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existing.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이신 김영민 선생님의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2018, 어크로스)에 이런 일화가 나온다. 미국 대학 교수 시절, 학생이 "How are you?" 하고 물어보면 그 분은 동양의 신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Just existing." 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냥 존재할 뿐이라는 그 분의 말은 농담이었지만, 그 말의 뉘앙스가 묘하게 변환되어 빈폴 자전거처럼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그냥 존재한다' 이 얼마나 쉬우면서도 어려우면서도 게으르면서도 사치스럽단 말인가.
누가 잘 있냐고 물어보면 잘 있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잘 자라고 말하면 잘 자야 할 것 같다. 좋은 아침이라고 외치면 좋은 아침이어야 할 것 같다. 좋은 꿈 꾸라고 하면 뭐라도 꿔야 할 것 같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참 좋겠지만 현실에선 대부분 잘 못 있고, 그저 그러면 다행이고, 잠자리에 누워 뒤척이고, 아침의 기분은 난장판이고, 험한 꿈에 시달려 피곤하다. 그 상황에서 잘 있냐고 스몰토크를 시도하는 사람에게 '실은 내가 잘 못 있는데, 왜 그런지는 내 얘기를 들어봐봐.'라고 안물안궁의 TMI로 받아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리하여, 사연이 너무 많아 찢어버린 편지처럼, '네, 잘 있어요.' 하고 동양의 신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꾸한다. 스몰토크는 스몰이어야 하기에. 나는 이 시대의 고독한 노동자이자 어엿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인이므로 비록 겉으로는 어엿하게 잘 있다고 답할지라도, 나 역시 누군가에게 스몰하게 잘 있느냐는 토크를 던질지라도, 내심으로는 다음과 같은 논지를 견지한다.
"전 그냥 있습니다."
그리하여 첫 글의 제목이 '그냥 있습니다'가 되었다는 구구절절한 이야기.
늘 뭔갈 하고 있어야만 할 것 같고, 그게 잘 돼야 하고, 어디에 속해야 하고, 어떤 그럴듯한 근황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오늘도 그냥 있기 위하여 이 글을 쓴다. 나를 포함한 나의 많은 것들이 그냥 적당히 있다는 것을 풀벌레 소리 정도의 데시벨로 알리기 위하여. 마찬가지로 어느 구석구석에 그냥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당신들이 그냥 있어줘서 이 세상이 잘 있다는 위무를 전하기 위하여. 찌르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