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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하늘 Feb 28. 2024

4) 사는(생활하는) 집 VS 사야 하는(돈 되는) 집

집의 의미

4) 사는(생활하는) 집 VS 사야 하는(돈이 되는 집)


2000년에 내 집마련을 하기 위해 청약저축을 가입했다. 그리고 주택공사 홈페이지를 매주 확인했다. 예전에는 임대아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주택공사가 유일한 창구였으나 지금은 다양해졌다. LH임대주택, SH임대주택, 공공임대주택등 필요에 따라 임대주택을 선택할 수 있다. 2002년에 임대주택은 5년 이후 분양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 10년 전부터 5년뿐 아니라 30년 장기 임대아파트의 기회도 많아졌다. 소유라는 개념은 아니더라도 저렴한 주택을 소비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다. 이전의 나의 경험은 지금의 솔루션이 된다고 말할 수 없다. 현재는 늘 당시의 세금, 복지정책, 이자, 경제흐름을 고려해야 한다.


2000년부터 꾸준하게 임대주택계획공시를 알아보면서 청약저축 기간이 24개월이 되었다. 저축기간이 24개월이 되면 1순위청약권자가 된다. 물론 권리순위가 올라가는 항목은 다양하다. 무주택세대주 기간, 자녀 수, 부양가족 수, 신혼부부혜택, 소득기준, 특별혜택자 등에 따라 청약순위가 올라간다. 나는 자녀가 한 명일 때 2003년에 청약에 참여했다. 부천 오정구 임대아파트였고 당시만 해도 뜨거운 열기까지는 없었다. 그런데도 1차에는 낙방했다. 추가 예비자 명단에 포함되었고 운이 좋게 당첨됐다. 당시 계약금 700여 만원이 필요했다. 1차 입주자는 호수를 개인이 선택할 수 없고 랜덤이었다. 추가 합격하면서 남아있는 세대를 선택할 수 있었고 15층 짜리 아파트에 9층을 선택했다.


청약에 입찰한 후 방 두 칸짜리 전셋집을 얻었다. 아들방이 될 줄 알았던 방은 시어머님을 모시고 오면서 어머님께 내어주었다. 6개월을 더 살다가 시어머님이 이상하다고 느꼈고 검사 후 장애진단을 받았다. 정신지체 2급. 그리고 다시 2년이 지나서 아파트가 완공됐다. 임대아파트에 시어머님은 함께 입성하지 못했다. 2년 넘게 함께 살았지만 지병으로 쓰러지셨고 병원신세를 지게 되셨다. 당뇨가 심한 어머님은 1차 쓰러지셨을 때 기적적으로 살아나셨다. 그러나 퇴원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두 번째로 쓰러지셨다. 그리고 다시는 병원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옮겨졌고 이후 거동을 전혀 못하게 되면서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임대아파트로 이사 들어오고 불과 2개월 만에 남편이 다시 집을 나갔다. 그리고 몇 개월 동안 조율 끝에 이혼했다. 어렵게 얻은 임대아파트에 나와 아들만 남았다. 아들을 케어하는데 작은언니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작은언니도 혼자 살고 있을 때라서 우린 합가를 했다. 그리고 6개월 정도 후에 친정엄마와 오빠, 조카(오빠의 아이 둘)와 다시 합가를 했다. 임대아파트에 가족이 늘었다. 3명이 살 때는 여유롭였던 24평 아파트 공간이 일곱이 되자 북적거렸다. 사는 집으로서의 24평 아파트는 아무리 식구가 늘었다고 해도 이전집에 비하면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많은 식구가 있는 만큼 생활비도 많이 필요했다. 이전만큼 저축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미래를 위해 투자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혼 후 2년이 지나고 나서 처음으로 종잣돈을 만들었다. 3천만 원 정도가 모였다. 이후 가족이 더 늘게 되면서 저축여력이 줄게 되었다. 10년 이상 일하면서 매달 생활비, 빚을 갚느라 돈을 모을 수 없었다. 어렵게 모은 첫 종잣돈에 리스크를 감수할 순 없었다. 최대한 안전한 자산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살고 있던 동내 부천에서 3천만 원으로 안전한 부동산에 투자할 만한 물건은 없었다. 지역을 넓혔다. 지역을 넓힐 때 사용한 방법은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했다. 친구, 지인, 고객들의 집에 방문할 때 주택동향을 물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동내에 관심이 있었다. 소식은 동내주민에게 듣고 짬을 내서 인근부동산사무실 두세 곳을 방문했다.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사장님들과 인사도 하고 사장님들 중 나와 이야기가 가장 잘되는 사장님께 지역소식과 매물사항을 들었다.


안산 초지동 15평 원룸형 아파트는 당시 그지역에서 가장 저렴했다. 아파트는 7천만 원이고 전세는 5천만 원이 시세였다. 만약 그 집을 살 경우 취득세등을 포함해서 25백만 원 정도의 투자금이 소요된다. 주변지역 임대상황을 확인해 보니 전세가 귀하다는 걸 알게 됐다. 안산은 공장이 많고 일인가구가 많아서 월세도 물건이 부족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빌라도 전세가 귀한데 아파트는 말할 것도 없었다. 주택시세도 빌라에 비해 아파트가 오히려 저렴했다. 15평은 규모가 작은 아파트로 투자대상으로는 비인기 품목이었다. 반면 아파트 전세는 귀한 물건대접을 받았다. 부동산 사장님도 전세가 안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다방면으로 조사한 후 결정했다. 첫 투자로 집을 사기로 했다. 그런데 나는 임대아파트 소유주로 무주택세대주를 유지해야 했다. 살고 있는 집은 5년 후 분양받아야 했고 조건이 무주택자여야 소유권으로 전환할 수 있다. 작은언니와 상의 한 끝에 작은언니 명의로 아파트를 매수했다. 2년마다 전세만기가 다가왔고 2년 후에 1천만 원 이상의 전세금을 올려 받았다. 2천5백만 원을 투자해서 6년 동안 번돈은 5천만 원이었다. 언니는 그 기간 동안 무주택자로 1세대 1 주택이었기 때문에 양도소득세는 면세를 받았다.


살고 있던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후 5년이 지났고 소유권을 받았다. 처음으로 24평 아파트 소유권자가 되었다. 살고 있는 집이 내 명의의 집이라는 건 새삼 새로운 일이었다. 매월임대료를 주택공사에 내는 것과 담보대출 원리금을 은행에 내는 건 어쩌면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마음가짐이 달랐다. 당시 집을 산 가격은 1억 5천만 원 정도였고 5년 동안 시세가 올라서 시세차익이 생겼다. 집은 사는 공간으로 만족할 것인지 투자라는 개념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선택 기준을 달리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가장 큰돈이 투자되는 주택에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었다. 여유돈을 낼 수 있다면 사는(생활하는) 곳(사고 싶는) 투자를 달리해도 좋다. 적은 돈으로 투자와 생활을 병행하려면 여러 가지를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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