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만 살면 돼
나는 마을 한글학교에서 한글 공부만 가르치지 않는다. 때론 미술 수업도 하고 글짓기, 웰다잉, 노인 인권에 대해서도 수업한다. 그리고 특히 나머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래야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음을 말씀드린다.
오늘은 수업 종료 전 5분을 2018년에 내가 쓴 독후감을 읽어드리는 것으로 마쳤다. 말로 하는 것보다 좋은 예시가 될 것 같아서다.
-이 글은 대통령기 제38회 독서경진대회에 응모해 충남도 최우수상을 받음-
꼴까닥 약
나는 2시간 수업을 위해 왕복 2시간 걸리는 오지로 어르신들에게 초등부 과정을 가르치러 다닌다. 70세 ~ 80대 어르신이 대부분이고 91세 되신 분도 있다. 그분 중에 81세 되신 분이 내게 주신 이 책(2% 다른 길)을 읽게 되었다.
“선생님이 이 먼 곳까지 와서 글을 가르쳐 주셔서 고맙다고 우리 며느리가 선생님 드리래유.”
이런 감사의 마음이 듬뿍 담긴 이 책은 약사인 심명희 봉사자가 봉사하며 만난 사람들의 생생한 체험을 쓴 책이다. 빈곤과 고통 인생의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사람들,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자신의 목소리조차 못 내는 부서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내가 60이 넘어서 일까? 뇌졸중으로 1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일까? 김 할머니 이야기가 가슴과 머리에 박혀 떠나질 않는다.
“약사 양반 나 먹고 꼴까닥 가는 약 좀 줘.”
“그런 약은 없어요.”
“에이 그러지 말고 한 알만 줘. 내가 오죽하면 그러겠어.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 그러지 말고 한 알만 줘.”
여의도 한가운데 높은 빌딩 숲 속에 낡고 어두컴컴한 건물 5층에 월 40만 원인 요양원에 계시는 김 할머니 말씀이다. 김 할머니 4형제가 약국에 와서 옥신각신 한 것은 1년 전이다.
“아버지 명의로 된 시골집에서 받은 월세도 정산하자.”
“형이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김 할머니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만 푹 숙이고 저만치 앉아만 있다.
두 살 터울 4형제의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나 젊은 나이에 혼자된 할머니는 인천에서 생선과 야채를 떠다가 머리에 이고 새벽 버스를 타고 서울의 재래시장에 오면 막 동이 트기 시작했다. 시장 모퉁이에 좌판을 펴고 마늘을 까고 나물을 다듬고 새우젓을 팔았다. 1년에 단 이틀만 쉬었다. 추석과 설날을 빼고는 쉬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4형제를 키운 것이다.
네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할 때는 신문 배달하며 서로 학비를 보태고 외환위기 때도 서로 생활비도 건넬 정도로 우애가 있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혼자 살던 어머니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자 누가 어머니를 모시느냐의 문제로 싹이 튼 불화는 어머니의 빌라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로 시작되었다.
“어머니 재산이니 어머니 뜻대로 지체 장애가 있는 셋째에게 상속하자.”
“어머니 명의지만 실제로는 내 돈으로 장만한 집.”이라며 둘째가 장부를 내밀었다. 격론 끝에 공동명의로 하고 이번엔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 전세금 때문에 법정으로 갔다. 공유물 분할 및 건물명도 소송, 임차금 반환 소송, 임차 보증금 반환 소송 소송만 3건으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결국 첫째가 할머니 아파트 전세금을 가져가고 할머니를 책임 부양하기로 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이 40만 원인 요양원에 오게 된 것이다.
아무리 우애가 좋아도 치매 걸린 어머니를 모시는 문제로 소송까지 하는 시대가 지금의 우리 현실이다.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가출하셨다. 며칠 후 큰아들에게 끌려오셨다. 큰아들은 요양원 직원에게
“이렇게 가족을 신경 쓰이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노인 관리 잘하세요.”
짜증 섞인 타박을 하고 갔다. 그 후로도 할머니는 두 번이나 가출하셨다.
1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정신은 좋으신데 화장실을 가려면 도착 전에 다 새 버려 옷을 버리게 되니 기저귀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때 어머니는 엄청나게 힘들어하셨다.
“창문으로 뛰어내려 죽으려 해 보니 그도 몸이 말을 안 들어 못 했다.”
“안 먹으면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밥을 3일 동안 안 먹었더니 머리가 빙빙 돌아 어지러워서 밥을 먹었다.”
하시던 말씀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리고 아프다. 아들에겐 그런 말을 못 하시고는 딸만 보면 혼자 걸을 수 없는 당신을 슬퍼하셨다.
김 할머니는 온전한 정신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 약국에서 꼴까닥 약을 찾고 가출했을 것이다. 꼴까닥 약을 찾던 할머니가 약국에 안 오시자 약사가 요양원 직원에게 전화하니 할머니는 식음을 전폐하다가 돌아가셨다 한다. 작정하고 곡기를 끊었을 것이다.
약국에서 꼴까닥 약을 달라던 그 심정, 그것은 바로 살아야 할 의미가 없다는 것, 더 살아서 무엇할까?라는 절망감 때문이리라. 그 누가 저렇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나이 들면 돈이 있어도 문제이고 돈이 없어도 문제다. 그래도 나이 들수록 돈은 있어야 한다. 재산이 있어도 김 할머니처럼 되면 안 된다. 정신이 온전할 때 유언장을 써 놓을 필요가 있다
.
지금은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시대가 이미 와버렸다. 그래서 유언장은 꼭 필요하다. 내가 거동을 못하게 되거나 치매에 걸리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 그 비용의 지불 방법과 남는 재산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서류로 작성해 놓아야 저렇게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유언장은 두 장을 쓰면 좋을 것이다. 한 장은 재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한 장은 남은 가족들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는 내용을 쓰면 좋겠다. 김 할머니가 약국에 와서 꼴까닥 약을 찾던 마음을 생각하며 생의 막바지에서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베풀고 나누고 가족에게 마지막 모습이 어떻게 남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준 이 책은 나를 정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선물해 주신 어르신과 며느님께도 감사하다.
“잘 들으셨나요? 여러분들은 지금 처럼만 사시면 잘 사시는 겁니다. 그래도 이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셔요. 나의 생각을 다음 시간에 말씀해 주세요. 숙제 하나 추가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