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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Aug 10. 2023

나의 홋카이도 기억

코로나 후 오랜만의 여행일지

홋카이도는 일본의 네 개의 섬 중 하나로 가장 북쪽의 섬이다. 홋카이도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는데, 16세기에 일본인들이 들어가기 시작해서 17세기부터 일본인들이 이주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메이지유신 이후에는 결국 일본에 소속되었고 본토인이었던 아이누족은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홋카이도는 세계에서는 21번째로 큰 섬으로 크기는 남한면적의 80% 정도인데 인구는 500만 정도가 산다고 하니 숫자만 보아도 이 섬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위키백과 참조) “나 홋카이도 다녀왔어.”라고 하면 마치 한 도시를 다녀온 듯 하지만 실상은 “나 한국 다녀왔어”와 비슷한 느낌인 거다.

삿포로 맥주 박물관


이 큰 섬을 이번 여행으로 다 볼 수는 없으니 근처에 위치한 삿포로, 아사히카와, 오타루 세 도시를 돌아보기로 했다. 사실 삿포로는 주로 시내 구경 및 쇼핑이 주였으므로 오타루와 아사히카와가 주요 관광일정이었다. 오타루시는 삿포로에서 JR열차를 타고 30-40분이면 갈 수 있고 증기 시계탑과 오르골당이 유명한 곳이다. 운 좋게도 증기 시계탑이 울리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소리 만으로도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오타루의 오르골당은 100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온갖 종류의 오르골이 판매되고 있고 오르골 소리도 좋았지만 디자인이 아름다워 구경할 만했다.



오타루 역


오타루 관광은 주로 상점을 돌아보는 일이었는데 일본스러운 상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유리공예도 유명한지 유리공예 가게가 여럿 있었다. 아기자기한 공예품들이 우리 집 여자아이들의 눈길을 붙잡아 친구들 선물이다 뭐다 하며 본인들 용돈을 탕진하게 하였다. 막내는 원래도 예쁜 것만 보면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인데 당당하게 나에게 돈을 빌려 본인의 욕구를 충족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자신이 산 유리 공예품을 손에서 놓지 않아 ‘그러면 깨진다.’를 수도 없이 말하게 하였지만 속으로는 ‘저게 그렇게 마음에 드나? 잘 샀네’ 하며 웃었다.







오타루 낭만관(유리공예점)


예쁜 상점들을 구경하다 만난 운하는 반가웠다. 오타루의 건물은 단정하고 깔끔하며 조용한 느낌을 주었는데 운하마저도 그랬다.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의 물줄기가 도시를 가로지르는 모습이 유럽을 닮은 느낌이면서도 일본스러웠다. 예쁜 가게들을 구경하느라 아픈 다리를 쉬어가게 한 운하의 벤치에 앉아 일본에는 있고 우리는 없는 것이 무엇이었나 생각해 보았다. 아무것도 없어 무언가를 세우기 바빴던 한국은 항상 급하고 서두르는 느낌으로 건물마저 여유가 없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일본의 이런 여유로운 느낌이 부러웠고 이런 게 일본스럽다고 느껴졌다. 지금은 우리도 건물의 미학을 중요시 여기지만 아직 여유로움은 조금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타루 운하

사실 일본은 경제적인 면에서는 우리나라보다도 위기를 맞고 있지만 한때 경제 대국이었던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여유가 있다. 그리고 각자의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모습이다. 홋카이도에 와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은 호텔이든 상점이든 직원들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하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노령화를 보여주는 것이나 그것이 그렇게 나빠 보이지만은 않았다. 여유로운 웃음으로 손님을 맞으며 한껏 친절을 표하는 어르신들의 손님 맏이는 편안했다. 나도 지금은 매일 은퇴하면 뭐 하며 놀지를 생각하지만 막상 저 나이가 되면 어떡하면 일을 계속할 수 있을를 고민하지 않을까? “일 있으면 좋지! 부럽구먼!” 하는 아버지에게 지금의 여유로움을 즐기시라 핀잔을 하며 나는 나중에 서점을 하나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 보면 나도 나이 들어 그냥 편안히 쉬지는 못할 것 같다.


예쁜 고래. 나도 한 마리 잡아왔다.

예쁜 쓰레기를 많이도 샀다며 투덜거리는 남편에게 짐을 들리고 숙소에 돌아와 짐 정리를 하며 '여행은 이런 예쁜 쓰레기 사는 재미지!' 하며 속으로 나의 과소비를 변명했다. 사실 일본은 겉으로는 자연주의 적이고 편안한 느낌인데 물건들을 보면 포장이 과하거나 소포장이 대부분이라서 속상할 때가 많다. 분리수거도 타는 것과 안타는 것만 구분해서 버리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다들 손수건을 들고 다니며 손을 씻는다. 거리는 담배꽁초 하나 없이 깨끗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질서를 잘 지키는 일본사람들이 한편으론 조금 답답하다. 모든 것을 매뉴얼대로 하는 이 국민들은 융통성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을까 싶다가도 언제든 융통성을 발휘하는 한국사람들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역시 중도가 중요하다. 일본이랑 한국을 좀 섞어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날 아사히카와는 큰딸이 좋아하는 동물원 구경이 메인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아사히야마 동물원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실망도 컸다. 이 동물원은 마치 우리나라의 80-90년대를 연상케 하는 곳이었다. 좋게 말하면 운치가 있어라고 할 수도 있고 오래된 동물원이니 그때는 정말 대단했겠다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건물은 낙후되었고 에어컨은 없어 더웠고 불편했다. 최첨단을 살고 있는 한국 사람여기에 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더워서 지친 북극곰

그나마 유명한 동물원 치고 많이 기다리지 않았고 오래된 것만 빼면 관리는 깨끗하게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동물을 소개하는 글들이 전부 자필로 쓰여 있었고 그림도 직접 그린 것들이어서 놀랐다. 환경미화 수준의 동물 소개 글들을 보며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이들은 일부러 이렇게 하는 것일까, 몰라서 이러는 것일까. 이런 식으로 예전의 방식까지 보존하려는 것 일가? 이런 방식이 다른 동물원과 차별점이라고 여기는 것인가? 한국사람의 눈에는 비효율적이기만 한 결과물들을 보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의 민낯이 조금은 불편했다.


직접 손으로 쓰고 붙인 설명들


동물원에서 제일 중요한 동물들의 컨디션은 좋았다. “애들만 아니면 동물원은 안 가야 하는데...”라는 이야기를 동생과 나누며 우리에 갇힌 불쌍한 동물들을 구경했다. 특이하게 늑대도 있었다. 이 동물원은 우리에 가둬두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동물원이라지만 철장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늑대가 불쌍했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을 이야기하면 가슴이 아려오는 것은 아마도 인간의 잔인함과 이기심으로 이어지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하마를 생전 처음 본 나


아직 어린아이들은 동물을 보는 것 자체로 들떠 있어 더운 줄도 모르고 하나도 빼먹지 않고 구경을 마쳤다. 몇 시간 뒤 모두 탈진상태가 되어 버렸지만 멜론을 먹고 라벤더를 보러 갈 생각에 다시 힘을 냈다. 동물원 관람을 끝내고 홋카이도에서 유명한 주황색 멜론을 먹고 도착한 팜토미타. 아직 라벤더가 활짝 피어있었다. 역시 꽃다. 동물원에서 지친 마음은 이미 다 씻겨 내려가고 아름다운 색들로 대체되어 언제 힘들었냐는 듯 서로 보며 웃었다. 누가 찍어도 아름다운 풍경들로 마음을 정화하고 그렇게 우리는 호텔로 향했다.


팜토미타


일본에서 빼먹을 수 없는 온천은 호텔스파로 대체하고 아버지 생신을 축하하며 다정하게 정을 나눈 식사자리와 산림욕을 즐길 수 있었던 호텔은 꽤 만족스러웠다. 다음날 호텔 주변을 산책하는데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도 있어 체험을 해 보았다. 나무 사이사이를 건너가는 활동이었는데 용기 있는 두 어린이 모두 무서워하지 않고 완하였다.

나무사이를 건너는 액티비티. 중간에 돌아갈 수 없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후라노스키장. 겨울이라면 스키를 탔겠지만 우리는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경치를 구경하였다. 꼭대기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온 노부부 그리고 학교 활동인지 등산을 왔는지 선생님과 아이들 여럿이 도시락을 먹으며 앉아 쉬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른 잠자리를 잡느라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유를 즐겼다. 겨울에 가족들과 스키 타는 모습을 상상하며 꼭 한 번은 겨울에 다시 오리라 마음먹으며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곤돌라 올랐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시원한 바람을 맞다


중간에 비도 왔고 예상보다 더웠던 여행이었지만 가족 모두 건강했고 많이 웃었고 편안했다. 어느 여행보다도 더 오래 기억하고 싶은 이번 홋카이도여행은 일본이 너무 좋아서라기보다 함께 한 사람들이 좋았고 그들과 행복한 기억을 공유했기 때문이리라. 어느 여행이든 누구와 무엇을 느끼냐에 따라 여행의 질은 달라진다. 고생을 진탕해도 돌아와서 웃을 수 있다면 좋은 여행일 것이고 결국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다. 일본은 우리에게 애증의 나라지만 이번 여행의 기억으로 언젠가 또 일본을 갈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평생 남을 소중한 기억이기를 바라며 '다음은 어디를 여행하지?' 하는 행복한 고민을 이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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