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 어른들도 다 사라질 테지만.
가족음악극 <전설의 놀이왕>을 보고 왔다. 진짜 재밌었다. 나 혼자 본 게 아까웠다. 애도 없는 싱글이 아무 아이도 동반하지 않고 아동극을 혼자 보러 간 것은, 그 작품을 쓰신 김하나 작가님과 2주 전에 지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분이 올해 극작가협회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은 그분의 부군이자 나의 희곡선생님이신 정범철 연출님으로부터 직접 전해 들었다. 그리하여 날이 아주 좋은 금요일 오후에 종로아이들극장으로 찾아간 것이다. 들어가자마자 문화충격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들극장엔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아동극은 처음 관람함) 뭐야, 관객이 다 애야! 심지어 내 자리도 어느 애기들이 차지하고 있길래 앉아도 되냐고 물어보고 그 아이들이 비켜줘서 같이 껴 앉았다. 와하하하.
내가 여태껏 봐온 연극의 관객들은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착석한 상태로 최대한 조용하고 진지하게 공연을 기다린다. 극이 시작되면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커튼콜 전까진 거의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에게 관크를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의 관객들은 일단 가만히 앉아 있는 애가 없었다. 몸이 가만 있으면 입이라도 떠들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아이들의 보호자들이었다. 그리고 일행 없는 나. 극이 시작하기 전부터 왁자한데 안내방송에서부터 박수와 호응은 얼마든지 허용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모든 관크를 허하노라. 나는 이렇게 시끌벅적하고 박수가 난무하는 공연은 처음 봤다. 헐. 이게 맞다니. 중간중간 무대전환을 위해 음악이 나올 때조차 얘들은 박수를 물개처럼 친다. 극의 흐름에 대해 마구 코멘트를 한다. 조금만 웃겨도 사정없이 웃어제낀다. 극 속으로 어떤 심해어보다도 더 깊이 들어간다. 배우들이 어디 숨으면 술래가 된 배우에게 저기 있어요, 바로 뒤에 있어요! 하면서 일급 정보를 막 발설하는데 술래는 최대한 그것을 모르는 척한다. 이런 스포일러가 맞다니. 너무나 신선한 경험에 내 입이 귀에 걸렸다. 나는 이 모든 분위기와 흐름이 하나도 빠짐없이 마음에 들었다. 이 속에 내가 있는 게 좀 행복할 지경이었다.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가 너무 좋아서이기도 했다. 맹세컨대 한 시간 내내 입을 귀에 걸고 있었던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뭐, 기억하기로는)
그러다 울었다. 저렇게 놀기 좋아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거나, 그동안 자녀들을 학교다 학원이다 바쁘게 내몰았던 보호자들이 이 공연을 보다 종종 운다고 한다. 근데 나는 왜 우냐. 난 애도 없고 조카도 없고 싱글인데. 자녀를 동반하고 온 보호자들 중 몇몇이 눈물을 훔치는 걸 보고서야 나 혼자 우는 건 아니구나 안심이 됐는데 나 왜 우냐. 지금 굳이굳이 생각을 쥐어짜보자면, 아동극과 아동관객의 순수함에 좀 감명받은 듯했다. 아니 그렇게까지 재미있어? 그렇게 몰입할 일이야? 그 생각을 하니 그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이 신기하게 와닿았다고나 할까보다 그냥.
그러다 씁쓸해졌다. 저렇게 순수하고 천진난만하던 아이들은 자라서 어엿한 어른이 된다. 어느 것에도 쉽사리 감동하지 않고 울지 않고 몰입하지 않는.
지금 이 공연이 허구라는 걸 알고, 저 배우가 뒤에 숨은 배우를 모른 척한다는 걸 알고, 연극이 끝나고 나면 배우들은 컬러풀한 의상을 벗고 무채색의 옷을 입고서 집으로 가는 차 안에 무표정하게 몸을 싣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은 서서히 버려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고, 더이상 아동극을 보러 오지 않는.
저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은 대체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아이들은 몸이 자라면서 아이의 외적 형태가 사라진다. 그와 함께 아이의 마음도 사라진다. 그 자리엔 어른의 몸과 마음이 남는다. 사회의 규율과 규칙을 걸치고 최선을 다해 어른의 세계에 자기 몸과 마음을 맞춘다. 그것을 성장과 성숙이라고 부른다. 물론 그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영원히 자라지 않는 어린 아이 이야기는 결국 비극이다. 근데 너무 궁금한 거다. 나는 어릴 때 언제 어린 아이를 버리고 지금의 나를 남긴 걸까. 오늘의 관객들도 결국은 어른으로 자라겠지. 저 아이들이 자라서 어떻게 나같은 어른이 돼버리는 걸까. 아이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