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무서워지는 유월
4월에는 이사 때문에 너무 정신없고 괴로워서 아, 눈 감았다 뜨면 5월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저 이사만 무사히 하면 모든 게 진정될 줄 알았던, 한 치 앞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의 대책없는 나이브함으로. 근데 뭐 대책이 있어도 지가 뭐 어쩔 건데 지 뜻대로 되는 거 하나 없는 인간의 스탠스가 별 거 있겠나. 그냥 당하면 당하는 대로 사는 거지.
드디어 5월이었다. 아, 나는 무사히 이사를 했으니 이제 다 끝났어. 더 이상은 뭘 정리할 일도 돈 빚질 일도 어디다 연락할 일도 없어. 그랬는데 갑자기 입원하게 되었다. 조직검사 했는데 위험한 건 아니지만 수술을 해야겠다며 당장 다음주에 2박 3일. 음.. 그래요. 그러자면 그래야지요. 제가 뭐 별 수 있겠나요. 병원에서 삼시세끼 받아먹고 건강해지고 보험금도 나오니 좋았지만, 전신마취는 깨고 나면 고생스럽다. 수술하는 동안 폐로 숨쉬지 않았기 때문에 폐가 쪼그라들어서 깨어나면 몇 시간 동안 심호흡을 의식적으로 계속해야 되는데, 네 시간여를 물도 못 먹게 하는 상태에서 심호흡 계속 하는 게 힘들다. 그리고 열이 오른다. 다행히 38도 직전에 멈췄지만. 전신마취가 생각보다 몸 상태를 힘들게 한다고 의사쌤이 그러시더라. 네 알아요 세번째인걸요ㅠ 게다가 이놈의 수술용 대바늘 링거ㅠㅠ 어릴 때 처음 꽂아봤을 때 울었다 너무 아파서. 지금도 울고 싶은데 어른이라 못 욺. 바늘 꽂은 내내 아프고 심지어 수술한 데보다 거기가 더 아프다. 수술 자리는 일반 진통제만 맞고도 괜찮을 만큼 아무렇지 않아서 사실 난 환자 축에도 못 꼈는데(옆자리에 암환자가 계셔서 명함도 못 내밂) 그 링거를 달고 화장실이나 편의점을 왔다갔다 하면 내가 그렇게 환자 같은 거다. 그것도 되게 아픈 환자. 바늘이 아니라 구멍 수준이라 아직까지도 손등에 흉터가 남아 있다. 처음, 수술할 때 떼어내서, 그러고 나서 정밀하게 또 한 번 더, 조직검사는 총 세 번을 했다. 그랬는데 암 아니야! 라고 발랄하게 말씀하시던 할부지 의사쌤 톤이 귓가에 남아있다. 할부지, 청라 사시는 할부지, 최근에 저처럼 집주인이 집 파셔서 이사하신 할부지, 할부지도 물론 더 오래 사시겠지만 저도 할부지 나이만큼 오래 살게요. 병원도 빨리 빨리 댕기면서.
퇴원하는 날 새 차가 나왔다. 정확히 1년 만에. 지금 나올 줄은 몰라서, 차할부금에 취등록세 해결하고 나니 안 그래도 거대빚쟁이였는데 초거대거지가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저 채무를 다 변제할지 진짜로 대책없는 인간이 되었다. 뭐 그래도 차 나온 건 좋았다. 마침 이제 막 공연 연습이 시작되는데, 송도에서 대학로까지 왕복 4시간을 어떻게 지하철로 다니겠어요ㅠ 내가 대학로에 다니는 사람이 될 줄 꿈에도 몰라서, 그게 심히 유감스럽다.
첫연습이 시작되었다. 이미 낭독극을 한 공연이어도 1년 지난 뒤에 다시 보니 고칠 부분이 상당했다. 그 대본을 처음 만들 때 몇 달 간 개고생 했던 작년 여름이 생각난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 몇 주간 탄산수에 꿀 타서 그것만 먹었다. 그러다 지겨우면 포카리스웨트. 막판엔 한 4일 내내 밤을 새웠고, 마감날은 레드불을 3캔인가 마셔서 속이 타들어가는데도 잠은 오고, 그렇게 대본을 넘기고 나서도 연습하면서 수정을 매일 했다. 그랬는데 또 고치다니. 글쓰기의 세계란ㅎㅎ '천재란 고통을 감내하는 무한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라는 토머스 칼라일의 말을 매일 떠올렸다. 음.. 그래서 내가 천재가 아닌 거야.
6월이 시작되었다. 이번달 계획에 의하면 나는 헤르미온느가 되어 시간을 되돌리면서 살아야 한다. 지금 공연 대본 고치고, 다른 공모에 낼 대본 쓰고, 또 다른 공모에 낼 대본 수정하고, 방송통신대 기말고사 공부하고, 와중에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일은 계속 빡세게 하고. 6월이 무섭다. 눈 감았다 뜨면 7월이었으면 좋겠다.
7월은 더 무서우려나.
ㅎㅎㅎㅎㅎ
여기가 바닥인가 싶었는데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걸 깨달았을 때 심장도 덜컹 내려앉던 5월이 어찌저찌 지났는데, 인생은 지하 몇 층까지 있는지를 모르니까 개설레 제기랄. 설계도를 보여다오. 아니면 건축사를 고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