사람이다. 채 00을 아버지가 아는 사람이란 말인가? 엄마에게 삼촌과 연락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삼촌과 전화연결이 됐다. "채 00을 니네 아빠가 어떻게 알아? 나도 모르는 사람인데." "그리고 나는 찻값 모두 갚았어" 삼촌의 통화로 명확해졌다. 아빠는 삼촌인 조 00의 보증을 선 사람이다. 그리고  삼촌은 차량가격을 모두 정상완납했다. 그렇다면 왜 채 00의 보증인으로 아버지가 기록되어 있는 걸까? 그리고 그간 집이 경매될 때도 본 채권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시간이 10년이 지났고 이제 와서 자식 중 한 명인 나에게 법조치까지 하려고 했다. 담당자의 얼굴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언니와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뒤돌아 그 자리를 피했다.


어이없게도 채권자는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다. 조00의 보증인인 아버지를 관계없는 채00의 보증인으로 전산등록했다. 그리고 추심을 했다. 그렇게도 긴 시간동안. 당시에 우린 놀라서 그간의 일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그동안 그들이 가지고 간 돈을 요구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간 우리가 겪은 모든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했다.


사망한 아버지의 보증채무를 10년 후 알게 됐다. 도망가려고 했다면 덜미를 잡혔을 것이다. 민사적인 책임을 모두져야 했을 것이다. 자세히 알아보고 맞닥뜨렸을 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 이후 나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았다. 도망가지 않는다.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4) 시어머니와 남의 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