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생에도 나랑 결혼할 거야?
남편과의 애정행각
결혼한 지 12년 차가 넘어가니 남편과 내 삶을 구분하기가 힘들어진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서로의 삶이 자기 것인 양 이해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 말은 서로에 대한 애정이나 신혼 때의 달콤함 또한 줄었다는 뜻과도 통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애정이 줄었다는데도 아쉬움조차 없는 나의 감정이 씁쓸하기도 하다.
병원 회식 날 한 직원이 물었다. “원장님, 집에서 뽀뽀는 하세요?” 갑작스러운 물음에 당황했고 특별히 기억이 안나는 일이라 대답이 어려워 머뭇거렸다. 그리고 웃으며 “나도 뽀뽀하거든!” 하며 어색하게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집에 가서 생각해 보니 남편과 한 애정행각이 별로 기억나지 않았다. 서로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한지도 오래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아직 귀가전인 남편에게 톡을 했다.
‘오늘부터 우리 매일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자. 이건 의무야.’
‘ㅋㅋ그래.’
톡으로는 대답도 잘한다. 대답만 하고 사랑한다는 말은 꺼내지 않을 그였다.
'사랑한다고 먼저 말하는 것이 왜 이리 자존심이 상한 거지.'라고 생각하며 꺼낸 말,
“우리 남편, 사랑해.”
“ㅋㅋ나도”
저 ‘ㅋㅋ’은 좀 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하며, 와이프의 사랑한다는 고백에 ‘나도’라는 말로 얼버무리는 남편의 마음이 솔직히 이해되었다. 속으로는 ‘이 여자가 갑자기 왜 이러지. 내가 뭘 잘못했나. 뭘 부탁하려고 하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은 서로 애를 써가며 ‘사랑해’라는 말을 노력으로 이뤄냈고 자기 전에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서로의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사랑해.” “응, 나도"를 반복해 댔다.
그러다 일주일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랑해’라는 단어는 저 기억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던 남편이 갑자기 자기 전 물었다.
“자기, 다음생에 태어나면 나랑 결혼할 거야?”
사실 남편은 다음생에도 나랑 결혼한다고 이야기하고 다니는 남자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이 질문을 한건 처음이었다. 아마 나는 자기랑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 듣기 싫어 묻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선뜻 대답을 못하는 나의 주저함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자기, 왜 대답을 못해!”
“아니야, 나 다음생에도 당신이랑 결혼할 거야...”
“이미 늦었어! 쳇!”
다음생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왜 대답을 주저했을까.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유도 모른 채 배가 아프도록 웃고는 ‘그런 질문에 앞으로는 대답을 잘해주자’ 하며 서로에게 다짐을 했다.
어차피 이번생은 이 사람이랑 살아야 하고, 다짐을 한다고 다음생을 이 남자랑 살아야 할 의무도 없는데, 말이라도 '당연히 너랑 살 거야' 하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했다. 남편과 살며 생긴 상처에 집중하느라 좋은 추억은 기억해내지 못했던 건 아닌지. 서로에 대한 좋은 기억에 집중하고 서로를 아끼며 지내는 것이 현명할 것인데 그러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이 남자는 요즘 재미가 들렸는지 “자기, 나랑 다음 생애도 결혼할 거지?”라고 자주 묻는다.
‘지금이라도 당신과의 좋은 기억만 마음에 담아볼게. 다음생에도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나의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