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이것만? 50년 동안 그린 이유는?
https://youtu.be/63 azMpE-6C0? si=N2i_-_LV3 gdG-Fyl
안녕하세요, 여러분!
영화 속 숨은 인문학의 감동을 찾아가는 영화인문학 강사 박갑식입니다.
영화인문학 처음 들어보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박갑식의 영화인문학이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그 첫걸음으로 1편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로 여러분과 함께 여정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영화 속 한 장면, 한 대사 속에 담긴
깊은 삶의 의미를 함께 나누며,
당신의 시선이 조금 더 넓어지고
마음이 더 깊어지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부터 함께,
영화 속 인문학의 세계로 들어가 볼까요?
오늘 영화인문학으로 안내할 영화는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입니다.
고 김창열 화백님에 관한 영화입니다.
왜 그는 물방울 그림만 50년 동안 그렸을까요?
이유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영화 속 대사 한줄한줄 한 편의 시와 같고
에세이 같고 그 속에는 철학이 있고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근현대사를 관통한 김창열화백님의 인생이 있습니다.
그렇게 영화는 인문학과 만납니다.
화백님의 물방울 그림은 와~ 너무
진짜와 똑같아서 손을 대면톡~하고 터질 듯합니다.
"프랑스 평론가 알랭 보스케는
물방울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물방울들은 우리를 일종의 자기 변형으로 끌고 간다.""그 물방울들은 보기 드문 최면의 힘을 갖고 있다."
프랑스에 사셨을 때
김창열화백님 문패에는
물방울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무슈두뜨는 프랑스어로 (물방울]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무슈두뜨씨가 되었습니다.
그는 왜 이토록 평생 물방울에 집착했을까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물방울을 그리는 건 모든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다. 모든 악과 불안을 물로 지우는 거다.
내게 그림은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행위다.”
물방울을 그리게 된 근원은 무엇이었을까요?
“6.25 전쟁 중에 중학교 동창 120명 중 60명이 죽었다.”
“그 상흔은 총알 맞은 살갗의 구멍이라고 생각하며
물방울을 그렸다.” “근원은 거기였다”
그리고 그는 또 나는 많은 죽음을 보았습니다.
행군하던 전우 여럿이 폭격에 죽는 것을,
총알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것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죽지 못했습니다.
죽지 않았습니다.
“그때 난 비명을 지르거나 기도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김창열 화백님 조수로 있을 때
어느 순간 갑자기 “어억”하고 소리를 지르셨어
나한테 설명하시기를 갑자기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셨대
그렇게 갑자기 튀어나왔대
그래서 소리치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대
물방울 그림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요?
화백님은 떨리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파리에 정착한 첫해에.
참 많이 우울했었다.
어느 날, 한밤중에 깨어나서 무척 불안했는데
내 그림 중 하나를 뒤집어 놓았는데 물을 부었더니
셀 수 없이 많은 물방울들이 맺혔고 빛이 나면서 그림이 되었어 무척 놀라운 현상이었어
그래서 나 자신에게 말했지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
이렇게 많은 물방울을 그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영화의 감독이자 아들은 말합니다.
물방울을 하나 그리는 건 하나의 구상이지만 백개 또는 천 개의 물방울을 그리는 것은 계획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만 개, 십만 개 의 물방울을 그리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이런 종류의 예속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까?
-단순히 인내심이 필요한가 엄청난 야심일 수도 있을까 어쩌면 조금 미쳤을까
이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50년 동안 그려온 물방울의 진실을 찾아갑니다.
이 영화는 2014년 시작하여 2019년에 완성되었습니다.
감독은 멀리 떨어져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던 아버지를 자주 뵙고 평소 궁금하던 질문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작품을 기획했다고 합니다.
정작 작품이 진행되면서
부자라는 특별한 관계가 작품을 미화하거나 왜곡할 수 있다는 부담이 크게 다가왔는데 고심 끝에 오랫동안 공동작업으로
경험을 쌓아온 동료 브리지트 부이오가 공동감독으로
참여했습니다.
브리지트 부이 오는 오히려 아들로서만
묵도할 수 있는 순간과 이미지의 특별함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했다고 합니다.
김창열 화백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요?
조금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1929년 12월 24일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여긴 산과 물이 너무 아름다웠던 곳입니다.
삼촌에게 먼저 데생을 먼저 배운 후 화가가
되기로 합니다.
15세에 월남을 하게 되고
16세에 이쾌대 선생님이 운영하는 성북회화연구소에서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시작합니다.
검정고시로 서울대 미대를 입학하셨는데
2학년 때 6.25 전쟁이 터지면서 학업이 중단되고
제주에서 잠시경찰로 근무하고 1955년에는 교사 시험 합격하여 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를 잠시 하게 됩니다.
그리고 1957년에는
현대미술가 협회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하인두 박서보 선생님과 함께 활동합니다.
그리고 1950년대 후반
‘앵포르멜’이라는 새로운 미술을 한국미술계에 선보입니다.
앵포르멜은
프랑스에서 시작이 되었고
우연과 즉흥 그리고 내면의 감정을 격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중시한 추상미술 운동입니다.
전쟁 이후의 잔혹함과
불안감을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며
이런 운동을 기반으로
1961년 파리비엔날레에 참여하게 되면서
세계무대로 진출합니다.
1965년 스승이었던 김환기 화백의 추천으로
록펠러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뉴욕으로 건너가
판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합니다.
이때 작품은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겨진
‘제사’라는 시리즈를 선보이게 되는데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을 위한
진혼곡을 표현한 그런 작품들입니다.
거친 질감에 마치 총을 맞은 것 같은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뉴욕에서는 유행이 지났고
팝아트나 미니멀리즘 추상표현주의 같은
이런 새로운 미술들이 인기가 있었습니다.
현실은 너무 힘들었고
화백님은 새로운 형태의 미술을 다시
찾아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작품들은 곧 등장할
물방울 시리즈의 예고편 같은 그림인데
이 시기의 그림은 기하학적인 형태가 등장합니다.
그 당시 먹고살기 위해 취직했던
넥타이공장에서 넥타이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일을 했는데 그 넥타이를 연상시키게 작품입니다.
또 다른 그림은 흘러내리면서 유기적인 모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시기의 미술은
물방울 회화로
나아가는데 중요한
길잡이가 되어준 그런 미술입니다.
1969년 백남준의 눈에 띄어서
작가님은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되며
뉴욕에서 파리로
무대를 옮기게 됩니다.
여기서 정착을 하게 되고
다음 해에 아내 마르틴 질롱을 만나서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71년 드디어 우리가 알고 있는
물방울 그림이 처음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1973년에 파리에서 드디어 첫 개인전이
열리게 되며
1980년이 들어서면서 김창열화백은
천자문위에 물방울을 그려 넣습니다.
이렇게 회귀시리즈가 탄생하게 됩니다.
6.25 전쟁 때 잠시 제주에
머물 때 그에게 제주의 자연은 그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2016년에
그는 작품 200여 점을
기증하여 제주도에 그의 미술관이 만들어졌습니다.
아들이 찍은 아버지에 관한 이런 영화가
또 있을까요?
어떻게 50년이란
긴 시간 동안 물방울만 그리게 되었는지
아들은 질문의 답을 조심스럽게 찾아갑니다.
그의 역사 속 깊은 곳에… 난 알고 있었다.
평온한 노인의 가면뒤로 견고하고
위로할 수 없는
낯선 무언가가 절대로 드러나지도 않지만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그런데도 우리 사이에는 빈틈이 있다.
어떤 기묘함이나 균열 같은 하지만 이 균열
역시 우리 관계의 일부다
자라면서 가장 힘든 건 아버지의 침묵이었다.
그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벽
청소년기는 따라야 할 모범을 찾고
이런 아버지를 가진 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아버지가 남다르다는 것을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영화 속 첫 장면에 나오는 글입니다.
순진한 자에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배움을 정진하는 자에게
산은 더는 산이 아니고 물도 더는 물이 아니다.
경지에 이른 자에게
산은 다시 산이 되고 물은 다시 물이 된다.
불교 속담입니다.
김창열 화백님의 예술 세계와도 깊이 연결되는 사유이기도 합니다.
김창열의 물방울도
바로 이 “산은 다시 산이 된다.” 는
삶의 상처를 통과해 다시 평온으로 돌아오는 과정 말합니다.
영화 속에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답합니다.
1. 아버지 인생을 영화로 만든다면 첫 장면은 뭘까요?
아버지의 대답은 베이비,
그리고 흰 눈, 한 남자가 상자를 들고 와
상자 안에는 비밀이 있지
이게 아버지가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이다.
아버지는 산타보다는 스핑크스 같은 분이었다.
침묵 속 자신만의 신비롭고 수수께끼 같은
세계를 가진 사람이다.
2, 아버지의 남다름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형과 내가 잠자리를 들 때
아기돼지 삼 형제를 해주셨다.
아버지는 달마대사 이야기를 해주셨다.
벽을 마주하고 앉아서 잠들지 않기 위해서
눈꺼풀을 잘라내고서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9년간 명상한 달마얘기였다.
달마대사에게 그의 제자들이 깨달음의 본질을 물었다.
제자들의 다른 질문에 수수께끼 같은
똑같은 문장으로 말했다.
“모든 것은 꿈에 지나지 않는다” 사물의 핵심에 다다르면 가벼움만이 남는다.
전해지는 바로는 벽만 쳐다보며 움직임 없이 버티던 끝에 그의 팔과 다리가 결국 스스로 끊어져 떨어져 나갔다 한다.
3. 아버지에게는 달마대사와 노자가 있다. 이 책은 무엇이 좋은지 아버지에게 물었다.
추상적이면서도 내밀하다였다.
제자가 되고 싶은 젊은이가 달마대사를 찾아간다. 하지만 제자를 받지 않는다며 그를 쫓아버렸다.
그가 세 번째로 다시 찾아와 달마대사 앞에 팔을 잘랐지
아버지가 선불교의 폭력성에 매료되었다고 생각했다.
또한 스스로 자신의 팔을 잘라 낼 만큼의 결의나 눈꺼풀을 베어버리는 이런 의지가 광기가 되어 아버지 자신의 완고함을 키웠다고 생각한다.
4. 아들은 아버지의 야만성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언젠가 딱 한 번 아버지가 시몽과 나를 때렸다.
우리는 워키토키를 사려고 돈을 훔쳤다.
아버지는 온 힘을 다해서 종아리를 내리쳤다.
어머니는 옆에서 울기만 하셨다.
아버지에게 결코 본 적 없는 어떤 야만성이 거기 있었다. 아버지 인생에 힘든 순간들을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전쟁이 얼마나 사람의 평생을 지배하고 괴롭히는지 알겠다 미아리고개에서
사람머리를 탱크가 지나갔어
바람 빠진 럭비공처럼 뒹굴고 있고 수백구의 시체가 뒹굴고 있고... 이야기하신다.
1945년 항복한 일본은 35년의 식민지지배를
마치고 한국에서 물러났다.
그 당시 평양의 고등학생이었을 아버지는
마침내 자유를 찾은 조국에서 낙천적이고 진지했을 거라 상상해 본다.
하지만 역사의 바퀴는 회전을 시작했을 뿐이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낙서를 했다고
나는 잡혀갔어!
나는 떠났어!
우린 밤에 걷고 낮 동안 잤어 38선에 도착했을 때
그는 15세였고, 혼자였다.
휴전선을 향해 달리기 전에
그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기도를 시작했다.
신이시여!
만약 당신이 존재한다면 나를 도와주세요.
평범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침략국 일본의 법을
따른다고 그들이 떠나고 나서는 자유를 너무 사랑한다는 이유로 공산당이 된 한국 해방군에게 아버지는 구금되었다.
그래서 그는 도망쳐야 했다.
남한에 왔지만 북한의 군대가
그의 새나라를 점령했을 때
공산군과 싸우도록 징병되었다.
미군의 폭격을 받고
결국 남한군에 합류하지만
남한의 병사들이 그를 북한 지지자로 판단해
처형당할 위기에서
이 청년에게 연민을
느낀 마을 사람들 덕분에
최후의 순간에 목숨을 구했다.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아버지는 태어난 고향마을 강가에 있는 집에서
사셨을 것이다.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그에게 뉴욕은 없었을 것이다.
주머니에 4달러를 넣고 그가 나는 예술가로서 그의 삶의 가장 결정적인 시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60년대 뉴욕이라는 도시와 뉴욕의 예술가들에게 지쳤어! 정말 너무 피곤했지!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뉴욕 사람들을 외계인처럼 봤다고 말했다.
그래서 하얗고, 차갑고 불투명한 형태들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상처는 고름이나 담즙 어쩌면
우유 같은 유기적 소재로 흐르면서 변형된다.
그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를 상상해봐야 한다.
그는 수도승처럼 살았다.
물도 나오지 않는 오래된 마구간에서
69년 겨울,
마흔 살에 혼자 돈 한 푼 없이 그의 고국에서
아주 멀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예술적으로도 고립된 그를 상상한다.
아버지 인생에 관한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은 뭘까요?
수영 배운 거 아닐까!
강에서 수영을 배웠어
수영을 겨우 할 수 있었는데...
내 친구들이 내기를 시작해서
나도 걔들을 따라갔지
엄청 힘들었는 데 성공했지
그게 왜 가장 중요해요?
엄청 어려웠거든
내가 물속에 있으면
물속에 들어갈수록 작아져
나도 물이 되는 것 같았다고 말씀하셨다.
노자는 뭐라고 말했어요?
무위! 인간의 본질로 아기의 상태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후회되는 일이 있으신지 아버지에게 물었을 때
어쩌면 너무 지나치게 진지했다고 답하셨다.
아버지의 고향 나의 고향마을은
내게 정말 중요하다고 하신다.
나는 산골 골짜기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직 호랑이가 살 산골마을
고향 마을의 추억과 6살 때부터
우리 할아버지가 내게 서예를 가르치셨어
천 개의 글자로 만들어진 시, 천자문부터 시작했지
내 불행이 여기서 시작됐어
할아버지가 감탄해서 외치셨지!
넌 어쩌면 이리 잘 쓰냐!
어떻게 이렇게 잘하냐!
내 생각에는 거기가 시작이었어
내 병적인 창조력이 간질거리기 시작한 게
할아버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나를 정말 애지중지하셨어
그때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지금은 아버지가 남몰래
자신의 할아버지 얼굴을 찾길 바랐다는 걸 안다.
그는 가족 모두를 남한에 안전하게 대피시키고
거동이 불편한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서 북으로 돌아갔다.
그가 떠난 이후 어떤 소식도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아버지의 영화 속 가장 마지막 장면은 무엇인가요? 맹산
강이 하나 있었고,
마을에선 그 강이 참 중요했어
마을 아래로 놀랍게도
솟아오르는 샘이 있었지
아이들은 강가에서 놀고,
수영하고, 싸우기도 했지!
겨울에는 강이 거울처럼 얼었고
스케이트도 타고 팽이치기도 했었어
우린 안개에 감탄했었고
구름이 산을 둘로 갈랐지
산속 골짜기 작은 마을의 삶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채워주었다.
순수의 맛과 일종의 순진함 같은 것들
이 마을이 아주 그리웠다.
내 평생 아주 많이 나는 이 마을이 그리웠다.
나는 평생을 호랑이 꼬리를
잡은 사람처럼 이 악물고 살았습니다
호랑이 꼬리를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습니다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꾸로 호랑이가 우리를 집어삼킨다
바로 이것이
부질없이 복잡한 나의 삶이다.
그가 나의 아버지입니다.
1929-2021
아버지가 내게 전달한 것 중에
꼭 하나만 간직해야 한다면
그건 지혜도 아니고
끈기도 아니며
자유나 솔직함도 아니다.
그건 아마 침묵일 것이다.
침묵은?
왜냐면 말하지 않는 모든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시선과 동작들
빛깔 대문소리 유령들 떨어지는 물 또는 존재감
같은 것이다.
아버지는 전쟁의 외상을
평생 지고 살아왔다.
또한 자신의 화실에서 마치 연금술사처럼
오랜 세월 연구 끝에
그가 본 모든 흐르는 피를
마침내 순수한 물의 원천으로 변형하기까지 평생 일했다.
죄책감과 책임감이 그를 평생 괴롭혔다.
물방울을 그려내며
상처를 치유하고 많은 존재들을 위로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에게 늘 놀라웠던 건 그가 가진 죄책감이었어 친구들이 다 죽었는데 자신은 살아있다는 죄책감
이건 무척 중요한 부분이야
그가 살아남았다면 무엇이든 하기 위해서이고, 무엇이든 되어야만 하지
살아있다는 특권을 가졌으니까 그는 자신의 삶을 낭비할 권리가 없는 거지”
어머니의 말처럼 살아있다는 것이 특권은
물방울을 그려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질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물방울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왜 물방울만 그리냐고?
질문이 있을 수가 있는데
그건 제가 못난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것밖에 할 수 없어서 해 왔는데..,
살아있음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단순한 물방울이 아니라 생존자로서의 책임감과 죄책감입니다.
김창열 화백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은 치유될 수 없는 상처였습니다.
그의 인생이 된 노자의 철학과 달마대사의 깨달음이 물방울그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노자가 되고 달마대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물방울이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면 숨소리 하나도 놓칠 수 없었습니다.
김창열 화백님의 표정 시선 말 음악 배경
모든 것이 영화가 되었습니다.
아들이 만든 영화였기에 더 내밀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김창열 화백님의 예술을 통해 삶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고 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가 평생 그린 ‘물방울’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상처와 고통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정화하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끊임없이 비우고, 다시 채우는 물방울처럼 인간 역시 고통 속에서 성장하고 깨달음을 얻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 영화의 메시지는
“삶의 아픔을 예술로 씻어내며, 진정한 평화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삶의 상처를 어떻게 마주하고 있나요?”혹은
“당신에게도 투명한 물방울처럼 마음을 비워내는 시간이 있나요?”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우리 마음속에 남깁니다.
영화인문학 강사 박갑식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