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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하늘 Feb 07. 2024

8) 새로운 가족

빚과 가족의 상관관계

8) 새로운 가족


타자를 만나고 인연을 맺는다는 건 인간의 생에 아주 중요한 요소다. 서로 기대어 사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사람인 한자는 서로 의지한 형태로 되어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과학기술이 발전하더라도 결국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 사람이 태어나 처음으로 맺는 인간관계는 가족이다. 태생으로 주어진 가족구성원은 선택할 수 없다. 이미 정해진 부모와 형제자매 그들의 조상까지 끝도 없이 이어진 연으로 한 인간의 생이 출발한다.


가족구성원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특히 부모가 자식에게 끼치는 영향은 한 간의 생에 평생 동안 주홍글씨가 되기 마련이다. 인간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발달된다. 유년기에는 인간관계가 가족에 한정되기 특히 부모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고 식구에게 사회성을 익힌다. 유치원, 초등학교등의 장소는 소년기에 타자를 만나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곳이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사회성은 발달되고 개인은 새로운 인연을 점차 개척해 나간다. 친구, 직장생활, 연애, 결혼, 자영업 혹은 사업. 일과 사랑도 타자와의 인연이 과정이 되고 결과가 된다. 인간관계 즉 인연은 개인의 일생에 중대한 길을 무수히 만들며 생의 길을 내며 삶을 질주한다.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하면 식구 구성원이 달라진다. 식구라는 말은 한자로 먹을 식자에 입구로 한집에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말한다. 결혼을 하거나 자녀를 낳는다는 건 가족 구성원이 변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결혼과 이혼, 합가를 통해 식구가 달라졌다.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고, 20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23살에 아이가 생기며 남편과 셋이 되었고, 시어머니를 모시며 넷이 되었다. 이혼으로 아이와 둘이 되고, 작은언니와 함께 살며 다시 셋이 되었다. 이후 엄마와 합가 하며 일곱이 되었다가 조카 둘이 더 와서 아홉이 되었고 다시 일곱이 되었다. 일곱 식구의 일상이 5년이 지났다.


가장으로 살면서 차츰 쌓였던 부담감은 점점 나를 위협했다. 한 번씩 폭발하는 엄마의 감정기복은 팔닥거리며 움직이는 내 심장 안 어느 편에 독으로 쌓였다. 힘들다고 느껴지는 감정을 해소할 방법은 사람뿐이 없었다. 영업을 하면서 더욱 친밀하게 지내게 된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영과 심은 휴식이 되어주었다. 가족들에게 말 못 하는 아픔에 대해 친구들에게 털어놓으며 마음을 달랬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것보다 다소 거리를 두는 것이 숨구멍이 되었다. 직업을 보험영업으로 바꾸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을 만나야 일이 되었기에 누구라도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지냈다. 갑과 을이라는 관계가 명확한 업무특성에 일이 주는 피로감도 있었다. 일과 사람에 지친고 돈에 쫓기는 나에게 친구들은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삼십 대엔 나를 발전시키려고 무엇이든 했다.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면서 대학공부와 자격증 공부에 열성을 다했다. 일찍 집에 가는 게 싫기도 했다. 늦게까지 일하면 돈이 더 벌렸고 공부하는 대로 성적이 나왔다. 열심히 했을 때 결과가 나오는 일과 공부가 좋았다. 연애, 친구, 가족 인간관계는 일이나 공부보다 훨씬 복잡했다. 하루 24시간에 시간을 쪼개며 스케줄대로 움직였다. 간혹 일이 일찍 끝나서 집에 가면 마음이 불편했다. 가족과 집은 안식처가 아닌 짐과 늪으로 느껴졌다.


벗어나고 싶었다. 두 집 살림이 무리가 된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심장 한편에 쌓였던 독이 점점 숨 쉬는 걸 힘들게 만들었다. 이대로 살다가 숨이 멎을 것 같은 생각이 지옥에 머물렀을 즈음 분가를 결심했다. 아들은 엄마집에 두고 인천 삼산동 원룸형 아파트에 월세집을 얻었다. 혼자 살게 되면서 집이라는 공간이 쉴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주말에 집에서 책 읽고 낮잠도 자고 빈둥거리며 마음 편하게 쉴 수 있었다. 내 공간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생활비가 이중으로 들었지만 마음의 평안이 최우선이었다. 내 아들이 내 엄마와 함께 살고 있으니 오정동집의 생활비를 내는 것은 당연했다.


혼자 살면서 일로 사람을 만나는 것만 아니라 유흥을 위한 모임도 나갔다. 인터넷 카페에는 싱글들을 위한 모임이 즐비했다. 그곳엔 새롭고 신기한 일들이 많았다. 처음 해보는 즐거운 경험을 했다. 호텔에서 파티도 하고 게임도 하며 새로운 사람들과 여행도 했다. 일을 떠나 쉼의 모임을 찾은 3,40대 사람들이 그곳에 무수히 많았다. 그들의 일상은 내 것과는 결이 달라 보였다. 나 또한 그들처럼 신세계로 자유롭게 살고 있었다. 온라인 카페공간에서 글로 소통하고 오프모임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SNS에 기록하는 특별난 그들의 일상들은 참으로 멋졌다. 특히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글 중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글을 찾아보게 되었다. 글을 볼수록 중학생 때부터 하고 싶었던 유럽여행에 대한 염원이 강해졌다. 자금계획을 세우고 인터넷 쇼핑을 하듯 충동적으로 예약해 버렸다. 자유여행에 대한 지식도 없이 무려 유럽여행 한 달짜리를 선택했다. 출국일자가 다가오고 그제야 다소 걱정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버킷리스트로 새해에 쓰는 10년 계획에 쓰였던 것 중 하나가 유럽여행이었다. 20년 이상 매번 쓰던 소망, 꿈의 여행지, 상상 속에만 있던 미지의 여행이었다. 두려움 따위는 뒤로한 채 일정을 체크했다.


돈, 일, 집 모든 것이 순조로운 건 하나도 없었다. 여행비는 1천만 원 정도 필요했다. 그리고 한 달 생활비인 400만 원 이상의 돈도 필요했다. 영업직이었으나 팀장이었기 때문에 한 달간의 부재는 용납되지 않았다. 지점장님을 찾아가서 팀장자리를 내려놓고 여행계획을 말씀드렸다. 한 달 동안 24개 도시를 만나게 된다. 런던으로 들어가서 브뤼셀, 브뤼헤, 암스테르담, 뮌헨, 짤츠부르크, 프라하, 빈, 부다페스트, 베니스, 밀라노, 피렌체, 로마, 바티칸, 나폴리, 폼페이, 포지타나노, 인터라켄, 루체른, 취리히,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톨레도, 파리 한 달 동안 다닐 도시이름은 내 평생 책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봤던 저 너머의 세계였다.


유럽여행 이후 나는 나 자신에 집중했다. 행복하게 사는 건 어떤 것일까? 한 번뿐인 인생을 알록달록 예쁘게 만들고 싶었다. 만족,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지인으로 알고 지냈던 은0 언니를 만났다. 은0언니는 성형을 하고 성형외과 병원 상담 실장으로 취직한 상태였다. 은 0 언니와 수다시간을 가졌는데 나에게 인상을 바꿔야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을 하며 설득했다. 인생이 달라진다니 그 말은 강력한 유혹이었다. 강한 인상을 유하게 만들라는 언니의 조언을 따랐다. 아뿔싸!!! 그때 수술받으며 아주 큰 실수를 했다. 예쁘게 해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인상 좋게 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젠장, 성형미인이 못되고 성형인이 되었다. 


수개월이 지나고 인터넷 모임 한 곳에서 동갑내기 남자와 사귀게 되었다. 그는 바른생활 사나이였다. 자전거로 전국여행을 다녀올 만큼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느껴졌다. 이혼했고 자녀는 없는 그는 이혼사유가 돈 때문이라고 했다.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려야 해서 그 문제로 자주 싸웠고 그 때문에 이혼했다고 했다. 그의 엄마를 보러 갔는데 어머님은 인자하시고 인상이 참 좋았다. 연약해 보이는 어머니는 내가 먼저 챙겨주고 싶은 분이었다. 그와 사귄 지 5개월이 안되었을 즈음 나는 그와 혼인신고를 했다. 그와 함께 가정을 꾸리고 안정되고 싶었다. 결혼을 하면 친정집으로부터 독립도 가능해질 터였다. 부담이 되고 버거운 엄마와 이별하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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