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과 두피에 지루성피부염과 모낭염이 지속되는 환자들이 오면 나는 매번 생활습관이 어떤지를 묻는다. 술, 담배를 자주 하는 20대의 남자 환자, 수면시간이 일정치 않거나 수면시간이 짧은 사람들이 주로 피부 컨디션이 좋지 않다. 증상은 약 먹을 때 잠시 호전되었다가 약 끊으면 재발하기도 쉽다.
어느 날 한 환자 얼굴에 생긴 고름을 짜내며 술담배 끊으실 생각이 없는지를 물었다. 그때는 대답도 않던 그가 한 달 뒤에 다시 찾아왔다. 나는 다시 술과 담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말했다.
“원장님 전에도 저한테 그 말씀하셔서 제가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10일 정도 담배를 끊었는데 너무 예민해져서 다시 피우기 시작했어요. 술은 좀 줄였는데 담배는 못 끊을 것 같아요.”
그래도 집에 가서 내가 한 이야기를 생각해 보고 시도했다는 점이 훌륭했다. 비록 담배를 못 끊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칭찬해 줄만 했다. 하지만 지지 않고 덧붙였다. 몇 십 년 뒤 건강검진 할 때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흡연 기간이 평생 후회 될 수도 있다고. 너무 가혹한 이야기였나 하면서도 내 말이 조금은 그에게 영향을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내 이야기는 그저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고름을 짜내며 내가 투덜댔다.
“젊은 사람들은 말해도 안 듣는다니까요. 나이 들면 후회할 거면서... 언제 말 들으실 거예요...”
다행히 속상해하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이제 말 들을 때도 되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내 투덜거림을 농담처럼 받아준 환자가 고마웠다.
그에게 한 이야기는 자신의 몸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그리고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나도 20대 때는 그랬다. 공부한다고 또는 놀기위해 잠을 줄였고 바쁘다며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웠고 인턴 때는 매일 컵라면을 먹었다.
아침형 인간이라 자부하며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즐겼으나 이제는 절대 새벽에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 너무 망가진 내 몸을 보며 '의사가 자기 몸 제일 못 돌본다는데 그게 나다' 하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짓는다. 아이들에게 자주 이야기한다. 규칙적인 생활의 중요성과 더불어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 삶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지언정, 내 시간은 무엇을 하며 살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니, 술이나 담배, 수면시간이나 식이는 본인이 조절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많은 환자를 만나다 보면 매번 같은 말을 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오늘도 지치지 않고 이야기한다.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합니다. 내 몸에 좋은 것을 주세요. 잠을 자고 내 몸을 쉬게 하세요.'
이렇게 하는 잔소리가 그들 삶에 무슨 도움이 되랴마는 그래도 지나가다 한번이라도 생각이 난다면 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잔소리를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